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사네 이관희 수필모음-

당신의 살코기
(이 글은 IMF당시 공무원신분으로 청와대에 말아 올린 글이지만 지금도 내용으로 봐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각하!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은 무소불위(無所不爲), 마음먹은 대로 못할 것이 없는 권한을 휘둘렀습니다.

단군이래 어느 임금님들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정치인이 어디 하나 둘 입니까.

그래 그런지 장래 대통령을 꿈꾸는 아이들이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신문마다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통계숫자를 발표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하시는 일을 극구 칭찬하는 것 뿐이며 한술 더 떠 세계적 최고 인기인으로 부각(浮刻)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생각컨데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목적이 단순히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면 이 나라 어린아이들이 본 대통령은 한낱 곡마단의 삐에로와 별로 다를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대통령 각하! 감히 말단 공무원이 외람되히 말씀드리오니 너그럽게 살펴 주십시요.

여론조사는 한낱 신문장을 팔아 먹기위한 장사꾼들 장난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언젠가 얕잡아 본 5%의 칼 끝에 의하여 엉성한 95%는 급소를 공격받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재야에서 고생하셨던 과거를 모르는 바 아닙니다. 막강한 권력에도 굽힘이 없고, 금력의 유혹에 끌림이 없이 이 나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하여 투사로서의 오로지 초지를 관철해 지켜왔었기에 마침내 국민들은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는데 결코 인색하지 안큶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민의 마음은 오직 당신이라는 개인과 당신을 둘러싼 참모들까지 포함, 믿고 표를 찍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 아닙니까. 지금 당신의 주변에 모여드는 인재들이 어쩌면 하나 둘씩 당신의 손에 의하여 멀어져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심히 우려되며 영문 모르는 선량한 공무원들은 일손을 잡지 못하고 마냥 빗자루만 들고 갈팡질팡 눈치만 보는 마당쇠 신세를 면치 못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옛날, 역아(易兒)라는 아첨꾼은 자기 아들을 잡아 그 고기를 임금에게 바쳐가며 자리를 지키려고 애썼다 합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청신(淸新)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가히 지금까지 뵈온 어느 대통령보다 훌륭하였으며 국민은 이미 그 심중을 충분히 읽고 있습니다.

이제 청순한 대통령보다는 일하는 대통령이 더 좋습니다.
부디 콩깍지로 콩을 뽑는 참혹한 꼴보다 쓰러져가는 경제를 어떻게 하던지 일으켜 세우는게 더 급한 일이 아닙니까. 국민은 대통령이 직접 당신 살을 빚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고 오직 다같이 살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