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사네 이관희 수필모음-윗니없는 황소   



다람쥐 交涉

무더운 8월, 그리고 7일. 길고 긴 98일간의 여정을 끝내고 D회사의 임금교섭이 막 끝났다.

"봄부터 임금교섭을 한답시고 협상테이블에 마주앉아 말씨름만 주고 받는 신경전을 해야하고 때에 따라서는 기적적으로 합의도장을 찍고 돌아서면 다시 다음해 새로운 임금교섭을 위한 준비를 해야하니 사실은 일년내낸 임금교섭하느라 사업에 마음돌릴 여유가 없는 형편입니다."

이 말은 사럽을 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말투정이다.

"물가는 해마다 오르고 임금인상은 해마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금교섭에 들어 갈 대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임금인상만이 노동조합활동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고 그외 복지문제나 단체협약 조건을 향상하고자 하여도 하지 못해 조합원에게 늘 미안할 따름이고 늘 임금에 얽매이다 보니 다른 쟁점이 있다해도 군더더기처럼 여기니 어쩡쩡한 위치에서 노동조합하기도 무척 힘들구만요"

이 말은 임금교섭에 지치고 지친 노동조합 간부의 넋두리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임금교섭은 노사 당사자에게 무척 지겨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임금교섭은 1년마다 하고 단체 협약갱신은 2년이내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법상 임금조항에 대해 단서를 부지런히 달아두는 의도는 광복 이후 고질적으로 따라붙는 인플레 증세가 마침내 법률에까지 노이로제 증세를 전염시켰다.

종전에는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했던 것이다 '87년 11월 여소야대 국회에서 교섭을 자주 할수록 노동조합이 유리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해서 그렇게 된 것인 모양인데 세상의 일이란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아서 세월이 갈수록 이해관계를 종잡을 수 없기 마련이다.

대개 노동조합 집행부는 엑기스처럼 정제(整齊)된 사업주의 참몸만큼 자료수집이나 분석에 더 능숙할 수 없는 바 빈번하게 찾아드는 교섭시기에 대응하기는 매우 피곤한 느낌을 받을 것이 뻔하다.

해마다 상승하는 인플레에 비례하여 산출된 임금인상분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을 따지고 지불능력의 벽을 감수해야하는 어려움 입장에서 더구나 단체협약을 갱신하기 위한 자료수집은 더욱 어렵기 마련이며 대개는 상급조직으로부터 지도받았거나 유사업체 노조의 안을 모방하다보니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예가 많다.

여하간 해마다 임금교섭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맴돌아야 하고 그러는 사이에 타결했다는 신호로 도장을 찍고 그리고 몇일 쉬다가 다시 다음해 교섭을 준비하기 위하여 자료꺘비공문을 보내고...다람쥐 쳇바퀴마냥 항상 그 자릴 돌고..인플레란 괴물은 언제 물러갈지? 미아리 고개턱에 가서 점이나 쳐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