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사네 이관희 수필모음


酸素文化의 住所

누군가 문화를 다음과 같이 요령좋게 정의하였다.

"문화는 자주(自主), 창조(創造), 그리고 모두의 생활속에 깊히 공감(共感)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문화는 여러사람이 느낌을 함께 하여야 한다. 문화는 대중을 떠나서는 형성되지 않는다. 대중(大衆)의 공감을 얻지 못한 몇몇 예술인끼리 만들어 낸 작품은 한낱 본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사회의 특수계층을 문화의 주체로 보는 것은 매우 큰 오류다. 흔히 문화의 주체는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귀족계층이라고 오해하기도 하고, 이상향(理想鄕)에 젖은 경제적 중산층이라고 몰이해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문화는 일부인들만의 향유할 만한 그런 특권적인 성격의 존재이거나 재산을 형성하는 물품이 아닌 것이며 많은 사람이 함계 인정할 때 더욱 가치가 생성되는 공통성, 통일성, 평등성 등등 특이한 성격의 존재인 것이다.

그 사회를 이끌며, 그 사회를 생성하고, 그 사회를 책임지는 모두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우러나야만 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제도적인 작용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교묘하게 유도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과거 몇몇 독재자들의 욕망에 휘말려 기획되고 조작된 문화가 없지 않았기에 이점에 대해서는 사족(蛇足)을 다는 한이 있더라도 재삼 강조하는 바다, 문화행사가 체제수호를 위한 "프로파간다"로 악용된 예도 참고할 만한 경험 중 하나다. 그러므로 문화는 자주적이어야 한다.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제되는 행위가 개재(介在)해서는 안된다. 문화희 발상(發想)은 집단 내부에서 이질적인 각 개체가 각기 행동의 자유를 만끽하는 가운데 생산되는 것이어야 한다.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강제로 최면에 걸린 상태는 문화라 하지 않고 한낱 박제(剝製)일 따름이다.

그리고 문화는 창조적이어야 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복하는 것은 모방(模倣)이며 마침내 부패(腐敗)하게 된다. 문화는 물처럼 흐르는 가운데 신선함이 있어야 하고 변화를 통하여 항상 참신함을 갖추고 산소(酸素)같은 생기를 불어 넣어 주어야 참다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산소없이는 모든 것이 연소하지 않으며 변화하지 않으며 새롭게 태어나지 못함며 무엇보다 살아남지 못하므로 일을 할 수 없다.

이러한 모든 여건을 참작할 때 문화의 주체는 노동자 계층을 분모(分母)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과 노동자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창조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건에서 문화를 조감해 보면 우리에겐 아직도 노동문화의 현주소가 분명치 않고 찬물에 기를 뜨듯 두리둥실 방황하는 실정이다. 물만 먹는 금붕어도 산소를 좋아하는데 노동자의 신바람도 탄산가스보다는 역시 산소(酸素)를 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