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여!---色! 空!--이게 뭔지 아느냐?


생각할수록 네 놈이 하는 짓은 어리석구나!
보면 볼 수록 그렇게 어리석은 짓거리만 하고 다니니 참아 내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어! 그래서 내가 너에게 아주 쉬운 이야기하나 해 줄 가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뭣이라고? 듣기 싫어?

하기사 네같이 미련한 놈이니 좋은 말이 귀에 들어갈 턱도 없고 옳은 말을 마음에 아로 삭이지도 못할 것이 아니더냐?불상하고 가엾은 둘이사네!오늘은 네놈이 매우 좋아하는 귀절을 말해 줄 것이니 이리로 와서 앉아라! 들어 두면 약이 되느니라!보약이 따로 없고 평소에 잘 씹어 넘겨둔 밥알이 곧 보약이며 이를 버금할 보약이 또 없는 것처럼 오늘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은 평소에 네가 먹는 밥알처럼 평범한 말이니라.

"色이 空과 다르지 않으며 空은 色과 다르지 않느니라.色이 곧 空이요 空이곧 色이니라"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니더냐?아마 너의 전생이 인간이었더라면 네 귓바퀴에 이 말씀으로 태를 만들어 두었을 것이다.너의 귓밥이 두툼한 것을 보니 좀 듣기는 들었나 보구나?그래 이것은 반야심경에서 그야말로 반야와 같은 말씀이요 말씀중에 제일이로다.네 놈이 늘 하는 말이 있지 않느냐?
조감도[鳥瞰圖]라는 말을 네가 가끔 인용하는걸 들었다.말하자면 새가 공중을 날면서 아래를 훑어보는 그것을 말하는 것 인줄 나도 알고 있다.
혹은 거시적[巨視的]안목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사물을 네놈처럼 이렇게 본다면 늘 실수 투성이란다.

충탐도[蟲眈圖]라는 것도 있어서 이는 사물을 미시적[微視的]안목으로 면밀하게 파악하는 관찰방법이니라.

더 쉽게 말하면 이렇게 예를 들어 설명할 수도 있지!
조감도식[鳥瞰圖式]이라면 "숲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한다"라는 평을 듣게되고,
충탐도식[蟲眈圖式]이라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라는 평을 듣게되는 것이란다.그래서 이 두 가지를 다 활용하여 관찰하라는 것이 옛 어른분들의 말씀이시니라.

"부즉불리[不卽不離],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요.중도[中道]는 공자가 한 말이니라.사람가운데 융통[融通]이나 기전[機轉]이 잘되지 않는 이는 곧 머리가 굳었다고 하는 것이니 네 둘이사네같이 나이가 들어서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제 생각만 하는 처지면 무조건 자기고집만 주장해서[我執]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며 이로서 늘 상대와 충돌하게 되고 따라서 세상 많은 사람들과 원수의 업[業]을 쌓게 되는 것이니라!"

융통[融通]이라 함은 마음의 한가운데를 사통팔달 가로질러가면서 너그럽게 판단하는 정신력이요 기전[機轉]이라 함은 마음의 가장자리를 두루두루 살펴가면서 빠짐없이 살펴보는 정신력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사람들은 무수한 말로 이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각기 마음으로 비추어서 이를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말, 아무리 많은 단어,아무리 풍부한 감정,아무리 해박한 지식으로도 이를 깨우치게 할 수는 없는 것이 이 말씀이니라.그러므로 이 말씀이 귀절은 곧 "반야"라는 표현만큼 단단하며,무거우며,탄탄한 것이 여서 많은 이로부터 소중하게 여기느니라.
그러므로 이 글귀는 한 번 깨치기만 하면 영원토록 흐트러짐이 없으며,영원토록 마음의 가장 한가운데에 핵심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니 내가 구태여 너에게 이말 뜻을 풀어 보이지 않는 까닭을 알아 차리겠느냐?

이 글귀는 결코 남이 풀어서 알려주는 그런 방식으로서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라는 상식을 미리 간직하고 늘 이 글귀를 마음에 두면[念]언젠가는 깨우치게 되면서 너에게 인간으로서의 사는 보람을 맛 보이게 될 것이니라.이러한 때는 내일 새벽에 올 수도 있으나 개으른 네 평생에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싶구나.어리석은 둘이사네!

네가 요즘 거리마다 넘쳐 나는 전자오락실에 가본 일이 있느냐?
거기가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나 로켓을 실제로 타고 즐기는 것처럼 재미를 볼 수 있는 시물레이션이 있는데 네 놈은 나이가 많아서 가볼 수도 없을 것이니 참 안되었다.

공중에 날아 오르면 각종계기판을 통하여 운전하는 이가 스스로 판단하여 높고 높은 곳을 자유자제로 비행할 수 있는데 이때 너무 기계에만 의존하다가 보면 실제 상황이 일어나 계기판과 다른 상황이 벌어 질 수도 있는데 이를 적응하지 못하면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고 늘 동전만 날려버리고 만단다.
이때 각종 계기판은 실제를 떠난 가상의 표시이니 공[空]이요 현재 일어난 상황은 곧 실체이니 색[色]이라 이름한다면 이 두 가지가 다 온전하게 활용되어야 비록 작은 깨임 놀이도 원만하게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너의 인생 살이 도 이와 다를 바 없느니라.

둘이사네!네 놈은 그래도 쫄보여! 쫄보!융통성,기전성 이런거 잘 들어 두려므나 언제던지 마음이 내키면 너에게 거듭 오늘의 일을 되새겨 줄 것이니 께,쫄보라 해서 너무 섭섭케 생각하거나 마음 깊히 새겨두지는 말거라.네 놈에게 그런 욕을 한 것은 곧 장차 네가 융통성 깊고,머리회전이 좋은 그런 청년들보다 더 영민한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는 증명서같은 것이라고 여기면 되느니라.
그렇다면 네 놈도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 이거야!

이관희의칼라수필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