*이관희

(사이버노동도서관 운영 ,노동정보화촉진회 이사장 내일노무법인 안동소장)  수필모음

第 四人稱時代의 勞使

앞으로 이 지구위에서 살아 남으려면 누구든지 제4인칭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노사관계도 예외일 수는 없다. 도대체 제4인칭이란 무엇인가?

"나"를 제1인칭이라,"너"를 제2인칭이라, "그대"를 제3인칭이라 하고 1,2,3인칭을 몰아서 전인칭이라 하지만 그것까지 모두 합친 말을 한마디로 "제4인칭"이라 할 수 있겠다.

흔히 제4인칭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제화, 세계화, 글로벌화 따위의 표현이 있지만 피상적 표현에 불과하고 우리나라 말로 "모두","함께"라는 표현이 있으나 다른 뜻으로도 섞어쓰기 때문에 가슴에 확 와닿지 않는게 흠이라면 흠이여서 할 수 없이 어색하나마 "제4인칭"이란 표현을 ꁁ나들어 본 것이다.

"나"밖에 모르는 인색한 인간의 언어가 이지경까지 인색한 것을 또 한번 부끄럽게 여기는 바다.

지금 우리는 소위 "라운드"시대라는 새로운 경쟁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농업라운드","환경라운드","노동라운드","기술라운드" 따위가 바로 그런 것들의 유형인데 이러한 것들은 노골적으로 말해서 소위 선진공업국들이 후발공업국들의 선진화에 쐐기를 박을 양으로 여러 가지 장재조건을 내세우는 것중의 일부분으로 이미 우리나라에는 태풍처림 밀고 들어오고 있어서 실로 투명인간 같은 상대가 또렷하게 형상을 보이고 있지 않는 투명이기 때문에 무형의 경쟁이며 기한을 정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경쟁을 해야하기 때무에 이를 흔히 "무한경쟁"이란 표현을 써서 사람을 겁주는데 쓰기도 한다.

경쟁에 살아 남기 위하여는 우리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지나쳐도 옳다.

이를 반역하면 분명 상대방에게 이익을 주었으면 주었지 우리 스스로에게 도움될 것은 없기 때문이다.

흔히 자기이익을 지나치게 앞세워 전체의 이익을 해치는 따위는 제1인칭적 사고방식 즉 아집이라하며, 또한 자기와 자기동반자 즉 제2인칭적 이익에 집착하여 자신의 울타리 즉 제3인칭 지반을 해치는 결과를 갖고와서 여러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멀지않아 자신의 피부같은 보호막이 허물어지는 꼴을 분명히 목도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이라면 갖추지 둁낳은 이가 없는 이기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말세적 현상이 올 때 나타나는 증세의 하나인데 이때마다 너그럽게 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 말중에 2천년전 그의 "사랑"이라는 표현만큼 진솔한 압권은 없었다.

지금도 인색한 인간의 언어 가운데에서 이만한 표현을 찾아내기가 도무지 어려울 것이라 보여지지만 여하간 우리는 지금 "나","너","그대","우리","모두"를 합쳐도 감당못할 힘겨운 시련을 헤쳐나가려면 모든 인칭을 통틀어 한덩어리로 묶을 수 있는 "제4인칭"을 찾아내야 한다.

처음 인류는 "나"라는 1인칭을 통해 생명을, "너"라는 2인칭을 통해 생존을 "그"라는 3인칭을 통해 강인했던 인류는 이제 "제4인칭시대"로 넘어가 드디어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는 지혜로서 오늘의 무한경쟁시대의 승자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의 노사관계도 역시......

계약自由

일찍이 "계약"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한 학자가 있었다. "계약은 서로의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다." 권리를 양도한다고 하는 것은 서로가 의무를 진다는 말과 안팎의 관계라고부연했다. 서로가 서로의 권리를 상대방에게 주었으므로 상대방으로부터 권리사용을 제한받으며 상대의 요구에 의하여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어김없이 제공되어야 할 의무가 부과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이라는 특수한 상품이 제공되기 위하여는 동반하는 인격이 있고, 잠시라도 소홀히하면 파괴또는 변질될 수 있는 신체가 따라 다니고, 의무의 주체에 부속한 거추장한 가족이 따르며, 저장할 수도 없는데다가 단체적 행동우려 등 계속적인 주의가 따라 타상품에 비해 매우 가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으므로 이를 제공받는 이의 처지에서 볼 때 꽤 귀찮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유에 대해서도 정의를 내린 바 있는데, "자유는 방해받지 않고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라 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하에서 사유재산의 보호, 자유경쟁과 더불어 자유계약이란 지상의 원칙은 무한한 보호를 받아야 마 땅하다고 인정되어 왔다.그러나 최근 이에 대한 논란이 많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노동의 계약은 곧 노사간 쳬결한 단체협약이며 단체교섭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흔히 단체협상이라는 교환적 행위를 부여하고 있어 타상품의 교환보다 더 까다롭게 여기는 바다.

따라서 단체교섭은 인격이 따라다니고 신체가 부속된 특수한 상품인 노동을 교환하는 상황이므로 늘 인격과 신체가 훼손되지 않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특별히 인격존중의 척도가 되는 자유로움이 필수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한 진리이다. 신체가 허약과 질병에 의해 훼손되었을 때 노동이라는 상품은 저질로 변할 것이 분명하고, 인격이 약탈에 의해 훼손된 가운데 제공받는 노동은 그 질이 조악할 것은 필연이다.

이러한 조건이 전제되는 까다로운 상품둁르 모름지기 좋은 품질로 양도받기 위해서는 이를 양수받는 경영자의 처지에서는 보다 조심스러운 배려가 따라야 마당하다고 본다. 단체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술책의 하나로 공권력을 유도하려는 모듸는 곧 양질의 노동력을 받아들일 자질이 없다고 본다. 물론 불법적인 파업을 자행하여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치는 일도 삼갈 일이지만 스스로 해결하기 앞서 무조건 공권력 기대심리에 편승하여 해결코자 하거나 공권력을 빙자해서 술책을 모의하는 행동 또한 공권력에 무력으로 무조건 항거하는 행위와 더불어 사회적 범죄로 응징되어 마땅하다.

하물며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미명하에 도둑들의 재산까지 보호하려 드는 학자들의 논리가 날아 다니는 판인데 단체협상이라는 노동상품의 교환을 이유로 자유의사를 방해받는 일은 불균형하다 않을 수 없다.

청천백일하에 소신을 마음껏 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 곧 자유민주중의의 가장 큰 매역이 아니던가?

새우등 터진 엘리트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마술사는 담요같은 양탄자를 타고 공중을 날았다.

서유기의 손오공은 근두운이란 구름을 타고 하늘을 마음대로 날으며 갖은 재주를 다 피웠다.

공무원도 발령장이란 종이 한 장을 타고 어디든지 마음대로 날아간다. 나도 종이한장을 걸터타고 경남 충무통영에서 순식간에 서울로 날아 들어 여기서 일을 보고 있다. 그래서 공무원은 엘리트집단중 가장 대표집단으로인정받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공무원의 엘리트적 특성은 여러모로 평가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공무원들의 위치에서 본다면 벙어리, 귀머거리, 소경처럼 살아야 할 때가 많다. 그야말로 초연할 때 초연하되 마냥 초연함으로 인하여 피해을 입는 수도 많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난관을 통과해야 공무원이 된다. 속칭 등용문이란 난관으로서 지옥가는 고통보다 못하지 않는 시험지옥을 말한다. 대한민국공무원 시험이 어려운 까닭은 일제대 모질고 힘들던 관리채용방법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인데 지금은 일본보다도 더 어렵게 만들어져 일류 명문대학을 졸업했다해도 공무원이 되려면 아예 쉬운 초보과정부터 응시하고 최근에는 이 부분의 경시율이 가장 높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이를 질투인지 시기인지 알 수 없지만 한동안 계급도 쳐지고, 급여도 줄어 들어 갔다.

봉급을 많이 주는 기업체로 옮기기도 하고, 권력의 주변을 맴돌다가 간혹 이삭을 챙기는 자칭 엘리트집단을 선호하는 바람에 공무원집단에 엘리트다운 엘리트가 남아 날 리가 둁벗게된 것일게다.

오히려 엘리트다운 엘리트라면 앞으로 공무원집단에 대해 엘리트의식경쟁을 삼가는 것이 현명하다.

옛날, 황희정승집에 못난 사위 하나가 머슴과 장기를 두어서 졌다고 머슴에게 저녁을 굶게 한 일을 안 황정승은 그 머슴에게 친히 정중하게 사과하고, 그 못된 사위를 즉각 쫓아낸 일이 있다고 한다.

옥석이 서로 뒤섞인 세상이지만 분명히 가릴 것은 가려야 하되 모쪼록 엘리트들의 경쟁에 새우등터진 지칠만큼 지쳐 있는 공무원의 독백을 들어보자.

"아이들에게 공무원같은 짓은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원숭이의 칼

원숭이란 놈은 칼 한 개를 주웠으나 칼날이 무뎌서 나무한토막도 자를 수 없어 이웃목수를 찾아가서 물었다.

"이 칼이 무뎌사 잘 들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만 잘 들게 할 수 있습니까?"

"숫돌에 갈면 된다."

원숭이는 목수의 숫돌을 빌려가지고 와서 칼날을 갈았다. 원숭이는 칼을 갈았지만 그 칼로서는 도저히 나무를 벨 수 없었다.

원숭이는 화가 나서 즉시 목수를 찾아 갔다.

"이 엉터리 목수놈아! 왜 거짓말을 해서 나를 골탕만 먹이느냐? 네가 준 숫돌에다 하루종일 칼을 갈았지만 칼이 들기는커녕 칼등처럼 밋밋해버리지 않았겠나? 이 칼로서는 나무는커녕 풀한포기도 벨 수가 없다. 이 엉터리같은 목수놈아!"

목수는 엉겁결에 욕을 듣고 자초지종을 들어 보았더니 어처구니가 없다.

"야 이 원숭이 같은 놈아! 네놈은 남의 흉내만 낼줄 았았지 머리를 쓸 줄은 어째 몰랐더냐? 칼을 갈려면 칼날을 곤두세워서 갈면 어떻게 되느냐? 칼 양볼을 번갈아 숫돌에 문질러야만 날이 서는 줄 모르느냐? 네놈이 하는 짓은 늘 그 모양이니 한심하다 한심해!"

"진작 칼날을 갈 때 양볼을 갈라고 가르쳐 주질 않고 칼날만 갈라고 가르쳐준게 잘못이야!"

원숭이는 그래도 목수 잘못이라고 투덜거리면서 뒤돌아 갔다.

칼날을 갈려면 양볼을 번갈아 눕혀서 갈아야만 칼날이 일어서게 되고 이렇게 반복을 더 하므로서 날이 더욱 날카롭게 세워지면 칼이 칼로서 몫을 할 수 있게 마련인데 아직도 원숭이처럼 칼날을 곤두세워 갈면서 칼날이 더욱 무뎌지는 것조차 모르고 끙끙거리는 좀자들이 있다. 노사간에는 반드시 양보를 통하여 협상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노사협의회를 수백번 했다해서 노사간의 평화가 오는 것도 아니며, 단체협약에 평화조항이 있다고 해서 산업평화가 저절로 오는 것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칼날의 양볼을 눕히듯 자신을 눕혀 계속에 계속을 더하여 노력하면 칼날이 날카롭게 살아 일어나듯 생기넘치는 기업, 보람있는 일터가 도리 것이며 이에 비례하여 더 빠른 시일내에 산업평화가 찾아 올 것이다.

제대로 가르쳐준 목수까지 원망하는 원숭이같은 좀치는 이제 제발 없어지기를 바란다.

행복한 책임

병원에 가서 허드렛 일을 돕거나, 자비의 집을 찾아가 무의탁노인들의 뒷수발을 들어 주거나, 공장을 찾아 자재운반·폐품정리·제품포장등을 거들건, 공동취사장에 김장김치를 담아주는 등 직원들은 바쁜 일과에도 짬을 내어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인격도야와 사회적응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인생도 배우고 직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자 현장체험이라는 교육방법이 요즘 많이 원용되고 있는데 몸소 이 현장체험을 다녀온 직원들 중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막상 현장 일을 해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한마디로 저희들이 받고 있는 월급이 적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지사장님"

이 가운제 짚히는 "적은 월급이 아니다"라는 그 말한鑁마디는 또 한번 깊게 음미할 여운을 주었습니다. 다 같은 국영업체의 예산지침에 따라 잭정된 급여이며 대개느 遁일반기업체보다는 못하고 공무원보다 약간 상회한다고 보는 급여수준은 이미 짐작되는 바이나 해마다 인플레이에 붸겨 인상을 독촉하는 실정에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평상시 경제일변도 느낌으로는 도저히 감지하기 어려운, 소위 '깨달음'의 경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가뜩이나 부정부패 문제로 전후·상하·좌우가 뒤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비록 말한마디이긴 하지만 고맙고 믿음직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닙디葡. 어느날 또 다른 한 직원은 이런 말을 하면서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직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저에게 준 최대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행을 당한 동료 노동자를 도우면서 월급까지 많이 받으니 늘 고맙지요. 마땅히 우릴 찾아 주는 손님들에게 친절도 극진하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개우치는 것 같습니다."

'민원인에게 친절하여야 한다'는 것을 조석으로 잔소리하던 저로서는 또 한번 어리둥절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민원인을 응대하는 요령과 민원처리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비디에 제작에 전직원이 참여해 일과후에는 틈틈히 연습을 하더니 일류 탈렌트보다 낳은 연기력을 발휘하여 드디어 좋은 작품하나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비디오는 또 다른 동료지사에 배부하려는 중에 있다 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현장체험이라는 동기부여가 깊게 자극되어 모든 일을 솔선수범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여지가 없거니와 민원인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과 자발적 움직임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재주를 지녔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된 행동은 표현해 내기가 어려운 것인데 의외로 동료직원들은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낳게 된 것에 반갑고 무한히 감사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찾아주시는 민원인들에 의하여 비롯되는 것이며 그들이 우리를 외면할 때 우리는 이 직장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 역시 잘 압니다. 인간은 기본적인 예의, 염치를 알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시 찾았다는 행복감도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민원인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이 각오는 곧 '사랑과 봉사'라는 행동의 승화(昇華)이기도 합니다.

酸素文化의 住所

누군가 문화를 다음과 같이 요령좋게 정의하였다.

"문화는 자주(自主), 창조(創造), 그리고 모두의 생활속에 깊히 공감(共感)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문화는 여러사람이 느낌을 함께 하여야 한다. 문화는 대중을 떠나서는 형성되지 않는다. 대중(大衆)의 공감을 얻지 못한 몇몇 예술인끼리 만들어 낸 작품은 한낱 본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사회의 특수계층을 문화의 주체로 보는 것은 매우 큰 오류다. 흔히 문화의 주체는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귀족계층이라고 오해하기도 하고, 이상향(理想鄕)에 젖은 경제적 중산층이라고 몰이해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문화는 일부인들만의 향유할 만한 그런 특권적인 성격의 존재이거나 재산을 형성하는 물품이 아닌 것이며 많은 사람이 함계 인정할 때 더욱 가치가 생성되는 공통성, 통일성, 평등성 등등 특이한 성격의 존재인 것이다.

그 사회를 이끌며, 그 사회를 생성하고, 그 사회를 책임지는 모두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우러나야만 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제도적인 작용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교묘하게 유도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과거 몇몇 독재자들의 욕망에 휘말려 기획되고 조작된 문화가 없지 않았기에 이점에 대해서는 사족(蛇足)을 다는 한이 있더라도 재삼 강조하는 바다, 문화행사가 체제수호를 위한 "프로파간다"로 악용된 예도 참고할 만한 경험 중 하나다. 그러므로 문화는 자주적이어야 한다.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제되는 행위가 개재(介在)해서는 안된다. 문화희 발상(發想)은 집단 내부에서 이질적인 각 개체가 각기 행동의 자유를 만끽하는 가운데 생산되는 것이어야 한다.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강제로 최면에 걸린 상태는 문화라 하지 않고 한낱 박제(剝製)일 따름이다.

그리고 문화는 창조적이어야 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복하는 것은 모방(模倣)이며 마침내 부패(腐敗)하게 된다. 문화는 물처럼 흐르는 가운데 신선함이 있어야 하고 변화를 통하여 항상 참신함을 갖추고 산소(酸素)같은 생기를 불어 넣어 주어야 참다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산소없이는 모든 것이 연소하지 않으며 변화하지 않으며 새롭게 태어나지 못함며 무엇보다 살아남지 못하므로 일을 할 수 없다.

이러한 모든 여건을 참작할 때 문화의 주체는 노동자 계층을 분모(分母)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과 노동자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창조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건에서 문화를 조감해 보면 우리에겐 아직도 노동문화의 현주소가 분명치 않고 찬물에 기를 뜨듯 두리둥실 방황하는 실정이다. 물만 먹는 금붕어도 산소를 좋아하는데 노동자의 신바람도 탄산가스보다는 역시 산소(酸素)를 더 좋아한다.

遁甲한 원숭이

추(醜)한 자는 언제나 추잡(醜雜)한 짓을 하기 마련인가보다.

이차대전이 끝난 일본땅은 흡사 미국식민지를 방불케 했으며 미국정부 역시 일본 열도를 미국에 예속시킬려는 계획을 일찍이 꾸몄었다. 이 계획추진단원의 한사람은 "국화와 칼"의 저자 루드 베네딕트도 포함되었다. 천황을 격하하고 주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준 일도 그 스케줄중의 하낟.

일본이 점령했던 모든 땅은 일부 중국과 소련에 돌려지고 나머지 태평양상에 수없이 널려 있던 섬은 모두 미국에게로 돌아가고 말았으며 맥아더 군사령부는 "일본열도는 미국의 일부이며 장차 미국영토의 부속도서로써 병합, 진주만 피해의 일부라도 변상받아야 한다"라고 계산하였던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조선반도를 절반으로 나눠 소련과 국경을 삼고 일본열도를 그 다음 방위선으로 획을 그을 심산이였다. 이러한 속셈을 간파한 소련은 반도를 삼키려 한국동란을 일으킨 것도 그 한 예인 것이다.

왜소한 일본인들은 점점 더 왜소해지면서 미국군인들에게 아첨하고 그들에게 허리를 굽혀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걸하며 미군의 군표를 식민지 화폐로 이용해야만 살안마을 수 있었다.

그들은 봉건국가시대 때 우리나라에 하던 허리굽혀펴기 아첨을 고유한 예절로 비화시키면서 여자들은 정복자의 사타구니밑에서 요불질치고 사내들은 허리를 굽혀가며 전후 목숨붙여 살기에 죽는 시늉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지금은 그것을 미덕인양 억지를 쓰지만 사실은 미국이 일본종족을 온순한 식민지 백성으로 길들이고자 허리를 굽히는 동작과 계집이 요분질칠때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면서 그런 행동을 더욱 더 권장하여 훈련시켰던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자본주의 국가로 키우기 위한 계획을 짜야만 했고 노동조합은 점차 길들여진 늑대를 만들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바로 바다건너에 있는 소련과 중국공산당에 의하여 전후 일본이 사회주의로 전향하게 되면 미국의 군사적 방위선마저 무너지기 때문에 미국정부는 전력투구했다. 미국계 다국적 기업이 일본에 상륙하여 일본기없을 키워나가게 했다.

미국은 일본장사꾼에게 기술을 무상으로 가르쳐 주었고 하루속히 길들여진 원숭이가 되기를 바랬다.

한국전쟁의 발발은 이러한 미국의 계획을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고 일본의 경제는 자본주의 체제로 서서히 물들며 토실토실 살이찌고 있었다. 일본의 노동조합은 기업별로 조직되었으며 형식적인 춘투를 계기로 걁나업평화는 근근히 유지되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표면적으로는 탄압이 없는 가운데 내면적으로 사육되어졌으며 정경유착의 본보기인 특유한 일본식 정치형태를 만들어 놓았다.

사회당과 공산당도 역시 눈치빠르게 들러리서는데 서슴치 않았다. 이 기형적인 일본의 기업과 정치딥단은 미국의 예속계획을 차질나게 하였지만 마침내 미련을 둬온 군국주의(軍國主義)로의 전환을 손쉽게 만든 결과를 낳았다. 어리광질하던 원숭이가 돌연 추한 고릴라로 둔갑질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살코기

대통령 각하!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은 무소불위(無所不爲), 마음먹은 대로 못할 것이 없는 권한을 휘둘렀습니다.

단군이래 어느 임금님들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정치인이 어디 하나 둘 입니까.

그래 그런지 장래 대통령을 꿈꾸는 아이들이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신문마다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통계숫자를 발표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하시는 일을 극구 칭찬하는 것 뿐이며 한술 더 떠 세계적 최고 인기인으로 부각(浮刻)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생각컨데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목적이 단순히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면 이 나라 어린아이들이 본 대통령은 한낱 곡마단의 삐에로와 별로 다를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대통령 각하! 감히 말단 공무원이 외람되히 말씀드리오니 너그럽게 살펴 주십시요.

여론조사는 한낱 신문장을 팔아 먹기위한 장사꾼들 장난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언젠가 얕잡아 본 5%의 칼 끝에 의하여 엉성한 95%는 급소를 공격받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재야에서 고생하셨던 과거를 모르는 바 아닙니다. 막강한 권력에도 굽힘이 없고, 금력의 유혹에 끌림이 없이 이 나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하여 투사로서의 오로지 초지를 관철해 지켜왔었기에 마침내 국민들은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는데 결코 인색하지 안큶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민의 마음은 오직 당신이라는 개인과 당신을 둘러싼 참모들까지 포함, 믿고 표를 찍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 아닙니까. 지금 당신의 주변에 모여드는 인재들이 어쩌면 하나 둘씩 당신의 손에 의하여 멀어져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심히 우려되며 영문 모르는 선량한 공무원들은 일손을 잡지 못하고 마냥 빗자루만 들고 갈팡질팡 눈치만 보는 마당쇠 신세를 면치 못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옛날, 역아(易兒)라는 아첨꾼은 자기 아들을 잡아 그 고기를 임금에게 바쳐가며 자리를 지키려고 애냵다 합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청신(淸新)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가히 지금까지 뵈온 어느 대통령보다 훌륭하였으며, 국민은 이미 그 심중을 충분히 읽고 있습니다. 부디 콩깍지로 콩을 뽑는 참혹한 꼴보다 쓰러져가는 경제를 어떻게 하던지 일으켜 세우는게 더 급한 일이 아닙니까. 국민은 대통령이 직접 당신 살을 빚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고 오직 다같이 살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玉浦大捷(옥포대첩)

거제도 옥포, 노사간 분쟁이 또 일기 시작한 대우조선, 어느덧 두달이 넘은성 싶다.

서울에서 천리 떨어진 객관, 홀로 생일을 맞으니 하늘에 비췬 달이 더 커 보인다.

충무소장으로 한해하고도 반년을 보냈건만 저 달이 오늘처럼 더 큼지막하게 보인 것은 처음이다.

생일이 오면 늘 나의 어머님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수년전에 작고하셨지만......

생전에 어머님께서는 내 생일날 새옷도 입혀주시고 맛좋은 음식도 따로 갈무려 두셨다가 주시며 먹는 모습을 은근한 미소로 그윽히 바라 보시곤 했다.

그때 참으로 행복해 보이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오늘은 저 달속에도 겹쳐 떠오르는 것 같다.

어릴적부터 공부한다고객지도 떠돌다보니 늘 어머님모습을 그리워하게 되고 높게 뜬 달을 올려다 보는게 습관이 되었다. 그 시절 자작시 자작곡하여 그때마다 노래를 불렀다.

저 산 넘어 나의 고향 우리 어머님께선

하늘 높이 떠 비취는 달과 같애요

오늘도 멀리멀리 고향에 계신

어머님이 그리워서 달을 봅니다.

어머님께서 늘 당부하시는 수많은 말씀중에 생각나는 것 한가지는,

"객지에 있더라고 네 생일만은 꼭 지켜서 친구사람들에게 알리고 좋은 음식을 마련해서 함께 하도록 해라." 신신당부하고 또 당부하셨다. 그래도 우둔한 나는 그 뜻을 미쳐 알아 차리지 못하고 심지어 생일날조차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옛날의 어머니들은 아기를 출산코자 마루를 올라설 때 뜨락에 벗어 놓은 자기 신발을 다시 한번 더 뒤돌아 본다한다. 과연 생사를 가름하는 심각한 때, 볼지 말지할 신발, 또 보고싶은 것이다.

누군가 분명히 이런 말을 했다.

"네 생일은 곧 네 어머님이 새롭게 생명을 이어 가신날이나 다름없다."

내일이면 대우조선 노동조합에서는 파업을 하기로 예정되었다고 한다. 온 거제도가 불안에 떤다.

한낱 나의 생일에 고독한 감회를 이기지 못하던 나는 한산도해협에 높이 걸린 달을 올려다 보았다.

"바라건데, 대우조선이 노사화합하여 세계일등조선소로 새롭게 태어 나는 날, 내 생일도 함께 많이 차리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나흘후, 많은 이들의 지혜로 칼날처럼 날카롭던 노사대립이 봄눈처럼 녹았다. 함께 이긴 것이다. 노동조합과 회사는 각기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랑하며 나에게 극구 감사하다고 하니 이러한 일은 왕년에 좀처럼 없던 일이라 어리둥절하면서 흐뭇하다. 분쟁때마다 떠들썩 하던 운동장에서는 세계일등조선소로 다시 출산될 뻐적지근한 분위기에 휩싸여 잔치준비로 더욱 부산하다.

준법의무 다할 때 살아있는 법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불과 몇 달 사이에 정치·경제·사회등 전분야에 걸쳐 일대 혁신적인 변화가 일면서 국민들은 강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면서도 허탈감과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

끝이 없는 것처럼 연일 보도되는 사정작업은 새롭고 놀라운 일이라기 보다는 그간의 우리사회 풍토가 얼마나 골깊고 더럽게 썩어 있는가를 반증하는 확인작업에 지니지 않는다.

'시작이 반이라'듯 어차피 병든 부위에 칼을 댄 이상 수술이 완벽하게 끝날때까지는 칼을 뗄 수 없다.

대를 같이 해 우리늬 노동행정에도 많은 개선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선거공약을 통해 '노동관계법령의 전향적 개정과 노사간 이익분쟁에 있어 정부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노사자율적 해결노력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경제회복정책의지를 배경에 깐 듯 노동정책의 향방에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이는 분명 경기침체에 허덕이는 기업에 전향적 노동법 개정으로 노사문제의 불씨까지 안겨줄 수는 없다는 포석이 깔린 듯 하다.

그러나 신임 이인제 노동부장관은 취임소감과 앞으로의 노동해정정책을 묻는 자리에서 근로자의 신뢰를 벗어난 노동부는 존립할 가치가 없다고 분명히 밝힌 뒤 '경제가 어려울수록 공동체의식에 바탕을 둔 노사관계정착이 필요한 만큼 노동행정의 근본업무인 근로자 보호에 역점을 두고 산업 각 부분에 걸친 인력수급과 고용안정, 근로조건 유지·개선, 산업안전보건 등에 힘쓰겠다."고 피력했다.

그 이후 △6공시절 해고근로자 전원복직 추진, △대법원 판례와 어긋난 노동행정지침전면 재정비를 밟혔다.

이같은 일련의 노동행정 정책을 놓고 경제 단체를 비롯한 일각에선 지나친 근로자 편애 정책이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얼핏 김영삼 대통령과 이인제 노동부장관이 갖는 노동정책에 대한 입장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지만 지난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고 모두가 잘사는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해 노력하자는데에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노동부의 17개 재정비된 노동행정지침에서는 해고효력중인 근로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고, 무노동 부분임금 적용을 인정하고, 휴일 시간외 근로중복시 가산임금을 종정 250%에서 300%로, 근로조건과 관련된 부분에 한해 인사경영권도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련의 조치들은 지금까지의 편향된 노동정책을 일소하고 법과 원칙에 충실하므로써 노사의 신뢰를 받는 노동행정을 펴겠다는 당국의 의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노동행정지침외에도 국내 노동관계법중 △공무원 단결권인정, △복수노조인정,△제3자개입금지조항 철폐등의 개정요구는 전노협 등을 중심으로 한 법외노조단체들의 핵심요구사항이자 ILO가입을 계기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문제사안이다.

이미 전문가들로 구성된 노동관계법 개정위원회가 문제되고 있는 노동관계법에 대해 검토 ·입안중이어서 조만간 일대개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음식이 맛있고 풍부한들 먹어줄 사람이 없다면 이미 음식으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법이 아무리 잘 정비되어 완벽하게 제정된들 지키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노동법이 노동법으로서의 제기능을 다할 수 있기 위해서는 노사간의 준법의식과 행정당국의 근로감독이 평행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經濟도 節約해야

듣기 좋은 콧노래도 서너번이며 질력이난다.

만나선 안될 사람을 부득히 만났을 때의 실적 고통 또한 크다.

주머니는 텅비었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빗쟁이를 만난 때의 창피스러움,

먹고 싶잖은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할 때의 곤혹스러움,

정신대에 가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 가야만 했던 괴로움,

보국대에 가면 죽는 줄 알면서도 피치못해 끌력가야만 하는 통분함,

깔끄러운 최루탄 냄새를 맡을 대 송곳처럼 돋아나는 짜증스러움,

부처님은 이러한 것을 모두 수원통고(讐援通苦)라고 했다.

잠시도 가까이 하기를 혐오하면서 또한 하루속히 끝맺기를 기다리는 것이 또 있다.

경제개발이라는 터널은 너무도 길고 너무도 지루하다 무려 30여 성상이 지났건만 끝이 없다

경제기획은 하나의 응급처방에 불과한 것일뿐 최소한 두어차례정도록 끝나고 사회복지를 도모해야 하는데 자본주의의 상식을 벗어난 경제개발계획은 끝없는 장정(長征)을 염치없이 해 왔다. 분명 그 간의 경제계획은 실패했고 시행착오를 저질렀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계속하는 사람들, 경제개발 찬성론자들에 의하여 주물러 지고 또 신경제, 또 신경제하고 있다.

경제개발 때문에 잘살게 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책임은 지지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경제만을 내세우는 30여년간의 풍토속에서 자란 세대들은 모두 "경제모기"로 둔갑하였고, 도덕은 무너지고 질서는 파괴되었으며, 돈으로 얼굴을 도배질 하였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으로 찌들어져 가고 경제동물, 경제곤충들이 빨대를 들이밀고 있지만 너무나 오랜기간 취하여 왔으므로 아픔조차 잊어 먹었다.

서울의 하늘에는 별이 없어진지 오래다. 모처럼 산에라도 올라가면

쓰레기더미들이 사방에 마중나와 있다.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듯 지긋지긋하게 다가오고 대신에 간절히 기다리는 것들은 멀리 멀리 피해 달아난다.

푸른 하늘 밝은 태양을 듬뿍 쪼이며 시냇가 맑은 물에 발을 담궈보고 싶다.

포근한 풀밭에 누어 꽃과 나비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듣고 싶다.

그리고 "경제를 절약하는 경제정책"이것이 곧 새 정부의 신 경제정책이였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임금을 올리면 물가가 올가가니 여러분! 임금인상을 자제하여 주십시요!"라고 하며

노동자를 모아놓고 어루고 달래던 십여년전의 근로감독하던 시절이 다시금 곤혹스럽게 떠오른다.

또 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다람쥐 交涉

무더운 8월, 그리고 7일. 길고 긴 98일간의 여정을 끝내고 D회사의 임금교섭이 막 끝났다.

"봄부터 임금교섭을 한답시고 협상테이블에 마주앉아 말씨름만 주고 받는 신경전을 해야하고 때에 따라서는 기적적으로 합의도장을 찍고 돌아서면 다시 다음해 새로운 임금교섭을 위한 준비를 해야하니 사실은 일년내낸 임금교섭하느라 사업에 마음돌릴 여유가 없는 형편입니다."

이 말은 사럽을 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말투정이다.

"물가는 해마다 오르고 임금인상은 해마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금교섭에 들어 갈 대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임금인상만이 노동조합활동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고 그외 복지문제나 단체협약 조건을 향상하고자 하여도 하지 못해 조합원에게 늘 미안할 따름이고 늘 임금에 얽매이다 보니 다른 쟁점이 있다해도 군더더기처럼 여기니 어쩡쩡한 위치에서 노동조합하기도 무척 힘들구만요"

이 말은 임금교섭에 지치고 지친 노동조합 간부의 넋두리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임금교섭은 노사 당사자에게 무척 지겨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임금교섭은 1년마다 하고 단체 협약갱신은 2년이내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법상 임금조항에 대해 단서를 부지런히 달아두는 의도는 광복 이후 고질적으로 따라붙는 인플레 증세가 마침내 법률에까지 노이로제 증세를 전염시켰다.

종전에는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했던 것이다 '87년 11월 여소야대 국회에서 교섭을 자주 할수록 노동조합이 유리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해서 그렇게 된 것인 모양인데 세상의 일이란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아서 세월이 갈수록 이해관계를 종잡을 수 없기 마련이다.

대개 노동조합 집행부는 엑기스처럼 정제(整齊)된 사업주의 참몸만큼 자료수집이나 분석에 더 능숙할 수 없는 바 빈번하게 찾아드는 교섭시기에 대응하기는 매우 피곤한 느낌을 받을 것이 뻔하다.

해마다 상승하는 인플레에 비례하여 산출된 임금인상분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을 따지고 지불능력의 벽을 감수해야하는 어려움 입장에서 더구나 단체협약을 갱신하기 위한 자료수집은 더욱 어렵기 마련이며 대개는 상급조직으로부터 지도받았거나 유사업체 노조의 안을 모방하다보니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예가 많다.

여하간 해마다 임금교섭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맴돌아야 하고 그러는 사이에 타결했다는 신호로 도장을 찍고 그리고 몇일 쉬다가 다시 다음해 교섭을 준비하기 위하여 자료꺘비공문을 보내고...다람쥐 쳇바퀴마냥 항상 그 자릴 돌고..인플레란 괴물은 언제 물러갈지? 미아리 고개턱에 가서 점이나 쳐 볼까?

우리 함께 이깁시다!

우리나라의 산업사회는 서구사회로부터 옮겨 온 사회모형이다. 노동문제도 산업사회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노동운동도 서구식이고 노사관계법령의 골격도 서구식을 본다 왔고 노사간의 타협솜씨도 역시 수입해 온 서구식 교섭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정도록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선진제국의 노사교섭방식을 끌어들이고자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서구식 노사교섭방식은 서구 여러나라의 전통적 관습과 도덕률이 뒷받침해 주고 있기 때문에 노사간의 분쟁해결이 평화적인 타협으로 해결되는 예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 문제를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유의하지 않고 외국의 제도만 극구 칭찬하다보니까 이제는, "우리도 서구식 관습과 도덕률을 따라가자"로 믿게 하였다. 기왕이면, "서양오리만 먹자"."좋다! 그래서 나는 침대 아니면 잠이 안 온다.","양복만 입자","좋다! 그래서 그런지 양담배 맛이 더 좋더라."

"유럽이나 미국으로 자주 여행하자.""좋다! 그래서 나는 외제 아니면 쓰지 않는다"

"좋소. 이제 노사교섭을 시작합시다. 조합장! 오늘 점심은 Pizz pie로 하고 Whiskey를 마십시다!""Oh Key! 사장님! 교섭할 때 쓰는 말도 English로 합시다." "따봉!"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형태는 서구사회와는 달리 변천되어 왔고 관습과 도덕도 아직은 우리방식대로 수행되고 있다. 원래 타고난 우리들의 방식이라는 것은 우월주의, 권위주의, 이기주의, 폭력주의를 싫어하는 관습이고 도덕률이었는데 서구사회의 못된 풍습이 묻어 들어오면서 모조리 전염된 것 같다. 우리에게는 옛부터 받아 온 가르침이 있고 우리 스스로 자제하고 조심하는 기본도덕이 있다.

"많이 안다고 목에 힘주지 맙시다."

"좋습니다. 그러니까 벼이삭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 않습니까"

"웃사람이라고 마음대로 결정하지 맙시다."

"옳습니다. 사람 셋이 모이면 모두가 스승이란 말도 있습니다."

"나만 잘 살려고 욕심부리지 맙시다."

"몰론입니다. 저승갈 때 짊어지고 가는 것 아니잖습니까"

"주먹이 크더라도 폭력은 삼갑시다."

"그럼요! 누워 침뱉기 아닙니까"

이것을 짧은 기간내에 뜯어 고치는 것은 어렵다. 다만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본받을 것은 손쉽게 받아들여 몸과 마음에 깃들도록 빨리 터득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터인데, 이때에 우리의 고유한 지혜를 바탕으로, 익히 잘 아는 우리의 방식으로, 미흡하면 이것을 잘 다음어 노사교섭을 한다면 소망하는 산업평화는 최단 시일내로 앞당겨 나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산처럼 무겁고 동굴처럼 암울하던 산업화여정(旅程)도 "심청이 아버지 팔자"처럼, 꼬이고 뒤틀릴때가 있다가도 뜻밖에 풀리는 수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소망하던 복지사회도 어느날 선뜻 다가설 것을 기대하면서 노사교섭에 임하기 전에 서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화답해 봄직하다.

"우리 함께 이깁시다!"

富腐財災

보리고개 그때는 아무거나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어도 부러울 것이 없을 것처럼 여겨지다가, 차츰 배가 불러지니까 집이나마 한칸 있었으면 하고 기대하였다. 집도 한칸 마련하고, 장가들어 자식놈들 낳아 학교도 보내고, 옷가지도 두어벌 만들어 입고, 저금통장에 돈도 제법 모이고 보니, 갑자기 입맛이 떨어져 보리밥 따위는 음식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비겟덩이 돼지고기살 한저름이면 한잔술 안주는 거뜬하였는데, 쇠고기 불고기가 아니면 이제 입에 들여 놓기 싫어졌다. 쇠고기도 제비추리, 아동사태 맛이 어떻고 하면서 제법 식도락가인 척을 하며 거들먹거린다.

흰 쌀밥덩이를 시궁창에 버리기 예사고, 못다먹은 고기가 쓰레기더미에 첩첩이 쌓인다. 혓바닥, 목구멍은 외국제 아니면 안 넘어가고 외국여행은 제 안방 드나들 듯 한다. 완연히 일본, 미국, 불란서의 식민지 백성이 되고 말았다.

종자는 국산인데 온통 외제로 감고 외제에 의하여 둘러쌓여 있다.

저승의 시험문제가 몇가지 입수되었다. 그 경위를 알아본즉, 경제발전 덕분에 어느날 갑자기 부자가 되었던 사람들, 어느날 갑자기 제명도 살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어 염라대왕을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묻는 말에 대답이라도 잘하면 좋은 곳에 보낼터이고, 그렇지 못하면 지옥에 갈 줄 알아라."염라대왕 앞에서 일문일답 면접시험을 보게 되었다.

호화주택을 짓고 금은보화를 감고다니던 사람에게는 "재물(財物)좀 모았다고 거들먹거리더니 목에 칼은 왜 쓰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음주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오너에게는 "너만 편하게 살라했지 왜 남의 가슴에까지 못을 박고 왔느냐?고 물어보고 노임을 착취해서 돈 좀 모았다가 노사분규로 패가망신한 자에게는 "남의 피땀 빨아먹고 그래도 욕심이 덜 찬 모양이구나?"라고 물어보았다 한다.

장차 누구나 한번은 가는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물어 볼 터인데 해당자는 다음과 같은 해답을 미리 준비해 두면 다행히 지옥행은 면할지 모른다.

정답은 아니지만, "무엇이건 많이 쌓이면 썩게 마련이고, 재물을 탐하면 재앙을 불러들임"에 (○)표를 하면 60점은 받게 될 것이다.

 

감놔라 배놔라

이백양(산업평론가)

상호신뢰가 있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가 왜 서로 믿지 못하고 질시하며 의심해야하는 사이로 되었는지 이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산업사회의 주역인 노동자와 사용자는 필요불가분의 유대를 맺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노사풍토에서 불신의 풍토가 두드러지게 깊어지는 것은 분명 이러한 적응수단이 능숙치 못한 까닭이다.

오늘날 노사관계가 불신풍토로 농축되어가고 있는 원인의 하나는 두말 할 여지 없이 노사 당사자의 서투른 대응자세에 있다로 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이는 서로의 이기적인 욕심이 바탕이 된 것인데 갑작스레 불어닥친 산업사회의 생활 체험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조감해보면 인간의 원색적인 동물적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고 있는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한층 교훈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무려 30여년이 넘도록 경제발전 위주의 정치풍토에 젖어 산업사회에 참여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이러한 경쟁풍토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아둥바둥하는 사이에 어느덧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예외없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풍토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책임이 노사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처럼 매도하는 그 주변 방관자들의 무책임은 더욱 가증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유례없는 장기간의 악착스런 일제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자 마자 좌우이념간의 피비린내나는 극한대립의 와중에 몰려 가진자와 못 가진자와의 계급의식을 주장하기도 하고, 상대적 열등감을 부추기고, 경제발전에 뒤따른 노동자계층의 소외감을 충동질하는 등은 노동자로 하여금 좌절감을 안겨줌으로써 과격한 행동의 표출을 유도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노사간에는 더 깊은 불신의 수렁이 만들어져서 노사간의 신뢰를 바탕으로만 창출된 능력을 잃어버렸다. 여기에는 노사관계의 자율적 능력배양을 억제하여 온 과거의 과잉규제도 책임이 크다.

이제는 마르크스주의의 논리적 오류가 체험적으로 증명되었고,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신념은 노동자나 사용자나 한결같이 공감하고 확신하므로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상호신뢰적인 본연의 관계를 회복하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정상적둁인 거래를 도모하도록 어중이 떠중이가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큰 악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사불신과 노사갈등인데 이러한 병폐를 하루 속히 불식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장차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길은 더욱 요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노사 당사자의 역할이 긴요함은 물론이고, 또 주변에서도 "감놔라 배놔라"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우리들이 신랑신부가 예식장에서 실수해도 너그러이 웃음둁으로 보아주는 아량이 있는 것은 누구나 그 정도의 실수는 체험한 과거가 있거나, 체험할지도 모르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權威主義와 勞使

이관희(산업평론가)

힘이 있는 자가 그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골탕먹이는 것을 권위적 횡포라 한다.

노사간에도 이러한 권위주의가 잠재하고 있으면 반드시 파탄이 일어난다.

노산간에 권위주의가 등장하는 대목은 주로 노사교섭, 단체행동 등 서로가 힘을 내세워 대결을 해야할 경우에 자주 나타난다.

첫째, 자기나름대로의 생각을 합리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상대방을 설득하려하는 것도 권위주의의 일종이다. 때로는 법률 조문을 내세우거나 고도의 지식과 논리로써 상대를 위압하려하는 것이 이 경우에 속한다.

이때에 야기되는 문제는 서로가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느낌을 털어 놓지 못하고 수박겉핥기 아니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되고 형식에 빠져들어 원점에서 맴돈다.

둘째, 돈으로서 매수하거나, 특별한 지위나 대우를 조건으로 회유하는 것도 힘있는 자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다. 불량품을 속여 파는 사기꾼처럼 목적의 이익에 급급한때에 흔히 쓰인다. 노사간에 영구적인 산업평화를 기대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야비한 수단에 속할뿐 아니라 민주적 노동조합운영을 저해하는 소행이며 독약을 미끼로 사람을 낚는 소행인 것이다.

셋째, 외고집을 계속하는 것도 권위주의의 일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으로 일관하는 노사대표가 많다. 위에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고집을 피우는 경우도 있고, 뒤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고집으로만 끝까지 버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다가 어느 한쪽이 참지 못하고 파탄을 일으키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이러한 소행은 지혜있는 자가 할 짓이 못된다.

넷째, 협박과 공갈도 권위주의적 방식에 속한다.

상대를 고발해 버리겠다는 협박, 폭력으로 살상하겠다는 공갈은 상대를 더욱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와서 쌍방간에 피를 흘리는 결과로 유도된다. 법으로 한다는 말 속에는 공권력을 빌려서 상대를 위압하겠다는 뜻이 있고, 폭력을 쓰겠다는 으름짱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좋다 나도 이판사판이다. 해볼태면 해보자"로 나오게 하는 촉매역할을 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심성은 복잡다난하여 단순하게만 볼일이 아닌 경우도 있고, 오히려 간단하게 수습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어서 짐작하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였으니 노사가 다같은 동반자의 위치에서 함께 이기기 위하여는 보다 좋은 지혜를 모아가면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권세를 내세워 상대를 위압하려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사가 함께 살아야 할 처지에서는 염도에도 두지 말기 바란다.

 

資本經濟 完璧한가?

이백양(산업평론가)

인류에게 주어졌던 세기적 모험극이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20세기에 이르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가지의 생존수단을 두고 우리 인류는 오랫동안 다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이용하여 허욕을 꿈 꾼자 그 얼마며, 이를 위하여 생명을 버린 자 또한 그 얼마인가? 정확히 일흔네해 동안 자본주의가 옳다는 무리와 곳둁산주의가 옳다는 무리가 얽히고 곪혀서 싸움질을 했지만 이제 그 다툼은 끈이 온 것이다. 인류는 공산주의 보다는 자본주의를 선택하는 것이 더 살기가 좋다고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공산주의를 고집하던 무리들이 사르러져 가고 자본주의를 지지하던 무리는 기세다 등등해져간다.

자본주의 경제가 오늘의 승리를 자축할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공산주의와의 다툼에서 새롭게 갈고 다듬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초기 공산주의가 추구하던 계획경제를 가미하여 경제개발과 경제통제를 했으며 노동조합을 합법적으로 수용하여 기업의지와 노동의욕을 상승시키는등 초기 자본주의를 대폭 수정하는 작업이 있었기 때분에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더 우월해진 것이라고 여겨진다.

공산주의와의 다툼에서 옷을 갈아 입어야만 했던 자본주의는 이제 그 상대할 자가 없다고 해서 안이하게 그냥 있어서도 안된다. 경쟁적 태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오랜 공산주의와의 비교논쟁에서 새롭게 검토해야 할 새로운 과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상대가 있으므로서 그 적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은 겨코 완벽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자본주의가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제 스스로 가다듬고 반성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소련이 공산주의라는 붉은 망토를 벗어 던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승리감에 도취하는 것은 빠르다고 생각한다. 우리 한반도 주변에는 아직도 그 망상을 털어 버리지 못하고 있는 유령같은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언제 어떠한 모양으로 망동을 해 올지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공산주의도 아닌 괴상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고생대에 살던 맘모스나 공룡들이 기온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모두 사라져 이제는 화석으로만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이와 흡사한 작은 파충류들이 우리주변에 많이 살고 있듯이 그 모습을 변형하거나 줄여 생존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역히 체험하는 이상 안이한 사고는 금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자본주의는 외형보다 내면에서, 과시보다 실속을 보완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공산주의라는 것은 초기자본주의의 결함을 헤집고 나온 독버섯이었다. 자본주의 경제를 탄탄하게 지탱해 내려한다면 또 다시 그러한 독들이 태어나게 해선 안된다. 이제부터 자본주의 경제는 사회복지를 구현해 나가는 데 그 잊어버렸던 공백을 메꾸어 나가야 한다.

"쪼끄만 대한민국"

이관희(산업평론가)

봄부터 울던 소쩍새 울음은 녹음이 짙어지면서 듣는 이 가슴을 더욱 에이게 한다. "소쩍새다!!"

대규모 노사쟁의에 온 국민의 관심이 모여지고 있는 가운데, 작으나마 택시업계에도 이 홍역은 시작되었다. 연초, 택시요금이 다른때보다 조금 더 인상된 것이 문제의 직접적인 발단이다.

끝내 근로자는 근로자의 위치에서, 사용자는 사용자의 위치에서 제각기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는 노사간의 원초적인 이해대립, 노사갈등의 생리적 본능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문제는 크게 꼬여들기에 이르고 사건의 진폭을 더욱 더 벌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특히 근로자의 생활안정에 기본이 되는 임금제도가 확립되지 못하여 이를 둘러싼 문제가 해마다 때만 되면 비등하고 있는 가운데, 사업주측은 사업의 영세성에 따른 비용증폭의 압박을 겸하여 퇴직금등 예측되는 노무비부담을 다소간이라도 줄여 볼 심산으로 이번 대폭적이 요금인상기회를 안놓치려 한다.

"생활이 안정되게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이 노동조합측 주장의 요약이라면,

"요금 인상만큼 사납금은 내어야 한다."는 사업주측 주장의 요지다.

정부는 택시기사도 근로자이므로 생활의 안정을 위하여 고정적인 수입, 즉 월급제를 확보시켜 주어야 한다고 보지만 여건상 이는 점차적으로 개선할 과제로 볼 뿐 우선은 반월급, 반성과급형태와 일정액만 회사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기사의 수입이 되는 도급형태가 만연되고 있다.

택시사업의 중요성은 사업자체의 영리성도 노사간 관심의 표적이 되지만 택시기사들의 사회적 참여도는 다른 어느사업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하나의 사례로 이나라를 찾는 외국인을 가장 먼저 접대한는 이가 택시기사이며 이들의 초기안상은 우리국민전체를 맞이하는 인상과 맞먹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이 곧 국민의 얼굴이요 나라를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작지만 그래도 그 "택시인"은 그야말로 하나의 "작은 나라" "쪼끄만 대한민국"이다.

택시기사의 마음이 안정되면 그의 가정이 안정되고, 사회가 안정되고, 그리고 나라가 안정되며, 이 나라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작은 택시인"이 깨끗하면 이나라가 깨끗하게 보일것이고, 포근하다면 비록 남북이 갈라져 있다 하더라도 포근한 느낌을 받을 것이므로 여하간 좋은 택시를 만들어야할 필요성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으로 안다.

온나라가 "한국방문의 해"를 권장하는 이 마당에 노사간의 갈등이 점차 깊어지면서 "불친절 1호" 라는 변테지경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노사분규종식을 위한 국민의 관심집중이 긴요한 때라 생각된다.

오는해 봄, 소쩍새는 배고픈 노래를 모두 잊고, 부디 뜸북새처럼 배부른 노래만 불러준다면 참 좋겠다.

어, 더, 위 業種

이관희(산업평론가)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 이것을 우리는 "쓰리디-3D"라며 애써 먼 타국말로 옮겨 쓰면서 남의 나라일처럼 여기고 외국인들까지 끌어다 쓰는 판국이 되었다. 가까운 왜인들은 이 표현보다 "3A"라고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보려 애쓰는 판에, 외국제라면 사죽을 못쓰는 것은 왜놈들보다 더 앞서는 형편이니 우리가 왜인을 따라잡는다는 장담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이 "쓰리디"에 해당하는 사업장에서 일하게 되면 사람대접을 못받게 되는 때문인지 좋은 교육을 받은 우리나라 사람은 이 일자리를 기피하여 점점 줄어 들고 있고, 아직도 그 사업에 미련을 두고 있어 한동안은 외국인들을 불러써야 하고 사장님 가족으로 일하는 풍경이 지속될 것이고 외국인도 잘만하면 사장님 사위감 자리도 넘보려 할 것이다. 아무리 쉬운 일을 해도 그 보람을 모르면 그것은 직업이라기 보다 고역(苦役)이며, 어렵고(難), 더럽고(醜), 위험한(危)일로 일컫는다.

무조건 일꾼잘못만 탓할 일이 아니라 이 "어, 더 위- 難醜危" 업종에 대한 우리나라 경영인들의 인간천시 경영자세도 반성의 여지가 많이 있다.

"공장일은 내일처럼 근로자는 가족처럼", 너무나 그럴듯한 구절이다.

이것은 '87년 전후 회사마다 공장마다 현수막에 써서 걸어 붙였던 표어중 하나다.

이 말은 경영신조로 삼고자 아예 공장담벼락에 큼직하게 박아놓은 곳도 있다. 그러나 오랜세월이 지나고 나서 손질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통에 일부는 지워져서, "종장일은 '네'일처럼 근로자는 '가족'처럼" 따위로 변해버린 곳도 보인다.

우리에게 "가족"이라함은 "내"란 뜻과 동등한 개념이기에 공장일과 근로자는 곧 하나의 동질개념으로 여기게 하고 좀 더 생산성을 고양시킬 목적과 부합시켜 볼 심산에서 창안된 말이라고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가족처럼 생각한다며 노예처럼 부려먹고 임금조차 떼먹으면서 "가족"을 위장한 "가축" 대접하는 웃지못할 일들도 있다. 겨우 10여만원의 임금을 주지 않으려 갖은 못된 꾀를 부리며 도망다니고 일일이 찾아가서 사정하면 오히려 큰소리치며 으름장을 놓는 자들이 많이 있다.

"말로만 무얼(?)하면 자손이 귀하다"라는 음담패설적 속담이 있지만 개도 부려먹으려하면 달콤한 말만으로는 꼬리조차 치지 않을 뿐 아니라 잘못하면 "으르렁"하고 달려들고 만다.

근로자를 가족처럼 대우한다고 하면서 모든 기준을 "적게 주고 많이 얻는" 경제논리만 내세워 근로자를 그야말로 가축처럼 대우하니까 마침내 이 "어더위"란 업종이 늘어나게 마련이고 근로자들은 어러한 직업을 차츰 멀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 않았나 짐작된다.

근래 외국에서 여자노동자도 수입해 쓴다하니 단순한 노동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점점 더 심각한 여성문제, 청소년문제, 인종문제 등 그야말로 세계화가 되는상 싶다.

*이관희
(사이버노동도서관 운영 ,노동정보화촉진회 이사장 내일노무법인 안동소장)  수필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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