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忠武)와 권현(權現)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팔고(八苦) 중 수원봉고(讐怨逢苦)를 의미한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왜군을 대파한 인연으로 그의 사후에 받들어 추존(追尊)하는 시호를 충무공(忠武公)이라 했다 해서 한산도가 속해 있는 통영을 충무시로 명명한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충무에서 가장 대표적인 산업이 멸치잡이를 중심으로한 수산업이며 충무의 경제를 이끌고 간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수산업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일본어를 그대로 옮겨 쓰고 있는데, 일본인들이 강점했던 그때 그들에게서 배운 것이어서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퍽 꺼림칙한 것이 한 가지 있어 이 기회에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멸치잡이 어업을 기선권현망(機船權現網) 어업이라고 한다는데 여기서 권현(權現)이란 글자는 순수한 일본말이며 우리나라 말로 그대로 옮겨 써서는 결코 안 되는 말이다. 특히 이 고을은 충무라는 이름의 도시이고 보면 권현이란 괴상한 글자는 바다 밑에 깊숙이 깔아 뭉개버려야 마땅하다.

권현은 일본에서 떠받드는 해신(海神)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원래 이름은 동조대권현신(東照大權現神-도조다이곤겐가미)이라 부르며 바다를 평화롭게 해 준다는 신이다.

일본 땅 중동부지방 일광(日光-닛고)에 동조궁(東照宮)이 있고 그 궁은 곧 이 권현신을 받들고 있는 신사(神社)로서 일본인들에게는 대단히 존경받는자의 무덤이다.

그 자가 바로 덕천가강(德川家康-도꾸가와 이에야스)이며 「권현신」즉 곤겐가미는 그가 죽은 후 유언에 따라 붙여진 추존명(追尊名)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큰 공을 세운 공신에게 붙이는 시호(諡號)와 같은 종류의 명칭과 같다.

참으로 기구한 것은 이곳에서 어이없게도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명칭이 서로 공존하며 눈을 흘기며 400여년을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충무공은 이 나라 남해안을 지켜주는 해신으로 추존(追尊)받고 있음을 우리나라 민족이면 다 안다. 고기잡이 나가는 모든 어선들은 모든 잡신을 몰아내고 말끔하게 보듬어준 충무공 이순신에게 경건하게 제사하며 해마다 풍어를 빌곤 하는데, 어이없게도 왜놈들 귀신 뼈다귀 곤겐가미가 아직도 떠돌아다니면서 못된 장난을 치니 우리 해신께서도 역시 텃세를 아니 하실리 없다고 생각한다.

"원하건대 잡신이여, 이제는 썩 물러가고 정축년(丁丑年) 새해에는 미도정항(美都情港)에 그득그득 풍년풍어(豊年豊漁)토록 빌고 또 비옵니다. 괘심하더라도 지난해처럼 모질었던 시샘만은 잠시 거두소서."

왜놈들 말이자 그들의 신이라 할 곤겐가미를 우리의 바다에서 몰라내지 않으면 철천지 원수와 같은 이 처절한 다툼은 이 바다가 있는 한 영원할 것이고 이 바다에 생을 건 어부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덤터기로 갖어다 줄 것이며 이러한 재난은 끊임이 없이 자손 만대에 이어져 나갈 것이다.

지금 기름범벅이 되어버린 바다에 원망 그윽한 시선을 떼지 못함은 신들도 인간들이 한 것처럼 처절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