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도서관

늘 봄!(常春)

몇일전.우체국에 갔더니 우표 값이 170원 한다더군요!
마누라는 "어?" 한마디만 하더군요!.40원정돈줄 알었다가 크게 놀란 겁니다.
흔히 물가가 올랐다 치더라도 그렇게 까지 오를리는 없는 것이고 한동안 세상물정
돌아가는걸 모르고 살아온지가 무척 오래되었다 싶었던 겁니다.
나 역시 편지를 써본일이 드물고 봉투에 담아 우표부치는일 조차도 다른사람에게
시키기만 했으니 이방면 물정에는 눈이 멀었던 것이고 마누라 역시 자식 손자 돌
보고 남편수발 하느라 옆사람을 둘러볼 겨를이 없어 편지한장 써본일이 없었을 것
이라는 추측을 하였지요.

불쑥, 마누라 고향집을 찾아갔습니다.
가야산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이는 경북성주!.
고향마을로 들어가 이집저집 기웃기웃하면서 들여다보더니
"모두 낯선 얼굴인데...?"하는 겁니다.
집은 낡아 헌집이되었어도 옛자취는 그대론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많
이 달라 졌다는 것입니다요.
그 동안 30여성상을 돌아보지 않었던 자신을 생각해 보고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았다던 옛집 대문을 섬큼 들어서는 것이였습니다.매하초당(梅下草堂)!이미 고인
이 되신 장인이 옛날에 써 걸어둔 액자가 전혀 퇴색되지 않은체 사랑채 처마에 걸
려서 오래간만에 찾아온 자녀를 마지하는 어른처럼 내려다 보더군요! 보기보다는
매우 깔끔해 보여서 물었더니 그 집에사는 젊은이가 이것이 매우 소중한 것 같이
생각되어 가끔씩 먼지를 닦고 색칠(?)도 했다고 자랑삼아 말을 건넸습니다.
이윽고 멀리서 아는 사람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는 언니 오빠들! 하나둘 그의 주위에 뫃여 들었습니다. 그리고선 서로 손도 잡
고 얼굴을 만져가며 눈물을 닦더군요! 제 처가집 역시 일찍이 도시로 나와 살기에
마누라 시골집은 한동안 념두에도 없었는데 이렇게 정겨운 장면들이 연출되는걸
보고 제가 마누라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 같은 생각을 했어요!
한동안 무관심한 사이에 모두 쭈구럭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는 현실에 세월
만 불현듯 지나가서 사람을 이렇게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느닷없이 원망
스럽더라구요.

문득 옛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옛날 가야산에 신선이 살았는데 신선의 세계에서
얼마간 세월이 흐른뒤 하루는 자기가 살던 고향을 찾아 갔답니다.
고향동내에 이르러 어귀에서 노인한분을 만났는데 유심히 살펴보니까 조금 늙기는
했지만 틀림없이 소년때 뵙던 자기 할아버지더랍니다.너무도 반갑던차에 달려가서,
"할아버지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하고 엎드려 넙죽 절을 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젊은 청년으로부터 정중한 인사를 받은 이 노인장!
"누구신지요?"하고 그 청년을 이르켜 세우면서 물었는데 그 청년은 말했어요.
"저는 일찍이 어릴 때 고향을 떠나 가야산속에 가서 산 ......"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인네는 황급히 땅바닥에 엎드리더니,
.

"어이쿠!종조부님!저는 종손자 oo입니다.아버님께서 종조부님 한분이 가야산에 신
선이 되어 계신다는 말을 들었는데요..어어물물........"하면서 어쩔줄 모르더 랍니다

손자손녀들이 모이고 상좌에 올라 앉아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연이어 할아버지
소리를 듣고 있는사이 너무나 세월이 많이 지나가는 동안에 세상이 너무나 많이
바뀐 것과 자신이 인간세상으로 돌아온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미처 이같은
현실을 느끼자말자 이 신선친구!갑자기 팍 늙더니 꼬부랑 백발노인으로 변하더랍
니다.

저희집엔 난초가 몇 포기 있는데 먼 남쪽바닷가에 수자리 살다가 얻어온 겁니다.
춘란이라고 합디다?춘란이라는 것은 반드시 봄에만 꽃이 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집에서 피는 이 춘란은 지루한 장마철,찌는 듯 열대야에도 피어나고
가을이 접어드는 요즘음도 망울이 다시 맺어지면서 또 다른 포기에서 꽃이 돋아나
고 있어요!
이 난(蘭)들은 저희집이 늘 봄인줄 아는가 봐요!
늘 봄!상춘(常春)이 따로 있나요?
아내가 '늘 봄'처럼 따스한 이야기만 들려주니까 그럴거란 생각을 해요. 하지만 아
내가 잘해 주기만 기다린다는 것은 좀 이상하잖아요?사실상 바깟일 핑계대고 집안
팍일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남편들로서는 무언가 아내에게 해야할 일이 있음직하
지요. 그러니까,집안을 늘 돌보지 못하는 처지라면 무엇보다 집안에 대해서 누구보
다 살뜰하게 돌보는 주부!그에게나마 잘 해줘야만 집안이 봄날처럼 안온할거 아니
겠습니까? 집안이나 기업이나 나라나 뭐 다를게 있나요? 뭘 잘해준다고요? 그야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는일 이것이 중요하지 않을 까요?
요즘 난초도 그리고 매화 대나무등등 사군자 치는 마누라가 낙관으로 쓸 이름하나
지어달라고 하기에 문둑 생각나는게 있더라구요! 늘 봄!(常春)제법 어울릴 것 같지
않나요?
늘 봄(常春)!괜찮지요?누구에게나 봄을 생각하면 마음도 봄처럼 청춘이 된다고 하
는데 이 이름을 지어주면서 부탁을 한가지 할가해요!
"이 '늘봄'이란 이름을 곁들여 될수록 많은 친구에게 묵화를 그려 나누워 드리면 좋겠소"

1998년 9월 10일
아내에게 (예호=藝號) "늘봄 常春"을 권하며,

둘이사네 이 관희

노동정보 칼럼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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