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희 수필모음  

 

                 차   례



1 윗니 없는 소 ……………………………………… 9

 

  윗니 없는 황소 ……………………………………………………… 11

  태양과 북풍 그리고 봄 ………………………………………… 14

  콩쥐마담 …………………………………………………………… 16

  바라밀(波羅密) 사랑 ……………………………………………… 20

  사람은 어디에 ……………………………………………………… 23

  배꼽은 빠져도 ……………………………………………………… 26

  망년고개 …………………………………………………………… 29

  자충수(自充手) …………………………………………………… 32

  12월 32일 …………………………………………………………… 35

  비방은 누명을 잉태 ……………………………………………… 37

  입걸레(껌) ………………………………………………………… 41

  매미 오빠 …………………………………………………………… 43

  공직자와 사랑 ……………………………………………………… 45

  하잘 것 없는 놈! ………………………………………………… 48

  살인자의 어머니 …………………………………………………… 52

  문화지수(CQ) ……………………………………………………… 54

  간절한 고향생각 …………………………………………………… 57

  우물속 산신령 ……………………………………………………… 63

  나귀가 호랑이를 짝사랑 ………………………………………… 66

  경국제민(經國濟民) ……………………………………………… 70

  한술이 ……………………………………………………………… 72

  시일야방성대소(時日也放聲大笑) ……………………………… 75


2 한국인의 꼬리 …………………………………… 77


  한국인의 꼬리 ……………………………………………………… 79

  도둑을 쫓다가 ……………………………………………………… 82

  어머니를 능욕한 죄 ……………………………………………… 87

  돈으로 통일을 샀다 ……………………………………………… 90

  대한국인(大韓國人) ……………………………………………… 94

  충무(忠武)와 권현(權現) ………………………………………… 107

  미도정항(美都情港) ……………………………………………… 109

  옛날의 한 운동권 ………………………………………………… 112

  금테 똥테 ………………………………………………………… 118

  사향노루의 배꼽 ………………………………………………… 121

  화명(華明)이여! 명예욕이여! …………………………………… 126

  머리 둘 달린 새 ………………………………………………… 130

  욕만 먹는 놈! …………………………………………………… 134

  우울하게 사느니 차라리 사표를 쓰라! ……………………… 138

  돈이 너의 주인행세를 하고 …………………………………… 141

  잔소리 쟁소리 …………………………………………………… 145

  사탕을 좋아하느냐? ……………………………………………… 149

  왜인들의 다도(茶道) …………………………………………… 153

  있다? 없다? ……………………………………………………… 157

  갑오농민전쟁의 전략적 교훈 …………………………………… 160


3 노동인간 ………………………………………… 169

  네놈은 쫄보여! …………………………………………………… 171

  부질없이 매혹당해 ……………………………………………… 175

  문화성 임금 ……………………………………………………… 179

  승화(昇華)하는 노동운동 ……………………………………… 182

  이런 교섭 저런 교섭 …………………………………………… 184

  요분질 교섭 ……………………………………………………… 186

  성인무지(聖人無知) ……………………………………………… 188

  노동인간 ……………………………………………………………190

  근로자가 행복한 나라 …………………………………………… 193

  소매치기 …………………………………………………………… 195

  3등노동자 ………………………………………………………… 197

  삼이사공 일오육구 ……………………………………………… 199

  장애인 고용 ……………………………………………………… 203

  계약자유 …………………………………………………………… 206

  만족과 감동 ……………………………………………………… 208

  형제의 강 ………………………………………………………… 211

4 민족주를 삽시다 ………………………………… 213

  민족주를 삽시다 ………………………………………………… 215

  최근 일본의 사회복지 동향 …………………………………… 217

  일본 통산성의 실체 ……………………………………………… 228

  일본은 일어난다 ………………………………………………… 237

  일본을 따라잡자 ………………………………………………… 264

  일본은 문화가 있는가? ………………………………………… 270

  왜적의 침략비책 ………………………………………………… 283

  관동군 120사단 …………………………………………………… 302

저자소개

 

윗니 없는 황소


  “사람은 어디에 쓰입니까?”

  학생이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은 대답했다.

  “돼지를 잡으면 배를 불리고 범을 잡으면 가죽을 덮어쓰지만, 사람을 잡게 되면 살인죄밖에 덮어 쓸 것이 없느니라. 그러니 오늘날 사람의 가치는 돼지나 범만큼 못하여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됐다.”

                                      -「사람은 어디에……」중에서

       윗니 없는 소


  소는 윗앞니가 없다. 소뿐 아니라 낙타, 염소, 양과 같이 먹이를 새김질하는 동물은 모두 윗턱앞니(上顎門齒)가 없다.

  사무실에 걸린 달력에는 이중섭 화백이 그린 황소 한 마리가 있다. 호암미술관에 보관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 그림을 보면 식민치하 극악스런 질곡 속에서 응어리진 한을 가슴에 품고 그 고통을 이 화폭 가득히 옮겨다 놓은 한 천재화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소는 군드레를 풀고 허어연 앞니를 들어내 보이면서 당당한 모습으로 고개를 치켜올리며 거센 숨을 토해내고 있다. 억세고 씩씩하며 사나운, 가히 경외로운 모습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던 나는 지나가는 말로,

  “이 소는 이빨이 다 있네?” 하였다.

  이때 옆좌석에 있는 직원이 이 말을 들었는지,

  “아니! 이빨 없는 소도 있습니까? 병신 소나 없겠지요!”

  혹 내가 어찌 되거나 한 것처럼 물끄러미 쳐다보기까지 한다.

  “그게 아니라, 소는 원래 앞니가 없다네.”

  나는 변명이라도 하듯 설명조로 말하였더니,

  “이가 없으면 음식을 어떻게 씹어 먹습니까. 소가 늘 음식을 되새김한다고 하는데 이가 없으면 되새김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잘못 아신 것 아닙니까?”

  그는 내 머리가 돈 것 아니냐는 듯 걱정스레 제머리 위로 손을 빙빙 돌린다. 이렇게 말이 오고가는 사이에 주위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한다. 늙어서 이빨이 빠져버렸거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빨 없는 동물이 어디 있느냐고도 했다.

  또 무슨 농담을 하려고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시작하느냐는 말에 발끈 오기가 동한 나는 주위 사람들이 너무 우기니까 그냥 넘어가기는 싫었다. 우선 수의사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각기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여보세요! XXX동물병원입니까? 미안합니다만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소는 윗앞니(上顎門齒)가 있습니까? 있어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여보세요! 젖소목장입니까? 미안합니다만 소는 윗앞니가 있습니까? 예? 있지요! 그렇지요, 고맙습니다.”

  여기저기 걸어보더니 이제는 자신이 붙었는지 이번에는 그러지 말고 내기를 하자고 나왔다. 만일 수의사에게 물어봐서 이가 있다면 돈을 내자고 한다.

  “그런 걸 가지고 내기까지 할 것 있나? 그냥 물어 보기만 하라구.”

  “자신이 없으면 사실대로 항복하세요! 농담이었다구요! 수의사에게 네군데나 물어 봤는데 모두 있다는 거예요! 아랫니는 없어도 윗니는 틀림없이 있다는 수의사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농담이라고 하고 물러설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어떤 수의사인지는 몰라도 요즘 수의사는 강아지나 취급하기 때문에 소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모양인데, 소는 틀림없이 윗앞니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선생님은 나이를 잡수시더니 점점 고집만 세어지시는군요. 저기 이중섭 화백이 소를 전문으로 그린 사람인데 저런 실수를 할 리가 있겠습니까? 저 그림을 보더라도 소는 윗앞니가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아니 수의사도 못 믿어요? 직접 젖소를 키우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요 별 일 아닌걸 가지고 싸우겠습니다 그려. 선생님편 드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민주주의식으로 해도 안 되겠는데요?”

  이제는 아주 조롱조로 나온다.

  소를 키우는 사람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여, “자 이제 그만 하고 일합시다” 하고 말했다. 나는 이제는 기진맥진할 지경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날도 이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그런데 어제 젖소 키우는 사람에게 물어본 직원이,

  “집에 가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애에게 물어 봤는데 소는 윗앞니가 없다고 합디다.”

  “아니 젖소 키우는 사람의 말이 틀린단 말이요? 다시 한 번 물어 봅시다.”

  “여보세요! 목장이지요? 또 전화해서 미안한데요, 소 윗앞니가 있는지 직접 가셔서 확인 좀 해주시지요! …… 네? 직접 만져 보고 왔다구요? 없어요? 틀림없이 없다 이 말씀이지요. 혹 늙은 소가 아닙니까? 다른 소들도 마찬가지라구요. 예!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찰깍.”

  “어제는 있다고 하더니 하룻밤 사이에 이빨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 거야! 세상 참 믿을 수 없군 그래!!”

  이로써 소는 윗앞니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던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고 이날 나는 혼자만 병신 되는 수모를 겨우 면하긴 했다.

  ‘역시 소는 윗앞니가 없다’라고 나 혼자 중얼거린다.



태양과 북풍, 그리고 봄


  만나기만 하면 실력대결을 해보고 싶어하는 태양과 북풍이 어느 봄날 만났다.

  마침 어여쁘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바닷가를 사뿐사뿐 산보하고 있었다. 둘은 아가씨의 코트를 가장 신사답고 멋있게 벗겨 보기로 내기를 걸었다.

  먼저 태양이 실력을 발휘해 보기로 하고 즉시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아가씨는 서슴없이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잠시 후 바다 위에는 몇 개의 물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왔고 바다는 다시 조용해졌다. 아가씨는 영영 다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북풍은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너무나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양의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행동을 엄중히 나무랐다. 태양은 머리털도 하나 없는 대머리를 긁적긁적 하더니 다시 다음과 같은 내기를 제의했다.

  마침 유리창문이 달린 양옥집 안방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소년이 눈에 띄었다. 그의 피로를 풀어주자는 내기를 했다. 이번에는 북풍이 먼저 실력을 보여주기로 했다.

  북풍은 태양의 콧대를 꺾어 놓을 때는 이때라 생각하고 소년이 공부하고 있는 창가로 접근하여 살그머니 방안에 들어가려고 유리창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창을 통과하려고 했으나 속수무책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도저히 창문을 통과할 묘안이 없었다.

  이 사이 태양은 유리창으로 살그머니 스며들더니 열심히 공부하는 소년의 볼에 따뜻한 입맞춤을 했다. 마치 어머니 품에 잠든 아기처럼 소년은 행복해 보였다.


  상대방이 창문을 열지 않는다고 유리창을 깨뜨릴 수는 없지만, 상대방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탓하고 포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열도록 하는 기다림의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태양의 지혜처럼 아무 저항 없이 상대방의 마음에 자리잡을 수 있는 온화한 역량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투시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

  지나치면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그리고 모든 승부에 있어서 영원한 승자는 결코 없다.

  이제 문민의 시대를 맞은 한국의 노사관계,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을 맞았다. 만나기만 하면 아웅다웅 하는 모든 당사자는 이 봄을 맞아 보기 좋은 봄옷으로 갈아 입어보자. 꽉 쥔 주먹을 펴고, 악다문 이를 풀고 목소리를 아름답게 가다듬으며 정감 어린 맑은 눈길로 만나자.

  새봄을 맞이하면서 서른 몇 해만에 만난 봄을 헛되어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자.



콩쥐마담


  콩쥐가 사는 마을에 상감님이 행차하실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상감님 행차는 시골 구석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구경거리로 여겨지던 시절이라 일생에 한 번 볼까말까 하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집집마다 입성치레하기 바빴다.

  콩쥐네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계모는 우선 언니인 콩쥐는 제껴두고 자신이 데려온 의붓딸 팥쥐에게 입힐 옷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입고 있는 것도 주체를 못할 정도로 많이 있었지만 명절보다도 드물게 찾아오는 이런 기회 아니면 먹성이나 입성을 챙기기 위한 구실을 얻기가 어려운 일이어서 이때를 놓칠세라 또다시 모든 것을 새것으로 짓고 신발도 호화로운 꽃신으로 장만했다. 하지만 콩쥐에게는 머리댕기조차 새것으로 장만하려 하지 않고 팥쥐가 쓰던 것 중에 가장 낡고 버려야 할 성싶었던 것 한 개를 건네주면서 생색은 있는 것 없는 것 다 들추긴다.

  콩쥐가 믿는 것은 그나마 아버지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련히 해줄 것으로 믿으나 이제 와서는 아비 역시 계모 눈치만 보느라 담뱃대만 빨고 먼 산만 바라보면서 모른체 한다.

  이윽고 임금님의 행차가 마을 앞을 지나간다는 날이 밝자 새벽같이 일어난 계모는 팥쥐에게 새옷을 입히고 새 신발을 신겨 마을 어귀로 부리나케 나가며,

  “콩쥐야, 나는 네 동생 데리고 임금님 뵙기 좋은 자리를 맡아 두어야 하니 넌 밑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고 벼 열 섬을 모두 찧어놓고 따라 오너라.” 하고 으름장을 놓는다.

  콩쥐는 설움에 복받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다가 저녁녘에 계모가 들어와서 혹독하게 꾸짖고 매질할까 두려워 부지런히 일했다. 샘물을 길러 독에 부었지만 야속하게도 밑구멍이 훌러덩 빠져 버린 키를 넘는 큼지막한 독에는 물이 좀처럼 고이질 않았다.

  그러는데 하늘에서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도 없으며 없는 것도 능수 능란하기로 빼어난 선녀가 옥황상제의 명으로 많은 시녀들과 함께 내려왔다. 독에 물을 그득 채우고 벼도 말끔히 찧어 놓았다. 그리고 콩쥐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고 맵시나는 새옷도 그 자리에서 당장 지어 입히고 가장 예쁜 꽃신까지 신겨 임금님 행차를 구경할 수 있도록 빈틈없이 때맞추어 보냈다.

  콩쥐는 임금님의 행차를 구경하느라 거의 얼이 빠졌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어 황급히 돌아오는 길에 그만 꽃신 한 짝을 잃어버리는 큰 실수를 했다.

  그러나 실수가 전화위복이 되어 마침 이 예쁜 꽃신을 주운 임금님은 이 꽃신 임자를 찾기 위하여 이 마을 저 마을 모든 처녀들에게 하나하나 신겨 보았지만 꽃신에 딱 맞은 처녀는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무서움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뒷켠에 숨어 있던 콩쥐에게 신겨보자 ‘딱’ 하는 소리가 나도록 ‘척’ 들어맞지 않는가?

  그래서 콩쥐는 임금님 며느리가 되어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너무 옛날 이야기인데다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고들 빈정대며 이렇게 말을 한다.

  “팥쥐는 콩쥐를 닮게 성형수술해서 콩쥐 대신 임금님 며느리가 되고, 콩쥐는 상심하여 멀리 떠나갔는데 훗날 들은즉 경남 충무 통영에 있는 어느 술집 마담으로 지낸다더라.”

  하기사 전통문화는 외래문화에 밀려나고, 농어촌은 도시화에 밀려 황폐한 시궁창으로 변모하고, 예의와 도덕은 떨어지고, 이익과 모략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팥쥐는 제 어미의 강력한 후원을 얻어 갖은 호강을 누렸지만 더 예쁘고 마음 착한 콩쥐는 어미 없는 탓 하나만으로 제 아비로부터도 소외 받는 신세로 전락한다.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쫓아버린다던가?

  우리가 무려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송두리째 나라를 빼앗겼던 역사는 일제통치 36년이었다. 그들은 한반도를 영구히 그들의 식민지로 갖기 위한 첫 번째 일은 민속과 전통을 단절시키는 소위 문화정책이라는 것을 앞 뒤 돌보지 않고 단시일 내에 망가뜨리고 말았다.

  눈에 뜨이는 문화재라 할만한 것들은 모두 파괴하고 또 모조리 훔쳐갔다. 연연히 전래된 우리네 민속은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여 우리 민족의 손에서 멀리 하도록 종용하였다. 또 우리의 전통문화는 미개한 문화라며 멸시하는 풍조를 일으켜 하나둘 사라지게 만들고, 그들의 해괴한 풍습을 옮겨다 우리네 마음속에 심어 보려고 별별 짓거리를 다했다. 말을 빼앗고 글을 빼앗고 이름마저 뭉개버렸다.

  인류사에서 나타난 가르침을 눈여겨보면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잃은 민족은 사라졌고 다른 민족에게 흡수되고 말았다. 한때 대청제국을 건설하여 중원을 호령하던 여진족들은 거대한 중국의 호화스런 환경에 함몰하여 풍비박산되어 버린 후 영원히 이 땅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중화민족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침몰하여 다시는 재생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로마 역시 방대한 식민지에서 흘러드는 부(富)에 탐닉하여 어느덧 민족정신이 허물어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유물만이 덩그렇게 후세사람들의 교훈거리로 남기고 오늘날에는 도둑이 들끓고 부패로 뒤범벅이 된 후유증만 남기고 말았다. 천년의 문화를 장식한 역사의 주인공 자리를 물려주고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와 같이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곧 민족정기를 지키는 것이요, 고유한 주체적인 문화의 바탕 위에 새로운 문화를 증폭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외래문화에 심취하여 전통을 뒤엎어 버리는 망발을 한다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네 전통문화가 남해 구석 어느 바닷가 술집으로 쫓겨나는 신세처럼 된 다음에는 더욱 비참한 최후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철퇴처럼 떨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더구나 지난 36여년의 굴욕스럽던 왜놈들의 지배도 장차 400년 아닌 4000년이 지나도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운 절망의 지경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 자명하다.


바라밀(波羅密) 사랑


  우리나라 말 중 ‘사랑’이란 낱말은 매우 혼란스런 표현 중 하나이다.

  어미가 자식에게 조건 없이 쏟아 붓는 인간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일컫는 한편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는 소위 연애 감정의 표현도 ‘사랑’이란 말로 이용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인간이 표현하는 감정은 그 질량이 매우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는 것은 모순이다. 그래서 진실한 사랑의 의미가 희석되고 있고, 사랑에 대한 감정표현에 심각한 갈등을 빚게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랑에 대한 방황도 이것 탓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흔히 에로스니 아가페니 하는 서양식 구분을 끌어들여서라도 달리 설명해 보려고 안달을 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이런 수작은 더욱더 혼선만 가져올 뿐이다. 이러한 것은 한국인에게 진솔한 사랑의 맛을 느끼게 하고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래 어미가 자식에게 쏟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표현했는데 남녀간, 아니 암컷과 수컷이 서로 주고받는 감정을 더욱 밀착시키려다보니 부득이 이 숭고한 ‘사랑’이라는 표현을 분별없이 차용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심지어 자기보다 못한 자에게 연민이 담긴 소위 동정 따위도 의미를 크게 부각시키기 위해 부득이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호도하려는 수작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라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근래에 이르러서는 장사꾼이 물건을 팔기 위하여 고객을 향해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로 쏟아 붓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거짓투성이의 정치적 술수로 또는 악명 높은 독재자의 입에서도 ‘사랑’이라는 표현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진솔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내기에는 점점 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진솔한 사랑의 의미는 여러 가지 사이비적인 개념과 혼동되어 ‘사랑’의 참뜻이 많은 곡해를 불러일으키고 참된 맛을 잃고 말았다.

  “인간은 살아지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태어날 때 이미 살아질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 모든 생물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는 인간이냐 아니냐는 한가지 뿐이다.

  이미 사랑을 푸짐하게 안고 태어나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태어남도 많이 있다. 사랑 받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도 마침내 노력 끝에 사랑을 받는 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사랑을 담뿍 받고 태어났지만 사랑 받을 일을 하지 못하고 떠나는 자도 많다. 많은 재산과 많은 덕을 자신도 모르게 안고 태어나는가 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모함과 질책과 부채를 떠맡아 짊어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 숱한 빚을 모두 탕감하고 떠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없는 빚도 더욱 많이 쌓아놓고 떠나는 이도 많이 있다.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주는 동정(同情)

  장사꾼이 물건을 팔고자 거짓으로 떠벌리는 사기(詐欺)

  정치꾼이 민심을 얻겠다고 간질이는 공갈(恐喝)

  악명 높은 독재자의 비수를 감쳐주는 미소에 나타나는 협박(脅迫)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한 번 태어나 사라지면 다시 와서 이 빚을 갚을 방법은 없다. 그 빚을 남기고 떠나면 물론 그와 인연이 있었던 이들의 몫이 된다. 이것은 그와 인연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가도 시원치 않을 처지에 오히려 사랑을 빚지고 떠나는 형국이 되고 만다. 한 번 저질러진 일을 되돌이키지 못하는 것만 안타까울 뿐이다.

  이 안타까움을 남기지 않고 떠나가고픈 파라밀 사랑!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도 가슴이 조여온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남긴 한 조각의 사랑이 과연 있었는가? 남기고 가는 빚은 얼마인가?

  바위나 금속에 새겨놓은 이름보다 더 오랫동안 그의 영혼을 괴롭히게 될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아픔의 강도가 커질 것은 뻔하다.

  이 아픔을 스스로 불살라 버린 다음, 영혼이 몸담고 있는 이 육신을 벗어나는 홀가분한 마음은 어떻게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깨달음에 접어드는 좁은 골목길인가?

  이것이 진정 저 건너편을 훌쩍 넘어갈 수 있는 조각배인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사람은 어디에…


  “사람은 어디에 쓰입니까?”

  학생이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은 대답했다.

  “돼지를 잡으면 배를 불리고 범을 잡으면 가죽을 덮어쓰지만, 사람을 잡게 되면 살인죄밖에 덮어 쓸 것이 없느니라. 그러니 오늘날 사람의 가치는 돼지나 범만큼 못하여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됐다.”


  살신성인(殺身成仁)

  ‘목숨을 바쳐 사랑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그 삶은 벌레와 다름없이 보잘 것 없으나 생명을 부지하는 동안에 사랑으로 맺어지면 부패함이 없고 노쇠함이 없으며 병들지 않는다. 재산에 욕심을 기울여 놈의 노예가 되면 금수나 벌레와 같이 어리석음과 욕심에 현혹되어 한치 앞을 살피지 못하고 암흑에서 헤매며, 한 번밖에 갖지 못할 목숨이 다하는 그날에 이르러 비로소 오장이 무너지는 회한을 토하며 숨을 거둔다.”

  

  사랑이란 말 중에 남녀간 주고받는 사랑,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 불쌍하다며 동정을 나누는 사랑 따위가 있다. 그러나 목숨과 바꿀 정성이 그 속에 담겨 있지 않으면 그것은 한낱 사랑이란 말을 훔친 동물적 본능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나라 말이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좋다고 하지만 일부 정직하지 못한 부분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혼동하여 쓰고 있다. 막상 올바르게 가려서 써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함부로 뒤섞어서 쓴다는 것이 결점이라면 큰 결점이다.

  사랑은 마음을 강제로 사로잡으려는 치정(癡情)과 다르며, 없는 자를 위해 힘을 부어주는 동정(同情)과 다르다. 심장을 주고 생명을 구하려는 정성이 솜털만큼만 남아도 사랑으로 간주할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은 오직 정성이 담긴 인간의 목숨으로서만 교환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화폐도 태환화폐(兌換貨幣)나 불환화폐가 있듯 사람 중에도 교환가치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기와 가죽조차 쓸모 없는 하잘 것 없는 존재도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생활이 윤택해진 것은 오직 사랑의 교환이 꾸준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성된 부산물일 따름인데 오히려 여기에 탐닉하여 헤어날 줄 모르고 스스로 인간의 존귀함을 깎아 내리는 존재도 있다.

  돈이면 인간의 목숨까지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특히 그렇다.

  고기로도 쓸모 없고 가죽조차 쓸모 없는 인간의 육신일지라도 오직 사랑과 교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에 다른 어떠한 보화보다 귀중한 태환화폐이다. 비록 동물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바쳐 목숨을 구하면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인간의 가치는 인간 스스로의 희생이 거름이 되어야 참되고 소중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2천년전 33살의 젊은 청년 하나가 형벌 가운데서 가장 가혹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형벌을 자청해 사랑의 가치를 자신의 몸으로 실험해 보이면서 뭇사람들의 가슴 깊숙이 목숨과 사랑을 심어준 사례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값진 희생에 아쉬움을 간직하며 그가 태어난 날이 되면 아낌없이 축복의 말을 주고받고 있다.

  또한 왕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홀로 깊은 산 속을 헤매며 사람의 가치를 측정해 보려고 평생을 바친 그분의 무변한 가르침에 대해 뭇인생들은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고 있다.

  ‘죽기로써 싸우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이 유명한 말 한마디로 이순신은 싸움마다 이기는 상승장군(常勝將軍)이 되었고 마침내 그가 이끄는 병사들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이 나라를 구했다. 이런 흥미진진한 역사를 우리는 현재도 갖고 있다.

  간추려 말하면 사람은 자신의 심장을 교환하듯 사랑하며 살아왔고, 앞으로 또 이렇게 사랑해야 인간으로서 존재하며 살아남을 수 있다.


  “사람은 어디에 쓰입니까?”

  하고 제자가 묻거든,

  “사람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데 쓰인다.”

라고 대답할 일이다.

  이제는 목숨의 일부분인 장기(臟器)를 이식할 수 있는 시대에 살다보니 사람의 가치는 조금씩이나마 높게 평가받는 것 같다.

배꼽은 빠져도

 

  훌쩍 떠났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서해안을 끼고 남쪽을 향해 훌쩍 떠났다. 통통배를 타고 남으로 나아갔다.

  어느 섬에 닿았다. 목적은 ‘도서해안지방 주민의 성생활 및 의식구조 변화와 산업사회 적응도 측정’을 위한 학술조사였다.

  먼저 개인별로 생일을 알아두는 것이 긴요하다고 생각되어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

  “아주머니 어느 달에 태어났지요?”

  “오월인디유.”

  “저는 시월이래유.”

  우리는 열심히 묻고 또 불러주는 대로 조사표를 메꾸면서 성실하게 조사했다.

  “할머니 생일이 언제지요?”

  “그건 왜 묻는 거유. 오월 아님 시월인디.”

  “생일이 둘이란 말인가요? 그게 무슨 뜻이지요?”

  “정월 대보름 아니면 팔월 보름께가 큰 대목이니께 오월 아님 시월이 생일이지유.”

  “갯가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래유. 그때 모두 가득 싣고 돌아오니께유.”

  “홋홋홋홋홋홋홋.”

  둘러섰던 아주머니들도 배꼽을 잡고 호들갑을 떤다.

  “훗훗훗훗훗훗훗.”

  듣고 있던 아저씨들도 허리를 휘어잡고 웃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배꼽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웃고 또 웃다가 저녁때가 되자 각자 자기네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곳에서 배꼽 한 개를 주어와 삼십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관중이다.


  술 마시면 눈물나고, 노래하면 웃음이 터진다.

  ‘나는 음치(音癡)다’라고 고집하는 사람 중에 진짜 음치는 없다고 한다. 음치라는 뜻은 ‘노래바보’라는 뜻이란다. 마이크를 잡으면 귀먹은 것처럼 반주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박자와 음정이 뒤죽박죽이 되어 모두 틀린단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모두들 배꼽이 빠져라 허리를 잡고 웃길래 내가 노래를 잘 불러 그들이 즐거워 웃는 듯 여겨져 목이 터져라 부르곤 했었다.

  최근에 비로소 내가 음치인 것을 알고 이를 악물고 연습장에 갔다. ‘찔레꽃’을 서른 번 불렀다. 목에서 피가 솟아나도록 불렀다. 배꼽이 빠지도록 불렀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불렀다.

  이제 충무 통영서 ‘찔레꽃’ 하나는 제일 잘 부를 자신이 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충무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거제도 서쪽 바닷가가 나온다. 그곳에 가면 여차라는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는 지금도 찔레꽃이 붉게 핀다.

  과연 남쪽 나라에는 어김없이 찔레꽃이 붉게 피고 있었지만 우리는 한동안 이 노래를 「붉은 나라」의 노래라 해서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절대로 입밖으로 뱉어내지 못했던 시절을 살았었다. 그러나 붉은 찔레꽃이 핀 것을 본 지금은 이 노래가 너무 좋다.

망년고개

 

  산에 올랐다. 오랜만에 마누라를 앞세우고 산에 올랐다.

  마누라 히프에 시선을 꽂고 걷는 동안 얄궂은 싯귀가 문득 떠올라 내 입가에는 웃음이 번져 나왔다.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그 히프를 따라 산에 올랐다.

  ‘잘 익은 늙은 호박처럼 풍만한 마누라 엉덩이…….’라는 고약스런 싯귀다.

  힐끔힐끔 뒤돌아보던 마누라가 수상쩍게 여기며,

  “유월 소 하늘 보며 웃는다더니 당신도 그 꼴이군요. 뭘 생각하고 웃어요?”

  그 싯귀를 음미하느라 넋빠진 사람처럼 웃던 나는 갑작스런 질문에 엉겁결에 엉뚱한 말로 둘러댔다.

  “옛날 삼년고개 이야기 알고 있지요?”

  “그래요. 국어책에 나왔지요. 어떤 영감이 삼년고개에서 넘어져 걱정을 했다, 그거지요?”

  “그래요. 그런데 요즘은 이야기가 달라졌다지 아마?”

  “무엇이 달라졌는데?”

  내가 반말을 하니까 마누라도 덩달아 반말을 한다.

  “음, 이야기인 즉슨.”

  나는 입맛을 다시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영감은 자식들을 모아놓고 한숨을 쉬면서 삼년고개에서 넘어졌기 때문에 자기는 앞으로 삼년밖에 못산다며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

  마침 문안 왔던 이웃 사람이 위로 삼아 말하기를 한 번 넘어지면 삼년, 두 번 넘어지면 육년, 세 번 넘어지면 구…….

  눈치 빠른 영감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제 아팠느냐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그 길로 단숨에 삼년고개 꼭대기에 도착하기 바쁘게 연거푸 엉덩방아를 찧었다.

  ‘세 번이면 삼삼은 구 아홉 해, 네 번이면 삼사는 십이 열두 해, 다섯이면 삼오십오…….’

  하고 신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때 동네 장난꾸러기들이 산신령 목소리를 흉내내어 외쳤다.

  ‘삼천갑자 동방삭도 이 고개에서 삼천 번을 굴렀노라아~~’

  그러자 메아리도 덩달아 외쳤다.

  ‘삼천갑자 동방삭도 이 고개에서 삼천 번을 굴렀노라아~~’

  “그래서 영감도 덩달아 ‘삼천갑자 동방삭도 이 고개에서 삼천 번을 굴렀따아아’ 하면서 산꼭대기로 기어올랐지요.”

  “그래서요?”

  마누라는 내가 존대하니까 따라서 존댓말로 묻는다.

  “그저 오래 오래 살 욕심만 솟구쳐 사정없이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어디서 또,

  ‘삼천갑자 동방삭도 이 고개에서 구천 번을 굴렀노라아~~’ 하니 산울림도 역시,

  ‘삼천갑자 동방삭도 이 고개에서 구천 번을 굴렀노라아~~’ 한다.

  영감도 신바람이 났다.

  ‘삼천갑자 동방삭도 이 고개에서 구천 번을 굴렀다아--’

  하고 고함치며, 산꼭대기로 또다시 기어 올라가더니 떼굴떼굴 굴렀다.

  구르고 또 구르던 영감은 너무 지쳐 산기슭에 가로질러 눕더니 영영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래 오래 살려던 그 영감, 삼년은커녕 단 하루도 제대로 못살았다누만?”

  마누라는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흥?”

한다.

자충수(自充手)

  자신이 놓은 돌이 오히려 자신을 포위하는데 도움을 줘 자멸할 때 흔히 쓰이는 바둑용어를 자충수라 한다. 장님 제 닭 잡아먹는다는 말과 어울려 대개 바보스러운 일을 두고 비웃는 말로 인용할 때 쓴다.

  ‘저 사람 자충수를 두고 있군.’

  물은 강물이 되어 흐르기도 하고 옹달샘에 고여서 맑고 서늘한 맛을 뽐내기도 하는 것처럼 고금을 통하여 많은 선각자들이 명멸하면서 주옥같은 좋은 지혜를 가르쳐 왔다.

  노자(본명 이이-李耳, 자는 백양-伯陽, 주-周왕실장서각지기, 공자는 ‘老子-연상의 선생님’으로 불렀다)는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모아 만든 도덕경(道德經) 제36장에서,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먼저 주라.’

고 하며 먼저 양보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옛날에는 오랑캐에게 제 사랑하는 누이를 기꺼이 줬다. 떼놈이 오면 떼놈에게 시집보냈고, 그들이 돌아오면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조롱했다. 지금도 왜놈들의 감언이설에 홀려서 동경바닥에서 웃음을 파는 누이가 어디 하나 둘이더냐?

  들판에서 새는 바가지 집안에 들면 물이 새지 않을까? 선거 때가 되면 선심에 홀리어 투표조차도 선심 쓴다. 때가 되면 공명선거를 한다고 하면서 뒷구멍이 얼마나 큰지 돈을 받고 자신의 표를 선심으로 주어버린다. ‘들쥐근성’이라는 조롱을 받아가면서 그래도 ‘표 찍는 일’은 처삼촌 벌초하듯 한다.

  지금 일부에서는 역사반성의 바람이 불고 있고 여기에 민심의 눈이 집중되고 있다. 이 줄기찬 역사적 반성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국민은 초시대적 감각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세계를 누비며 흥미진진한 역사의 구석구석을 뒤집어 보는 것 같다. 그야말로 사차원의 신묘한 경지에 왔다.

  심지어는 500년을 거슬러 이성계를 논죄하는 이도 있고 최충헌을 거론하는 이도 있다. 방송은 매일같이 다투어 과거를 뒤집어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연재물로 들끓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늘 남의 흉내만 내며 조용히 살기를 바라왔다. 변화를 싫어했으며 적게는 나 혼자의 행복을 여미며 살아왔을 따름이다. 그러다 보니 ‘들쥐 같은 민족’이라는 혹평을 듣지만 무심하기만 하다. 늘 자충수를 두면서도 유유자적하다.

  만사형통수 ‘최후의 한 수’만 믿고 살기 때문이다. 그 한 수야말로 ‘물림수’인 것이다.

  ‘선거? 투표? 그 정도는 다시 물리지 뭐!’

  언제나 물림수가 있기 때문에 뭐 주고 뺨을 맞아도 부끄러움은커녕 마냥 물리기만 한다.

  말로는 국제화, 세계화를 말하고 있지만 이 구멍난 바가지를 들고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 이 ‘물림수’를 써먹을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자충수를 자초하는 버릇을 갖고 있는 한 항상 다람쥐 쳇바퀴는 그 자리에서 돌고 역사는 저만치 앞서 흘러가고 말 것이다.

  장부경전(長部經典)에 석가모니께서는,

  ‘자등명(自燈明)이니라. 스스로 등불을 삼아야 한다. 또 법등명(法燈明)이니라. 내가 지금까지 말한 가르침을 등불로 삼아 남을 의지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하셨으니…….


12월 32일


  어느 해 섣달 그믐날 밤, 어느 가난한 노동자의 아파트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양심을 도둑맞은 강도였다. 얼굴은 가렸지만 검은 옷을 걸친 건장한 체격의 남자 강도다.

  “돈과 패물을 몽땅 내놔!”

  마치 맡겼던 자기 것을 되돌려 받으려는 것처럼 당당했다.

  노동자 내외는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며 장롱 밑에 감쳐둔 현금 50만원을 생각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이 50만원밖에 없기 때문에 생각을 떠올린 것은 어렵잖으나 이것을 도둑에게 주어야 하느냐 아니면 없다고 딱 잡아떼어야 하느냐가 고민거리였다.

  이 돈은 지난 여름 건설공사장에서 일 해주고 미뤄왔던 품삯으로 그믐날 간신히 받아 밀린 집세를 지불해야 할 몫이었다. 이것을 강도에게 줘버리면 어린 자식을 안고 길거리로 나앉아야 할 처지에 있었다. 그래서 강도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철석같이 먹고 있는 터였다.

  내외는 똑같은 생각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안 내놓으면 죽이고 말테다.”

  강도는 노동자의 목덜미를 겨냥하고 당장 칼날을 꽂을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선생님! 저기 저 장롱에 돈이…….”

  그렇게 노동자의 아내는 강도에게 돈을 주고 남편의 목숨을 건져 볼 심산으로 울부짖었다. 엉겁결이지만 도둑에게 선생님이라고 한 자신의 기지에 내심 탄복하면서, 강도가 장롱 밑에 숨겨둔 돈을 들고 막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노동자는 도둑의 발목을 잡고 강도에게 애원하다시피 사정했다.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

  “그 돈을 가져가면 우리는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처지입니다. 그러니…….”

  “그럼 이 돈을 나누자는 수작이잖아! 안돼!”

  도둑은 들으나마나라며 노동자의 말을 가로채 버린 후 문을 나서려 했다.

  “그게 아니라 선생님이 갖고 있는 칼만은 그냥 두고 가셨으면 합니다.”

  “이 칼은 뭐에 쓰려고 하는 거야, 엉!”

  “이 밤이 밝기 전에 나도 남의 집을 털어서 최소한 집세는 구해놔야 안 되겠습니까.”

  그해의 섣달 그믐날은 하루가 더 연장되어 12월 32일까지 있었다. 차마 설날부터 선량한 노동자로 하여금 도둑질을 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비방은 누명을 잉태


  둘이사네야!(2244=필자의 HiTEL ID)

  많은 비방이 눈발처럼 날리고 여름날 장마비처럼 쏟아지건만 유유자적하며 그 비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 제법 기특하기 이를 데 없구나?

  옛날 석가모니께서는 몸서리치는 비난을 받으시면서도 일체의 동요 없이 묵묵히 하실 일만 꾸준히 하시면서 제자들을 다스렸다. 네가 이 가르침에 제법 통하는 것처럼 보여 매우 기특하긴 하다만 설마 그 어렵고 고통스러운 처지에 이르러도 그만한 생각을 깨우쳤으리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다만 네가 미욱하고 둔하여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여기고 싶구나?

  석가모니께서 몇몇 제자와 함께 코산비라는 도시에 머물고 계실 때였다. 평소 석가모니에게 원한을 품은 자가 고을 사람들을 매수하여 나쁜 소문을 퍼트리게 하였다.

  하루는 석가모니를 따르던 제자 가운데 아난다가 말했다.

  “선생님, 여기 오래 머물러 봐야 좋은 일이 없을 듯 하오니 다른 도시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난다여! 다른 동네에 가더라도 이와 같다면 또 어이 할 것인가?”

  그러자 아난다는,

  “또 옮기면 되지요!”

라고 대답하더란다.

  석가모니께서는 그제야 정색을 하고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해봐야 가는 곳마다 같을 것이고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오랠 것이다. 생각건대 비방을 받았다고 해서 동요하지 말고 꾹 참고 지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라 앉게 될 것이다. 깨닫는 자가 한낱 이해관계와 고락(苦樂)에 휘감겨서 움직인다는 것은 경솔하느니라. 이해관계에 집착하지 아니하며 고락에 치우치지 않는다면 어디를 가거나 머무르고 있는 데가 가장 아늑한 자리니라.”

  이 말씀은 법구경에 실려 있다.

  옛날 학덕이 뛰어나신 선사(禪師) 한 분이 터무니없는 오해로 누명을 덮어쓰신 일이 있었느니라. 한 때 조그마한 절에 주지로 계신 일이 있었는데 이때 일어난 사건이 황당하다.

  절간 앞 꽃가게를 하는 집 딸아이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였더란다. 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가 임신을 했으니 그 부모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고, 이를 어떻게 수습하여야 할 터인데 막막하였던 것이다.

  다짜고짜 부모는 딸을 족치지 않을 수 없었고, 딸아이는 상대방 남자의 이름을 밝히라는 성화에 그만 다음과 같이 말하고 말았더란다.

  “절 주지스님이 저의 팔을 끌어당겨서 이렇게 만들었어요.”

  물론 부모와 동네사람들은 그 주지스님을 매도하였다. 있는 말 없는 말 모두 끌어들여서 욕설과 분노와 비난과 심지어는 불교와 사찰과 땡땡 우는 범종까지 싸잡아서 욕을 하였다. 이 욕설은 그 동네 안에서만 끝나지 않고 이웃동네로 번져 나가서 온 고을이 떠들썩 하였더란다.

  그러나 선사께서는,

  “아! 그랬었군요.”

만 되풀이하였다. 이 말이 너무 밉상스러워 시주조차 끊어지고 말았단다.

  그후 딸아이가 아들을 낳았는데 절에서 맡아 키우라고 절 문 앞에다 놓고 가버려 할 수 없이 맡아서 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더라.

  아이까지 마다 않고 맡아 기른다는 소문이 돌자 평판은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 마침내 인근에 살던 불자들마저 외면하게 되니 도저히 조석으로 공양조차 들기가 어렵게 되었더란다.

  그래도 사람들은 설마 고덕하신 주지스님이 그럴 리가 있겠느냐 하면서,

  “스님! 정말 스님의 아들이십니까?”

하고 조롱삼아 물어 오기도 할량이면,

  “아 그랬었군요.”

만 되풀이하실 뿐 아무런 말씀도 않으시고 웃기만 하셨다.

  선사께서는 나들이를 하실 때에도 많은 이들로부터 조롱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마음에 두는 기색이 없으시고 늘 평안한 마음으로 온화한 말씀만 하시면서 면대를 하셨던 것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렀다.

  그 딸아이가 철이 들면서 갈수록 양심에 댕댕하고 우는 소리가 가슴을 치게 되자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마침내 저희 부모에게 깊은 사정을 솔직하게 말하게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또 한 번 죽을 죄를 졌습니다. 사실은…….”

  꽃가게 부모는 이 말에 새삼 놀라,

  “뭐라고? 얘야 너 무슨 말하는 거냐? 참말로?”

  “사실은 그때 주지스님이라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고 이웃동네 철이였어요. 그때 주지스님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더 크게 혼날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를 어찌합니까? 엉엉엉!”

  “사실이 그렇다해도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 없잖느냐. 아무도 모른다. 그냥 둬라!”

  “아닙니다. 그 아이까지 불쌍해지면 난 어찌 살라구요. 주지스님께 사과 드리러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선사님의 누명은 벗게 되었는데, 이때에도 선사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아! 그랬었군요!”만 말씀하였다더라.

  그때 주지스님이 발뺌을 못 하실 처지도 아니었지만 구태여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은 그 처녀아이를 더욱 거짓말시켜 난처하게 만들면 물불도 못 가리는 성난 부모가 그 딸아이와 갓난아기까지 어떻게 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래서 말없이 그들이 하자는 대로 그냥 맡겨버렸던 것이라고 훗날 말씀하시더구나!

  아이들 말로,

  “큰 코 다칠뻔 했어! 허! 허! 허!”

입걸레(껌)



  만일 화장실도 없는 도시에 산다고 가정하자. 전봇대는 사내들이 둘러설 것이고, 여인들은 눈알을 굴리면서 맨홀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을 것이다.

  똥개들은 골목마다 득시글 할 것이고 밤알만한 똥파리 떼가 신나게 윙윙 날다가 쌍쌍이 엉겨 붙어 청춘사업을 벌리면 무심코 바라보던 소녀의 귓볼은 홍당무가 될 것이다.

  아이들과 똥강아지는 진딧물과 개미처럼 상부상조할 것이고 장차 개와 인간은 의형제를 맺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쓰레기통이 없는 도시에 산다고 생각해 보자.

  골목마다 바람에 비상(飛翔)하는 신문조각이 유령들의 시체처럼 떠돌 것이다. 약 먹고 죽은 쥐와 쥐약 먹고 죽은 고양이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을 것이다. 먹다버린 밥찌꺼기, 김치찌꺼기, 고기찌꺼기도 흩어져 있고, 빈 깡통들이 여기저기 굴러 다녀 장난꾸러기들은 빈 깡통을 발끝으로 퉁퉁 차면서 학교를 오가게 될 것이다.

  빈 술병들이 너절하게 굴러다니고 그 가운데 운 나쁜 빈 병은 산산조각 으깨어져 길거리에 널릴 거고, 낡은 가구들과 전자제품들은 비 맞고 녹슬어 성황당 붉은 장승처럼 골목길을 을씨년스럽게 할 것이다.

  버리고 또 버리고 나면 끝내 버릴 곳이 없게 되어 마당이나 담벽마다 널려 놓을 거고, 마침내 사람들이 쓰레기에 의해 쫓겨날 것이다. 이러는 동안 인간 쓰레기라는 새로운 신종 쓰레기가 거리를 메꿀 것이다.

  만일 껌을 버릴 쓰레기통이 따로 없는 도시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꺽꺽거리고 쩍쩍거리면서 입안을 걸레질한 다음 아스팔트나 대리석 계단에 마구 버린다면, 그리고 이것이 쌓이고 쌓여 더덕더덕 엉겨 붙게 된다면? 이것을 벗겨내는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고 그만큼 실업자가 많이 줄어들고, 마음놓고 버려도 좋다는 특별법을 만들자는 지역이기주의 지방의회가 뱀대가리 내밀 듯 슬몃슬몃 기어 나올 것이다.

  도대체 종이에 붙으면 종이를 못쓰게 하고, 비닐에 붙으면 비닐을 버리게 하며, 유리병과 함께 두면 유리병조차 재생 불가능하게 한다. 여하간 껌 한두 개 때문에 폐품이 되고 만다. 자원절약을 위해 종이와 비닐을 따로따로 모아두자는 움직임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씹는 문화만 있고 버리는 문화가 없는 이 땅에서 팔고 있는 입걸레(껌) 싼 종이에는, ‘다 씹은 껌은 이 종이에 싸서 버리시오’라고 보일 듯 말 듯 작은 글씨로 쓰여 있지만 이것만은 ‘다 씹은 껌 이 종이에 싸 아무데나 마음놓고 버리시오’라고 고쳐 쓸 것이다.



매미 오빠


  매미는 노래하고 개미는 일을 하였다. 이솝의 이야기에도 그랬다. 매미는 시원한 나무그늘에 매달려 ‘맴…맴…매애…엠…맴…’ 하고 노래를 했지만 개미는 일만 하였다.

  개미는 비오듯 쏟아지는 구슬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일만 하였다. 뙤약볕이 내려 쬐어도 쉬지 않았다. 장마가 져서 황톳물이 넘쳐 온 천하가 물바다가 되어도,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집어삼킬 것처럼 으르렁대어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생사를 초월하여 일만 하였다.

  그러다가 가을도 가고 겨울이 다가와 나뭇잎이 떨어지고 눈이 쌓였다.

  마침내 추위와 허기를 이기지 못한 매미는 개미를 찾아갔다.

  “개미님! 춥고 배가 고파 찾아왔소. 도와주시오.”

  그러자 개미는,

  “미안하네만 자네에게 줄 양식이 없네.”

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따가운 불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면서 일한 개미의 유일한 긍지는 바로 이 때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 이야기는 진리를 암시하는 가장 훌륭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이솝도 죽은 지 오래고 세월이 많이 흐른 요즈음,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고 말았다.

  여름 내내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노래만 부르던 매미가 개미를 찾아갔더니, 애기개미들이 우루루 뛰어 나와서 매미를 에워싸고 얼싸안고 반겼다.

  “매미오빠! 싸인 좀 해줘요.”

  야단법석을 떨자 어른개미도 나와 반기면서,

  “마침 잘 오셨군요. 우리 애들 가정교사로 모시겠습니다.”

하였다.

  매미는 개미로부터 극진한 대접도 받고 음악 가정교사로 월급도 챙기면서 겨울을 보낸다.

  겨울이 가고 새봄이 돌아왔다.

  매미는 많은 것을 애기개미에게 가르쳐 주었다. 심지어는 먹거리를 이용하여 즙(술)을 만들어 먹는 방법도 가르쳤다. 이걸 마시고 거나하게 취한 꼬마개미들은 요란스레 몸을 흔들고 혀 꼬부라진 음성으로 고함치며 미칠 듯 노래를 불렀다.

  봄은 왔건만 개미들은 일터 나가는 것도 까맣게 잊고 춤추고 노래만 불렀다. 그 후 개미들은 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서로 미루기만 하였다.(나는 ‘3D업종’을 ‘어․더․위 업종’이라 한다.)

  이듬해 여름, 느티나무 위에서는 여전히 매미의 노랫가락이 흘러 나왔지만 땀흘려 일하는 개미들은 보이지 않았다. 눈을 씻고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땀흘려 일하는 개미는커녕, 이제는 노래하는 개미새끼도 없었다.

  개미를 수입해서 일을 시킨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공직자와 사랑


  젊은 스님과 동행하면서 심심파적 말 몇 마디를 나누었다.

  “스님은 수도에 열중하시니까 극락정토에 가시는 것은 확실하시겠습니다.”

  “극락이나 가려고 도를 닦는 중은 극락에 들지 못한답니다. 지옥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많은 신도들을 극락으로 보내고자 힘써야지요. 설혹 악마가 되더라도 좋아요. 한 사람의 신도라도 건져야 해요.”

  심산유곡에 틀어 박혀 도를 닦으며 산악처럼 높고 물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정진하면 백년장수는 맡아 논 당상이고, 해박한 학식으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으니 그 명예가 청천하늘을 덮어 태양보다 돋보일 것이다. 명성은 세세년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칭송되며 그 영광은 만세를 빛낼 것이며, 벌레 같은 중생들은 신처럼 받들 터이니 인간으로서 극치의 광명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광명을 마다하고 보잘 것 없는 중생들을 먼저 극락으로 인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마귀행 지옥행도 마다하지 않는 이 젊은 스님 앞에서 나의 짓궂은 말장난을 계면쩍게 만들면서 20여년 공직생활 동안, 그야말로 불공은 건성건성 올리고 잿밥에만 눈을 흘깃거려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의자도 푹신푹신 부드럽게 회전하고, 온갖 일을 다해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부하의 수가 비례적으로 늘어난다. 봉급은 물론 판공비 정보비의 액수가 늘고, 안락하고 빠르고 빼어난 모양의 고급승용차가 주어지고, 넓고 호화로운 사무실이 제공된다.

  또한 막강한 능력이 부여되면서 턱끝으로 무소불위 소원하는 대로 욕심을 채울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고결하심, 후덕하심, 유능하심을 칭송 받는다. 세상에 태어나 그야말로 최고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이런 권력의 매력을 누구나 한번쯤은 동경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민을 도와주고 어려움을 해결해주며 아픔을 대신해 준다는 자리가 공직자의 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차지한 자리건만 오히려 명석한 두뇌 덕분으로 차지한 척 뽐내고, 좋은 자리와 직책을 서로 탐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는 모습을 위대한 인간승리로 평가하려들고, 사람들은 이를 부러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하고 스님에게 물었더니,

  “아픔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사랑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아픔을 대신한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한다.


  국민의 아픔을 대신해서 아파야 할 자리가 공직자의 자리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아픔은 크고 깊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높은 자리로 올라 갈수록 국민의 아픈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마비현상이 심해지고, 나이도 들고 눈과 귀도 늙어 보지도 듣지도 못해 노동자와 그 가족이 호소하는 아우성을 지나칠 염려도 없지 않다. 그럴수록 겸손하며 눈을 비비고 귀기울이는 일에 더욱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열심히 살펴 마지막 남은 사랑이나마 그들의 아픔을 달래는 일에 오로지 바쳐야 인생의 사는 참다운 보람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갈구하여 마지않던 극락정토(極樂淨土)가 현실로 눈앞에 구현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잘 것 없는 놈!



  둘이사네야!

  워낙 무식하고 미련하니 알턱이 있겠냐마는 너무 가엾어서 한 마디 알려주마.

  ‘불법의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고, 생사(生死)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계(戒)를 뗏목으로 삼아야 한다.’

  이 말은 심지관경(心地觀經)에 있다. 이는 반야라는 분이 저술하신 경이며 대승(大乘)의 가르침이다.

  어느 날 나그네 한 사람이 강을 건너려고 머뭇거리다가 나무토막 하나를 발견하고 이걸 타고 건너갔다. 그러나 그 나무토막이 아까워 버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길 가던 농부가 충고해 주었더란다.

  “건너 왔으면 버리고 가야지 나무토막을 왜 끌어안고 있소? 도로 건너 갈거요?”

  둘이사네야, 그 나그네도 꼭 너처럼 우둔하였던 모양이었나보다. 허허허!

  그렇다! 이 세상 모든 계율과 규칙이 사바세계에서는 보물처럼 보이지만 이미 깨달음을 얻은 이가 보면 한낱 티끌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하물며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고 금은보화가 무슨 필요가 있을꼬? 하잘 것 없는 미모를 뽐내며 거울을 들여다보지만 어찌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여긴단 말이냐? 잠시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더냐? 오히려 그것에 연연하다 보면 참으로 해야 할 일을 못하고 만다. 네가 가야 할 길이 멀고도 멀건만 거기서 머뭇거림은 참으로 어리석다. 속 빠진 만두가 따로 있다더냐? 바로 너같이 어리석게 다른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속을 채울 겨를이 없는 것이다. 어서 네 속을 채워서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하여라!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길을 가는데 강가에 다달아 그만 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리따운 처녀가 물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데 강이 깊어 아무도 구해주려고 뛰어드는 이가 없더란다, 글쎄?

  이 스님은 웃통을 벗어 던지고 물 속에 뛰어들어 그 처녀를 구해내었다. 처녀가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깨어나지 않자 입을 처녀의 입에다 겹쳐 인공호흡을 하였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빈정거리면서 말했다.

  “부처님을 믿는 출가자라면서 저런 흉측한 것을 하는 걸 보십시오. 아무리 사람이 죽을 지경이 되었다 하더라도 저런 못된 짓거리를 하다니, 불교라는 것은 저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랍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 이교도(異敎徒)의 말이 그럴 듯 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처녀가 숨을 쉬기 시작하는 것을 본 스님은 벗어 던졌던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하는 말씀이 정말 걸작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부처님을 욕하는 자라 하더라도 우선 인간의 목숨만은 살려 놓고 봐야 합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섰던 사람들이 또 한마디씩 하는데,

  “사람이 죽고 살고 하는 판에 체면은 무엇에 쓰는 것이냐?”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 사람을 구해내는 그 스님이야말로 우리의 마음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지 않느냐?”

  “저 스님의 뒤를 따라 그가 믿는 부처님을 뵈러 가야겠다.”

  이러한 이야기는 부처의 가르침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가르침에 한결같이 없는 곳이 없느니라. 다만 잠시 불교를 빌려서 말했을 뿐이지 불교에만 이런 가르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서로 닮아가게 마련이고 모방하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지만 서로 비방하고 헐뜯는 것은 모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사람들 가운데는 특정한 종교의 교주(敎主)에 심취해서 그 교주의 본래의 올바른 가르침조차 잊게 되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 그 교주를 안타깝게 하고 그 교주가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고 싶도록 안절부절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 생각해 보더라도 이 아까운 일생을 허비하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한 가지 예를 덧붙이고 뱀다리 한 개를 더 그린 다음 살피고자 한다.

  아무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무애(自由無碍)가 있고 이를 일컫어 삼매(三昧)라고 한다. 삼매는 인도 말을 그대로 음역했다고 하지만 우리말로도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독특하다. 아마 둔하디 둔한 너 둘이사네도 이것만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마음이 확실하게 정해지면 다른 일은 모두 잊어버리게 되어 그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것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나 무예를 하는 사람이나 모두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를 삼매라고 부른단다.

  즉 조각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그 조각품이 일체감을 갖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말이 색깔이나 감각에 대해서는 매우 발달되었지만 사람의 마음에 대한 표현이나 정신적인 문제를 표현하려 할 때는 단어수가 매우 적어 결국은 한문이나 인도 말을 인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안타깝구나!

  요즘 외국을 다녀오거나 약간 꼬부랑말을 흉내내는 사람들을 보면 원어(原語)를 쓴답시고 말을 더욱 완곡(婉曲)하고 어렵게 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나 어느 나라 말이라도 깨달음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표현해 주는 말이 없다. 오직 깨닫지 않으면 그 깨달음을 알지 못한다. 많이 깨달은 이들이 벙어리처럼 되는 까닭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말로서 할 수 없는 경지에서는 말이 필요치 않는 것이다.

  나도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둘이사네야, 이 말을 잘 새겨듣거라!

  ‘정말 자신이 마음에 드는 일에 몰두할 때에 시간과 공간을 잊게 되며, 문득 거기에서 깨어났을 때 자기 자신의 존재를 존엄하게 느끼게 되는 체험이 있다.’

  이런 말을 아무리 많이 하여도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마치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 그 첫머리에 쓰여진 제목을 읽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어사전!’ 하고 백 번을 읽더라도,

  ‘국어사전!’ 하고 천 번을 외우더라도,

  그 내용을 터득하는 것은 책장을 한 번 열어 보는 일이 없고서는 그 속뜻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살인자의 어머니


  통영땅 어디에 사람이 하나 죽어 있었다.

  그리고 두 젊은이가 시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투고 있었다.

  “내가 죽였다.”

  “아니야, 내가 죽였어.”

   두 젊은이는 서로 자기가 그 사람을 죽였다고 다투다가 함께 포청에 끌려왔다.

  포도대장이 두 사람을 불러 물어 보았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제가 죽였습니다. 처벌은 제가 받겠습니다.”

  포도대장은 조롱당하는 기분이라 은근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냐? 그리고 너희 부모님들은 무얼 하시느냐?”

  “저희는 형제간입니다. 아버님은 일찍 타계하시고 어머님 홀로 계십니다.”

  포도대장은 그 어머니를 불러 와서 범인수색에 참고하기 위하여 물어 보았다.

  “당신 아들 중에 한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는데 어머님은 알 수 있겠지요?”

  그녀는 눈물 젖은 얼굴로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윽고 손을 들어 아우를 가리킨다.

  포도대장은 이 어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아우를 살인자로 단정하고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임금에게 자초지종을 적어 보고하고 처분을 기다렸다.

  임금은 포도대장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아들을 살인자로 몰아붙인 그 어미가 누구인지 너무 매정하다. 그런 어미도 용서할 수 없으니 더 철저히 조사해서 혹시 연루자가 아닌지 알아 보라.’

  포도대장은 다시 그 어머니를 불러 준엄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형의 살인을 감추려고 거짓으로 아우를 범인이라고 몰아붙인 저 여자도 이 사건의 연루자일 것이다. 엄중히 조사해야겠다. 형은 당신이 낳은 자식이 틀림없는가?”

  “형은 전처의 자식인데 남편이 돌아가실 때 잘 키워 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만 제가 둘 다 잘못 키운 탓이니 저를 살인자로 처벌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그러면 아우는 어디서 주어다 기른 것인가?”

  그녀는 옷섶을 열어 젖히고 젖을 꺼내 보이며 통곡했다.

  “아우는 제가 낳은 자식입니다. 이 젖으로 먹여 키웠습니다.”

  포도대장은 슬그머니 넓적다리를 꼬집어보았다.

  “앗 따거!”

  포도대장은 즉시 임금에게 이 사실을 적어 파발을 보내었다.

  임금도 이쯤 되면 이 어머니의 아들이 결코 사람을 죽였을 리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름지기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는 지혜롭고 강하다는 옛말이 정말 최진실(最眞實)이다.


문화지수(CQ)


  머리가 좋다 나쁘다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흔히 지능지수(IQ)를 든다.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미리 예측된 정보를 활용하여 사람의 됨됨이를 짐작하는 방법으로 이 지능지수라는 것이 상당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한다.

  IQ와 비슷한 것으로 TQ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Technical Quotient에서 따온 말로 기능을 가늠하는 지수라 할 수 있으며 쉽게 ‘솜씨지수’라 부를 수도 있다.

  이제 와서 IQ나 TQ는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필수적 기초자료처럼 이해되고 활용되어 학교와 기업의 인사관리에 없어서는 안될 항목으로 인정하여 사람을 가늠한다.

  이 IQ에 대한 설명을 좀더 부연하면 Intelligence Quotient(지능지수)의 약자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주로 지성, 분석, 판단, 사고 등 지식의 양적 분량과 이를 활용하는 능력의 범위를 말하고 TQ는 손발과 몸의 익숙하고 날렵한 움직임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사회 도처에서 인간의 수준을 단순히 지적 수준으로만 측량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폐단은 마침내 경쟁의 와중에 몰린 동물들의 우리처럼 변모한 사회로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너무 외골수로만 달려온 탓에 이처럼 소외된 부분에 대한 보완이 따르지 않으면 기껏 이 정도로나마 이루어 놓았던 부분마저도 헛수고로 돌아가는 아쉬움을 남긴다는 것도 그간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실과 체험을 통해서 다소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흔히 우리의 세대를 뒷받침하여 줄 세대마저 X세대라 이름하면서 이들을 향한 기대감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 역시 지난날 알게 모르게 체험했던 것에 의하여 약간의 자각을 하고 있고 자타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봄직한 대목인 것이다.

  요즘 EQ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반응이 사람마다 보이지 않았던 구석을 메워야겠다는 생각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EQ는 곧 ‘교양지수-Educational Quotient’라는 의미로서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세상에 덕성을 의미하는 관용, 이해력, 자제심 등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교육계에서도 지능양성을 지양하고 덕성을 배양하기로 방향전환을 했다 하니 비록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매우 환영하는 바다.

  그러나 누구나 늘 그 자리에서 흉내만 내며 다람쥐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창조하며 새로운 것을 탐구하며 발전하는 재미로 살아가는 보람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데 마냥 누구에게 평가나 받고 제자리걸음으로 뺑뺑이만 돌며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고달프고도 괴로운 역경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지능이 높거나 아니면 솜씨가 우수해서 우수한 제품이 생산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로는 무언가 약간 부족하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분명 손에 잡힐 듯 말 듯 하는 느낌을 주는 것, 바로 인간정서와 창조성, 전통을 맺어주는 역사성과 나름대로의 독특성 등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이 빈 구석을 메워 주어야만 완벽한 하나의 제품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 축적된 정신력을 곧 문화지수(Cultural Quotient)라 이름하고자 한다.

  언제나 그렇듯 경제가 어려워지기만 하면 가장 먼저 타박을 맞는 것은 노동자의 임금이다. 무조건 높은 임금에 대한 공격적인 핀잔이나 타령보다는 모든 생산제품이나 서비스에 이 우리의 고유하고 높은 양질의 CQ를 가미한다면 보다 놀라운 우수상품을 만들 수 있고 세계 어디서든지 더욱 높게 평가받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국제경쟁에 결코 뒤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반만년의 면면히 이어 온 우리 문화도 곧 민족 전체를 평가하는 CQ인 것이다.

  노동집약의 시대, 산업사회의 시대를 탈피하고 고도화로 달려가는 정보화 시대에 이르러 매사 뒷걸음만치는 생각일랑 버리고 항상 앞으로 나아가며 창조와 발전이 쉼없이 거듭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영광된 조국을 우리 함께 갖기로 하자.



간절한 고향생각

  

  남성들은 한결같이 여성을 좋아한다. 그러나 여성을 멸시하는 것도 좋아하는 만큼 한결같다.

  바빌로니아 율법서에 ‘남자가 여자의 뒤를 따르느니 차라리 사자의 뒤를 따르겠다’고 했으며, 공자는 ‘소인과 여자는 믿지 못한다’라고 가까이 하기를 늘 조심하였다. 석가모니는 ‘여자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단정을 내렸고, 기독교에서도 ‘여자는 목사 또는 신부를 삼을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들어 셰익스피어는 한술 더 떠서,

  ‘남자의 마음은 대리석과 같고 여자의 마음은 기름덩이다.’(Men have marble, women waxen, minds)

  ‘한 곳에 두 여자를 놓아두면 날씨가 차가워진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탓인지 반발하는 힘도 만만치 않다. P. 맥킨리여사는 그의 저서『마음의 영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자는 권리는 없고 책임만 있다. 남녀는 아주 다른 종족이다.’

  여하간 많은 사람들, 성인들조차도 여자를 위하여 좋은 말하는 것에 매우 인색하였다. 모두 여자로 태어난 것을 죄악덩어리가 태어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쇠둘래를 찾아서』는 소설가 김주영씨가 쓴 단편이다.

  북쪽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이 무작정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의정부를 지나고 포천땅을 지나서 철원(쇠둘래는 철원의 옛 고을 이름이라고 한다)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일행은 최전방 초소 앞에 이르러서는 한 발짝도 더는 북쪽으로 갈 수 없었다.

  철원으로 되돌아와서 모두 울적한 마음을 달래볼 심사로 술집을 찾았다. 아가씨들도 서넛 있고 젓가락 자국이 곰보얼굴처럼 너덜너덜하게 파인 술상 위에 소주 몇 병과 곱창전골도 있어서 고향생각을 잠재우기에는 제법 안성맞춤이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서 모두 고향의 봄을 합창하였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지 고향노래를 아는 대로 막 불렀다. 합창도 하다가 독창도 하였다. 옆에서 접대하는 아가씨들도 간드러진 목소리로 고향병에 걸린 듯한 이 남자들에게 기대어 노래했다.

  술에 엄청나게 취해 노래인지 악을 쓰는지 여하간 술자리가 흥청거리고 있는 사이, 손버릇이 나쁜 한 사람이 여자의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저씨 고향생각이 간절하신가 봐.”

  아가씨는 그 친구의 손을 밀어내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이상으로 끝난다.

  만일 손버릇이 나쁜 주정꾼이 가슴을 만지면, “아저씨는 엄마 없는 고아시군요” 라든지 “우유만 잡숫고 자라셨나 봐”라고 했을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30년이 지난 1960년대 초반의 옛이야기를 하겠다.

  필자가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처음으로 얻은 직장이 대전방직이다. 맡은 일은 식당, 이발소, 미용실, 기숙사, 의무실, 체육시설 등을 관리하는 노무과의 한 부서였다.

  맡은 일을 더 잘해 보려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 중에는 도서실을 설치하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종업원이 3500명이 넘고, 그 중에 여성이 3000여명이나 되었다. 모두 18세에서 26세 미만의 젊은이들로서 모두가 고향을 멀리 떠나온 처지여서 하루 3교대 근무가 끝나면 갈 곳이 없었다. 기숙사에 머물기보다는 극장 구경을 한다든지 주변에 있는 군부대의 외출 나온 군인들과 데이트하는 것이 여가를 보내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기숙사 방구석에는 너덜너덜한 외설잡지와 만화책이 널려 있었고, 소일거리가 없으면 이런 책을 읽으면서 무료함을 풀었다.

  나는 책을 구입하기 위하여 예산을 짜서 결재를 올렸다.

  그러자 사장님께서는,

  “자네는 회사를 위해서 일하지 않고 여자 종업원들 뒷바라지나 하고 있는가? 책을 사준다고 일을 더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아는 것이 많으면 귀찮아져.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게!”

라며 결재를 하지 않았다.

  “사장님! 이 사람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고향을 떠나 왔기 때문에 사장님은 이들의 부모가 되어주셔야 합니다. 한창 사춘기에 해당하는 나이라서 어른들이 잘 지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일만 하는 우마(牛馬)가 아닙니다. 이들은 장차 모두 어머니가 될 근로자입니다. 이 삭막한 공장에서 일만 하게 되면 이제 마악 피어나는 꽃다운 마음씨들이 언제 변해 버릴지 모를 일입니다. 이들이 악마가 되면 낳는 자식들도 악마가 될 것입니다. 이 악마의 자식들은 지금부터 20여년 뒤에 사장님의 손자들을 해칠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장님! 20년후의 이 나라 이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고 사장님께서 책 몇 권만 선사하십시오!”

  나는 강하게 밀어 부쳤다. 결국 결재를 받아서 노동조합 사무실에 비치하여 노조원에게 대출해 주도록 했다.

  요즈음 청소년 문제가 크게 부상하고 있다. 청소년 문제는 원천적으로 이미 20여년 전에 문제의 싹이 튼 것으로 이제 이 문제의 후유증이 눈앞에 다가왔을 뿐이다.

  불량청소년을 둔 그 부모의 책임으로 마무리 지워질 문제가 아니라 각박하던 30년전, 경제발전이라는 장갑차에 깔리고 바쳐서 만신창이가 된 젊은 직업여성들의 정서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남자는 군대에 가서 욕설을 배운다. 직업여성은 같은 직장의 남성들로부터 우악스런 욕설을 귀담아 두었다가 훗날 속상하는 일이 있으면 자식에게 마구 써먹는다. 마음이 메마른 어미의 젖과 찌그러진 어미의 표정 속에서 어린 정서가 결정 지워진다.

  ‘세살적 버릇 여든까지’라는 속담과 같이 이미 어머니 품속에서 불량청소년이 될 확률을 타고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쓰레기에서도 장미가 핀다지만 그 확률이 너무나 빈약할 때 쓰이는 속담일 뿐이다.


  단일민족국가(單一民族國家)!

  참으로 자랑스러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이 나라 남자들이 잘해서가 아니다. 한마디로 이 나라 어머니들의 영광스러운 고결함이 가득한 공적이다. 그 숱한 전란을 겪었으되 자식들에게는 조국을 버리지 않도록 가르쳤다.

  역사가들은 단군이래 무려 900여 차례의 전란을 겪었다고 했다. 사내들이 오죽 못났으면 별별 도적들이 이 나라 이 강토를 쳐들어오려고 했겠는가.

  전란이 일어나면 사내들은 저만 살려고 산 속으로 도망갔다. 그리고 모든 잘못을 여자들에게 뒤집어 씌워 벌을 주었다는 역사도 있다.

  그후에도 이런 사내들과 운명적으로 함께 살아가야 했던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는 훌륭히 교육을 잘 시켜서 조국의 명예를 지키도록 하였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국가!

  그래도 남자들은 이 나라 여성들에게 인색하기 짝이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을 만들었는데도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기는커녕 교묘하게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그것도 이 나라 경제를 이끌어가야 할 지도급의 기업들이 여성에게는 원서접수조차 받지 않겠다는 범법을 자행하고도 변호사를 둘러대어 가면서 구차하게 변명하려 든다. 이렇게 되면 작은 중소기업들도 덩달아 따라 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지도급 기업들이라면 가급적 좋은 것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나쁜 궁리만 짜낸다면 그 기업정신은 영세기업보다도 못한 ×같은 기업이다.(×는 더럽다는 뜻의 욕설)

  생리휴가만 해도 그렇다. 나이가 들거나,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 앞에 이와 같은 표현을 하면 얼굴이 분홍색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특유한 부끄러움을 주는 표현인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법정휴가이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 오직 여성들만 이것을 청구하는데 그 법정양식에도 이러한 표현을 쓰고 있어서 당사자들은 청구할 때에 잠시 주저한다고 한다. 또 나이가 들면 있느니 없느니 하는 시비까지 만들어 ‘더러워서’ 참는다고도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방법이 없지 않다. 이름을 아름답게 바꾸는 것이다.

  ‘모성보호휴가’ 또는 ‘무궁화휴가’라고 하면 시비는 다소 줄어들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사용할 수 있고, 부끄럼을 잘 타는 직업소녀도 떳떳하게 사용할 수 있다.

  법은 물론 모든 서류와 양식에서 부끄럽다는 이 표현을 없애고 이를 이유로 여성을 조롱하는 듯한 행동도 줄여나가야 한다.

  한국의 여성에게 한 가지 더 얹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주어야 할 것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장사꾼들의 경우에는 조상과 부모를 모르는 역사의식이 없는 망발을 하고 있다. 이젠 자제해 줄 때도 되었다고 생각된다.



우물속 산신령


  지금은 북쪽 땅인 함경도 산수갑산에 한 나무꾼이 무쇠도끼 한 자루와 지게에 주먹밥 한 덩이를 매어 달고 산으로 올라갔다.

  나무를 베다가 그만 옛날처럼 연못에 도끼를 빠뜨리고 말았다. 연못가에서는 나무를 베지 않으려 했는데 그만 깜박 잊고 말았던 것이다.

  옛부터 연못가에서 나무를 하면 도끼자루가 부러지면서 도끼를 연못에 빠트리게 되고 마침내 산신령이 나타나 금도끼와 은도끼를 억지로 떠맡기며 무쇠도끼는 뺏어간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에 특히 주의를 했었건만 기어코 일은 저질러지고 말았다.

  신세한탄을 하며 넉장거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 도끼를 돌려주세요! 내 도끼 안 주면 연못에 합성세재 뿌릴란다아아…….”

  아니나 다를까 연못 속에서 백발장신 노인 한 분이 물위로 솟아올라 오는데 오른손에는 금도끼를 들고 왼손에 은도끼를 들었다. 먼저 금도끼를 들어 보이며,

  “이 도끼가 네 도끼냐?”

  물었다.

  “아니요.”

  산신령은 다시 은도끼를 들어 보이며,

  “이 도끼가 네 도끼냐?”

  “아닙니다.”

  “오! 너는 과연 정직한 나무꾼이구나! 이 금도끼와 은도끼를 모두 가져라.”

  “싫습니다. 내 무쇠도끼나 돌려주십시오.”

  “너무 사양하덜 마! 요즈음 나무꾼들은 너무 정직한 척 한단 말야! 매우 착한 사람이군 그래.”

  “신령님, 제발 철 좀 드십시오. 금도끼 은도끼는 견고하질 못해 나무를 찍어 넘길 수 없어요. 단단한 무쇠만 못합니다. 어서 무쇠도끼나 주세요. 날이 저물면 나무도 못하고 굶어 죽는답니다.”

  “이 맹꽁아! 금도끼 은도끼를 팔아서 나무를 사던지 양식을 사 먹으려무나?”

  “신령님도 참! 어찌 그리 멍청하십니까?”

  “나보고 멍청하다니 무엄하다 이놈. 나무꾼 주제에!”

  “그걸 가지고 마을에 내려가면 살 사람도 없지만 어디서 훔쳐 온 물건이라며 윽박지르고 물건도 빼앗길 뿐만 아니라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기 안성마침입니다요.”

  “아니 내가 이걸 훔쳐 왔다는 말이냐? 이건 몇 천년 전부터 이 우물속 창고에 보관해 오던 거야. 이제는 이것도 마지막 남은 거란다. 너무 사양해도 실례란다. 어서 받아라!”

  “신령님이 훔쳐 오셨다가 아니고요 요즘은 내것은 네것이고 네것은 내것이라 임자 있는 물건은 없는 세상이랍니다.”

  “웃기네?”

  “그저 무쇠도끼로 나무나 해서 양권이나 타다 목숨이나 부지하며 처자식이나 먹여 살리며 숨죽여 사는 게 가장 현명하게 사는 것입니다. 성인도 시속을 따르라 했다는데 장난 그만 치시고 무쇠도끼나 어서 돌려주세요.”

  “싫다면?”

  “무쇠도끼가 겉만 번지르한 금도끼 은도끼보다 훨씬 더 좋은 줄 모르시나봐.”

  화가 머리끝까지 돋아난 산신령은 다시 연못 속으로 들어가더니 지금까지 다시 나왔다는 기별은 없다.

  개구리 한 마리만 거품을 물고 헤엄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나귀가 호랑이를 짝사랑 (검려지 黔驢技 유종원)


  강원도 어느 곳에 당나귀 한 마리가 태어나서부터 호랑이를 무척 좋아하였답니다.

  날이 갈수록 호랑이가 보고 싶어서 엄마 당나귀를 졸랐습니다.

  “엄마! 나 호랑이를 친구로 갖고 싶어요. 소개해줘 응! 엄마!”

  조석으로 엄마 당나귀를 졸랐지만 그때마다 엄마 당나귀는 아들 당나귀를 타일렀지요.

  “얘야, 호랑이는 무섭단다. 아무거나 막 잡아먹는단다.”

  “아냐! 호랑이는 덩치도 우람하고 몸도 날래서 모든 짐승들을 귀여워 해준다던데 엄만 알지도 못하고선 그런 말을 해! 호랑이 친구를 소개해 줘!”

  하지만 엄마 당나귀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아들의 철없는 말을 들은 척도 않았습니다.

  마침내 세월이 흘러 엄마 당나귀는 어디론지 팔려 가고 아기 당나귀는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당나귀는 더욱 호랑이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때 마침 치악산에도 호랑이가 한 마리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 당나귀는 점심을 싸들고 호랑이를 찾아 떠났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면서 올라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튀어 나왔습니다.

  “말 좀 묻자. 여기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데 어디 있냐?”

  “거긴 뭣하러 찾아가는데?”

  “호랑이하고 친구 사귀러 가는데 초행이라 길을 몰라. 알면 길 좀 가르켜주라.”

  “저기 저 산꼭대기에 살고 있는데 무서워서 아무도 안 가는데?”

  “그럼 나하고 같이 가자꾸나! 무섭긴 뭐가 무서워. 모두 겁쟁이들이군!”

  “혼자 가라. 난 바빠서 같이 갈 수 없어 미안하구나.”

  토끼는 슬그머니 사양했습니다.

  당나귀는 토끼가 알려준 대로 천신만고 끝에 산꼭대기에 이르러 호랑이가 살고 있는 굴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호랑이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야 호랑아! 난 네가 보고 싶어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넌 낮잠이나 자고 있는 게 말이나 되냐? 어서 일어나서 나하고 놀자!”

  그래도 깊은 잠에 잠꼬대까지 하는 호랑이가 깨어나지 않자 당나귀는 뒷발로 호랑이 엉덩이를 걷어찼습니다.

  아닌 밤중에 벼락치는 줄 알고 깨어난 호랑이는,

  “아니? 이놈이! 정말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르는 모양이구나?”

라며 시장한 김이라 단숨에 당나귀를 통째로 삼켜 버렸습니다.

  오매불망! 자나깨나 보고 싶어하던 호랑이는 결코 인자한 놈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 이야기는 당나라 후기 개혁주의자의 한 사람인 유종원(柳宗元)이 당시 벼슬하는 사람에게 경계하여야 할 세 가지 가르침 중 하나인 ‘검려기(黔驢技)’입니다.


  아이가 첫돌이 되는 날, 돌상 위에 있는 붓과 종이를 먼저 잡으면 공부를 잘할 거라고 좋아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썩 잘하면 “허 그놈 장관 할 놈이다!” 또는 “대통령 감이다”라고 칭찬합니다.

  국가고시에 합격하거나 아니면 혁명을 하거나 정치를 하여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마침내 벼슬살이로서는 거의 꼭대기에 다다르게 되면 버틸 때까지 버티어 보다가 못 이기는 척 후배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 나와야 합니다.

  이 정도라면 별 탈이 없겠지만 요즈음에는 그냥 물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꼴이 되어 뼈다귀조차 못 갖추는 추한 모습으로 춘풍추우 허기진 배를 안고 네모난 방안에서 시린 무릎에 얼굴을 묻고 회한의 눈물을 쏟습니다.

  요즘 벼슬살이랍시고 평생을 다하여 쌓은 공이 하루아침에 호랑이 밥이 되어 버린 꼴이 된 사람이 어디 한둘이 아니다 보니 생각나는군요!

  이런 모양으로 호랑이 밥이 되는 것은 자업자득이라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지만 이와는 달리 정의감에 불타 맨주먹으로 사회를 바로 잡고 실종된 정치를 찾는답시고 혈혈단신 동분서주하는 사이에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 그 수많은 친구들의 모습이 생각나는군요. 흔한 말로 자의반 타의반 물러나서 어떻게 변신하고 있는지도 궁금하지만 혹시나 호랑이 잡으러 간 강원도 포수처럼 호랑이 밥이나 되지 않았는지.

  계절이 바뀌고 찬바람이 옷섶을 스며들어 올 무렵이면 그들의 이름이 떠오르곤 합니다.

  나 역시 노동문제가 좋아서 이 길을 들어선지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바람처럼 지나갔습니다. 수많은 친구를 사귀고 천여명의 제자를 키운답시고 분필가루를 마시고, 만여명의 사람들과 노동문제를 둘러싸고 토론을 나누었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다람쥐 쳇바퀴처럼 그 자리를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마치 그 자리를 맴도는 나의 자화상을 보는 듯합니다.

  많은 친구들과 제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우던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난 돌발사태를 보고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데 이미 저의 머리에는 흰머리만 엊그제 다녀온 설악산처럼  되어 가네요.

  호랑이를 잡기 위해 굴로 들어선지도 어언 2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호랑이 꼬리를 만지작거리며 연명은 하지만 아직 그의 밥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까요?

  요즘 호랑이 밥이 되려고 단꿈에 젖어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그 흔한 대통령 꿈! 장관꿈! 그것이 호랑이 아가리와 다를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 짓을 하고 내려오기만 하면 당장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갈 밥이 될 터임은 자명할 터인데, 안 그래요?




경국제민(經國濟民)


  이념의 경쟁에 휩쓸려 온 지 어언 70여년! 자본주의는 착각과 환상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경제에 대한 착각과 치부라는 환상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경제와 치부를 같은 말로 혼동하여도 무방하였다. 이 두 가지 다른 말을 같은 의미로 몰아붙여 해석해야 했던 불가항력적인 여건은 마르크스 유물사관과의 이념 경쟁에 너무 몰입했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경쟁은 실로 이념의 사활을 건 대투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사활을 건 대장정의 반환점이 이미 확실해졌으므로 이제는 제 위치로 돌아와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다듬어 가야 할 때가 되었다.

  경제는 경국제민(經國濟民) 또는 경국제세(經國濟世)라는 우리말을 줄여 쓰기 잘하는 왜놈들에 의하여 왜곡되어 사용하던 것을 우리가비판 없이 모방한 것이어서 본래의 의미까지 망각했던 것이다.

  경국제민 또는 경국제세라는 말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과 세상을 구제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옛 선현의 통치이념이며 철학이었다.

  이조 후기 실용주의 학자에 의해 경세(經世)라고 줄여 책을 쓴 이도 있었으되 경제라는 말을 경국제세에서 따오고 돈벌이라는 의미로 바꾸어 사용한 것은 왜놈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면서 우리는 경제라는 말의 본뜻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또 그대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경제가 침체되어 가는 형편을 뒤돌아보면 처음부터 그 뜻을 혼동하여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대종(經濟大宗)은 수출이라 하는데 왜 수출이 중요하고 수출을 많이 하여야만 우리 국민이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과정이 생략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 산업현장에서 사람 구하기가 어렵게 되고 일하려는 의욕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몇몇 사람에게 돈을 벌어주기 위하여 공장에 나가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차 있는 이상 우리의 수출은 이제 종말이 왔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의 경제정책은 항상 그 자리를 맴도는 지렁이가 되고 언젠가는 막강한 경쟁자들에게 짓밟히는 비극을 맛볼 지도 모른다.

  경제의 원동력은 자원이고 우리나라 자원의 대종은 노동인데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경제구조하에서는 새로운 창출, 놀라운 도략은 힘들 것이다.

  나무에 오르게 하려면 나무 위에 과일이 달려 있어야 한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풍토와 문화환경을 의식한 획기적인 정책이 절실히 기대되는 때다.


한술이


  그는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아다니다가 하남댁에서 머슴살이로 어언 스무해 세월을 보냈다.

  그때까지 한술이는 40장년에 장가도 들지 못한 늙수그레 한물간 노총각이 되었다. 가을에 선 사경을 받으면 화투질을 해서 다음해 봄이면 홀딱 잃고 또 머슴살이를 시작하는 그는 인근에서 소문난 ‘봉’으로 점찍혀 있었다.

  하남어른이 장가들라고 누차 권해도 사경만 올려달라고 할뿐 들은체도 않는다. 사경 대신 전답 문서를 주면 곧 노름판으로 가 잡히고 노름 밑천으로 날린다.

  오늘도 하남어른이 거처하는 사랑채에서는 아침부터 큰소리가 오고간다.

  “사경 더 안 올려 주면 나갈겁니더.”

  사경은 품삯이란 뜻이다.

  양볼을 씰룩이면서 한술이는 고함을 친다.

  “하기 싫으면 그만 두려므나. 글쎄 인근에서 너만큼 사경 많이 받는 일꾼이 없잖느냐? 더 이상 올려 줄 수 없으니 그리 알아라.”

  하남어른은 영창문을 쾅 닫아 버린다.

  한술이는 입맛만 쩍쩍 다시다가 소를 몰고 들녘으로 나가며,

  “이놈의 소새끼 이랴! 쪄쪄!.”

  애꿎은 소 등에 불똥이 튄다.

  그해 겨울에도 동네에는 노름판이 벌어졌고 으레히 한술이는 ‘봉’이 되고 말았다.

  한술이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이 들어가면 걸직한 유행가 곡조가 나온다. 한술이 노래는 ‘타향살이 몇해런가 손꼽아 헤어 보니……’로 시작한다.

  하루는 동네가 떠들석할만한 일이 벌어졌다. 한술이가 손가락을 잘랐다는 것이다. 그날 한술이가 받은 사경을 몽땅 털고 나오다 낫으로 왼손 엄지를 잘랐단다.

  “다시 또 노름을 하면 개자식이다.”

  그는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스톱이란 신종 놀이가 나오고부터 한술이의 마음은 또 변했다.

  이듬해에 또 한술이는 그 버릇에 빠져들어 또 홀랑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고 하남댁 내외가 아들따라 서울로 가면서 한술에게,

  “소작이라도 부치고 장가 들어 그 집에서 살아라.”고 했으나

  “장가 들면 식구가 늘어나고 멕여살릴 수 없다”고 하면서 사경을 많이 주는 집만을 찾아 머슴살이로 떠돌았다.

  하남댁처럼 많은 사경을 주는 곳이 없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 집 저 집, 이 동네 저 동네로 전전했다. 짤라낸 손가락 상처가 덧나 끝내 왼손목도 잘라냈다. 사경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가 들어 머슴으로 써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홀연 종적을 감추었다. 해마다 노름때만 되면 그의 이름을 심심찮게 떠올려졌다.

  그리고 몇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당고개 주막집 뜰에서 죽었는데 연고자가 없다는 것이다. 동사무소에서는 행려병자로 처리했다. 누구는 ‘한술이를 닮았더라’고 했다.



시일야방성대소(時日也放聲大笑)


  “하하핫.”

  93년 10월 28일 밤부터, 저절로 터져 나오는 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허 허 헛.”

  일본왕 히로히또가 1988년 9월 19일 쓰러졌다. 이 자는 죽는 날까지 우리 민족을 괴롭혀 온 흉물이다. 88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막되던 바로 그날 저녁, 지켜보던 TV 앞에서 개살스럽던 심술보가 터져 개거품을 물고 쓰러지더니 그 이듬해 아귀(餓鬼)같은 일생을 마쳤다. 소 돼지도 마다하는 이 심술보를 왜놈들이라면 누구나 혹부리처럼 흉물스럽게 다 달고 있음을 본다.

  언제든지 기회만 있으면 우리를 헤치려고 틈을 노리고, 최근에도 핵폐기물을 슬그머니 동해 바다에 버려오면서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버렸다며 적반하장격으로 오히려 더 호들갑을 떨고 시치미를 떼던 일이라든지, 우리 민족을 흉보는 책을 한국 사람이 쓴 것처럼 가명으로 위장출간, ‘식민통치는 오히려 한국의 발전을 도왔다’는 개소리를 짖고 있는 사실을 보더라도 지척지간에 있는 우리로서는 희희낙낙 즐기기나 할 처지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일본열도 전체를 폭파시켜도 시원치 않을 우리의 심정이긴 하지만 다만 축구 이긴 일만 떠오르면 웃음이 나온다.

  “훗훗훗.”

  월드컵 본선 진출에 앞서 일본에게 어처구니 없이 지고난 다음, 가뜩이나 상해 있던 참에 북한과는 3대 0이라는 후한 스코어로 이기고 있지만 이마저 달갑잖고, 오히려 앞서 일본에 졌던 것만 더 역겹게 느껴지던 찰라, 기상천외한 일이 너무도 갑작스레 일어났다는 사실! 일본에 뒤지고 있던 이라크가 마침내 게임 종료 10초 앞서 2대 2로 비김으로써 우리나라는 기적처럼 본선에 진출하게 된 반면, 일본은 애처롭게 일장춘몽 헛꿈으로 무너지고 일본열도에서는 수소폭탄 수만방이 한꺼번에 작열한 듯 비통한 눈물의 수렁으로 변모해 버렸다., 한편 졸립고 지겹던 괴로운 순간을 보내던 이 땅에는 돌연히 우렁찬 탄성과 함께 활짝 즐거운 웃음의 바다로 물결쳤던 것이다.

  야구에만 미쳐 축구는 별로 관심을 나타내지 않던 왜놈들이 온통 이 축구시합을 두고 갑자기 수선을 떠는 까닭이 수상쩍게 여겨져 꺼림직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이웃이니까 기특타 여길 참인데 어쩌다 한 번 실수로 이긴 것을 가지고 오두방정을 떨던 그 꼬락서니들이 괘씸하다.

  8년 뒤, 2002년에 월드컵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느닷없이 서둘러 저희네가 가로채려는 음모의 하나로 짐작되는 판에 돈으로 심판을 매수, 승부를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아가면서 열도를 들쑤셔 흥분의 도가니로 이끌고 가는 그들의 지식층 특히 매스컴의 소행이 더욱 가소로워 웃지 않을 수 없다. 생각만 해도 저절로 입술을 뚫고 튀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웃고 또 웃는다.

  “후 후 훗.”

  웃고 보니 쌓였던 스트레스도, 묵었던 체증도 말끔히 사라져 그저 상쾌하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가급적 크게 소리내어 웃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누구 약올리는 것처럼 여겨질까봐 입술을 다물고 다만 ‘흠흠흠’ 하며 웃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웃이니까. “히히 히힛.”



2

한국인의 꼬리



  우리 민족은 반만년을 살아오는 동안 가장 뼈아프게 후회스러운 것이 몇 가지 있다. 배고픈 것이 그 첫째요, 이민족으로부터 만만하게 보여 침략을 수없이 받아 온 것이 두 번째요, 배우지 못한 것이 그 세 번째다. 그 외에도 잘 입어보지 못하고 좋은 음식 마음대로 먹어 보지 못한 것, 권력에 눌려서 기를 펴보지 못한 것, 질병에 시달리며 신체적인 고통을 받은 것 등등이 있다.                                    -「돈으로 통일을 샀다」중에서


한국인의 꼬리


  나라를 빼앗겼던 민족에게는 허물도 많았던 모양인지 아직도 볼썽사나운 꼬리가 한 개도 아닌 여러 개가 거추장스럽게 붙어 다닌다.

  <까레이스키>

  이 말은 소련인들이 우리나라 사람을 일컫는 비칭(卑稱)으로 ‘한국놈’이란 뜻에 가깝다 한다. 나라를 잃고 시베리아를 방황하던 시절에 붙여진 것이어서 ‘유랑민족’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애니깽>

  이 말뜻 역시 ‘조선노예’란 비칭이다. 이 말에서 풍기는 어감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동물 비슷한 싸구려 인간노예로 아무렇게나 학대한들 탓 않는 약한 종족이란 뜻에 가깝다.

  <센징>

  이것은 왜놈들이 우리나라 사람을 일컬어 쓰는 말이다. 지금도 재일 교포들을 ‘센징’이라 부르고 있는 모양인데 왜놈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중 가장 비천한 취급을 당하는 형편이다. 마치 ‘왜놈’ 하면 ‘악독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종족’의 대명사인양 통칭하는 것과 같다.

  한때 나라를 잃고 지구 구석구석을 방랑하며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할 무렵, 그 나라마다 가장 천한 말투로 불러준 우리 민족의 이름꼬리들이다.

  나라 잃어버린 민족, 갈 곳이 없어 떠돌고 있는 불쌍한 민족, 노예나 다름없는 비천한 민족, 누구나 천대하여도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민족의 대명사요 꼬리표였다.

  <따이한>이란 말도 있다.

  이것은 월남전쟁이 한창 벌어졌을 당시 참전했던 우리 한국군을 지칭한 말이다. 처음에는 용감하다는 의미가 함축되고 다투어 애칭으로 불려져 왔지만 세월이 흘러 여러 가지 후유증이 드러나면서 당당하게 불려지던 이 ‘따이한’이란 말의 쓰임은 차츰 위축되어졌다. 어찌 보면 용감했던 용병(傭兵)의 대명사도 될 수 있지만 정복자도 아니면서 남의 땅에 가서 멀쩡한 정신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몰인도적(沒人道的)인 부작용을 일삼고 다녔던 부류로 오해되어지고 있다.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 지금, 우리의 자화상은 어떠하며 우리 이름은 어떻게 불려지고 있을까?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고 대단한 능력을 지닌 민족이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돈푼께나 있다고 왜놈 땅에 가서 밥통 사냥, 동남아에 가서 쓸개 사냥을 서슴없이 하는 그러한 민족이 일부 한국인이었다. 요즘은 세계의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보신용 기호식품을 모으고 온갖 추저분한 짓을 다하는 민족이요, 현금을 제일 많이 가지고 다녀 세계의 좀도둑들이 선호하는 과녁 역시 한국인이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을 헐값으로 수입해서 고용하고 있는데,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싸구려 품삯에다 거의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부려먹어 말썽을 빚고 있는 실태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피해를 입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외국 노동자들에게 결코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악독한 제국주의의 지배아래 고통을 받았고 동족상잔의 쓰라린 아픔을 겪고도 열심히 일해서 경제부흥을 일으켜 놓았다는 선망을 받아왔던 것이 우리 민족이 내놓을 만한 자랑이었다. 그런데 조금 형편이 나아지기가 무섭게 부끄러운 치부를 하나 둘씩 드러내는 것은 참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고통이다.

  이 모두가 형편이 좋아졌다고 해서 허리끈을 느슨하게 매고 ‘어․더․위 업종(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 흔히 3D업종이라 한다)’을 기피하는 풍토가 만연되어 빚어진 오만이 넘친 소치가 아니고 무엇이냐.

  세계화에 익숙지 못한 우리 민족은 값비싼 88올림픽을 치른 후에 아직 그 본전치기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식민지시대 때보다도 더 추한 꼬리표만 너절하게 달고서 어찌 선진국 국민들과 어깨를 견주어 갈 수 있으며 세계화의 문턱에 다가설 수 있겠는가?

  센징!

  애니깽!

  까레이스키!

  따이한!

  곰발바닥!!

  이러한 꼬리 말고 또 어떤 것들이 우리 한국인의 이름 뒤에 너절하게 붙어 다닐지 이제는 지켜 볼 수만은 없다. 달린 꼬리를 떼어버리지는 못할망정 또 덧붙이는 일만은 하지 말자.


도둑을 쫓다가


  도둑을 쫓다가 도둑을 앞질러 달리고 말았다.

  20세기에 들어서기 바쁘게 나라를 빼앗겼다.

  나라를 찾는답시고 만세를 부르다가 목숨을 잃었다.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고 통한의 일생을 살다간 사람도 많았다. 차디찬 감옥에서 잘못도 없이 매질당하는 것은 예사였고, 고자질 않는다고 죽임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시체를 토막내는 죽임을 당하는 일도 많았으며 총알이 아까워 불태워 죽이는 일도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누구 하나 아무런 말도 못하고 구경만 할 따름이었다.

  또 만주벌판으로 쫓겨나 마적 떼에게 짓밟히기도 하고 추위에 떨다가 굶어 죽기도 한 사람도 많았으며 시베리아로 넘어가서 민들레 솜털처럼 천지사방 흩어져 버린 이들도 많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리랑을 끊임없이 불렀다.

  그러면서도 늘 마음속으로는 나라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죽음을 앞에 두고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던 피땀에 젖은 태극기를 끄집어내어 아들에게, 손자에게 건네줬다.

  그때의 우리 민족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오직 조국의 독립뿐이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뜻밖에 놓임을 당했다. 연합군의 승리로 소위 해방을 맞은 것이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애국지사들의 마음은 조국을 독립국가로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옥신각신 다투었다.

  그러다가 그만 두 동강으로 쪼개버리고 말았다.

  조국은 두 동강으로 깨어졌고 동족은 서로 원수가 되어 아옹다옹 싸워야만 했다. 피를 흘리며 싸웠다.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싸웠던 그 영용한 싸움 솜씨를 동족을 죽이는 일에 써먹었다.

  어떤 사람은 제 형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밀고, 어떤 이는 제 동생의 목덜미에 단도를 꽂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일수록 더욱 용감하며 충성스럽다고 칭찬을 들어부었다.

  인간이기 전에 먼저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의 노예이기를 자랑했다. 조국을 광복하면 원수 왜놈들을 죽여 부모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겠다고 했던 그 다짐은 간 곳이 없고, 형제끼리 동족끼리 죽이는 난리를 또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도둑을 쫓다가 도둑보다 앞서고 말았다. 그 철천지원수는 목숨을 건져 겨우 도망갔으며 엉뚱하게 동족끼리 싸움질하는 창피스러움을 겪었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변했다. 그러는 사이에 도둑은 우리보다 앞질러 달리고 있다.

  그러나 독립을 얻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과제는 통일이다. 통일을 해야만 독립을 찾게 된다. 그래서 또 한차례 열심히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배고픔의 도둑을 쫓아야 했고, 힘을 길러 살아남아야 했으며, 다시 상대를 능가하는 능력을 길러야 했다. 그래서 열심히 경제개발을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돌이켜 보자. 도둑을 쫓다가 도둑보다 앞질러 가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자.

  경제발전에 열중하다 보니 양심을 잃지나 않았는지 살펴보고, 이웃을 잃지 않았는지 형제를, 부모를, 친구를 잃지 않았는지 살펴보자. 이익에 탐닉하던 습관이 들다보니 모든 가치기준을 돈에만 두고 있지 않는지도 살펴보자.

  그런 다음 우리의 소원인 민족통일과 조국의 독립을 반드시 찾아야 하겠다는 일념을 이제는 잊지 말고 달리자. 또다시 도둑보다 앞질러 뛰는 일은 없도록 하여야 한다.

  남해바다 자라가 용왕의 속병에 특효한 토끼간을 구하려고 토끼 사는 뭍으로 올라왔다.

  토끼라는 짐승은 두 귀가 쫑긋해 개미 연애하는 소리도 곧잘 엿듣고, 뒷다리가 길고 튼튼해 호랑이보다 더 빨리 달린다는 말을 들은 자존심 덩어리인 자라는 큰소리쳤다.

  “제깐 놈이 좀 잘나 봤자 육지 촌놈이지. 수륙을 내 맘대로 누비는 나를 감히 당하겠어!”

  토끼의 그림을 펼쳐들고 통영 바닷가에 다다르니 물 속과는 달라 첫걸음부터 엉금엉금 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재빨리 달리는 기술을 익혔다.

  피나는 연습 끝에 쟁반처럼 구르는 묘안을 터득한 자라는 토끼 정도는 따라잡을 자신이 넘쳐 마침내 사냥을 나섰다.

  먼저 토끼가 많다는 통영군 산양면에 있는 용화산 미륵봉으로 향했다.

  토끼그림을 들여다보며 산 중턱에 다다르니 따끈따끈한 바위등 위에 그림에서 보던 짐승이 고즈넉이 낮잠을 거나하게 잡수시고 있다.

  “토끼다!”

  자라는 너무 반갑다 못해 저도 모르게 탄성을 올려 지르고 말았다.

  “누구야! 어른 낮잠 주무시는데 깨우는 놈이!”

  토끼는 정말 ‘놀란 토끼 표정’을 한다.

  “네 놈이 토끼로구나. 옛날에는 네 놈에게 속아 그냥 풀어주었다더라만 오늘은 잡는 즉시 네 놈의 간을 뽑아 가겠다.”

  자라는 다짜고짜 토끼에게 달려들었다. 엉겁결에 토끼는 뛰었다. 그리고 잽싼 걸음으로 도망갔다. 자라도 토끼를 잡으러 달려갔다.

  토끼는 토끼처럼 빨리 달렸다. 자라는 쟁반처럼 구르기 시작하여 토끼를 앞지르고 말았다. 토끼도 질세라 힘을 다하여 자라를 앞질렀다. 물론 자라도 토끼에게 질 수 없다는 듯이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토끼를 앞질러 달렸다.

  둘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열심히 달렸다.

  마침내 자라는 토끼를 두어 마장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한산섬이 마주 보이는 달아공원까지 뛴 자라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토끼가 보이질 않았다.

  “아니 이놈이 어딜 갔지?”

  도둑을 쫓다가 도둑을 앞질러 달린 셈이다.

  용왕은 토끼간을 기다리다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1960년대 가난을 떨치려고 정신없이 달렸던 35여년! 우리들은 이제 다소간 넉넉함을 찾았건만 무엇을 위하여 달렸는지조차 잊고 계속하여 지금도 목적 없이 달리고만 있다. 신의도 잊고, 도덕도 팽개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미루고, 형제에게 우애하는 것도 미루고, 달리기 선수처럼 그저 달릴 뿐이다.

  오물도 아무데나 버리면서 달리고 달릴 뿐이다. 이제는 아름답다고 자랑하던 금수강산이 오염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몹쓸 방사선찌꺼기까지 돈 받고 맡아준다는 자도 있다.

  법을 고친다면서 야반에 모여서 고치는, 도둑질하는 선량을 뽑아주었다. 다수결 민주주의라는 이름은 허울뿐이고, 어떻게 하면 뽑아준 국민의 호의를 뒤집느냐에 마음을 집중하고 있어서 마치 청개구리 심보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국민의 마음은 그나마 하나 남은 기대마저 허물어졌다.

  법도 도둑맞고 종놈으로부터 뺨도 맞았다.

  도둑을 쫓던 자가 도둑을 지나치게 되어 이제는 도둑에게 쫓기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를 능욕한 죄


  현불동(現佛洞) 깊고 깊고 현불암(現佛庵)높다 높다.

  걸음마다 바람일어 날을 듯이 솟아올라

  걸친 건 다 벗어 던지고 안개로만 감싸다.


  지금 우리나라에 이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명산이 몇 곳이나 남아 있을까? 이 아름답고 빼어난 금수강산은 우리 조상들이 참으로 운 좋게 차지한 이후 반만년 동안 가꾸고 다듬고 즐기며 사랑해 온 보금자리다.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여기서부터 나오고 여기에 갈무리 해 두고 산다. 춘하추동 계절을 달리하여 풍성함을 주고 사랑과 행복을 알맞게 안겨준다.

  우리 민족은 이 아름다운 자연에서 자손들이 뒹구는 재롱을 보고 즐기며 연연히 오늘에 이르러 왔다. 또한 앞으로도 빼어난 이 강산에 의지하여 고달픈 마음을 보듬었다가 다시 활기를 찾아 오대양 육대주에 기상을 드날리며 찬란한 민족의 저력을 펼쳐 나가게 될 것이다.

  이 강토는 곧 우리 민족의 모태요 민족의 정신이며 어머니와 같은 곳이다. 누구나 그가 태어난 곳을 향하는 생각, 즉 귀소성(歸巢性)을 지니고 있다. 가족은 고향을 생각하고, 종족은 근거지를 생각하며, 민족은 조국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생물은 자라온 토양을 그리워한다.

  이러한 일련의 관계에 결함이 생기면 그 종족은, 민족은, 개인은 모두 정신적인 병을 앓게 된다. 고향에 가지 못하면 향수병이 생기듯이 인간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은 적지 않아 심지어는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청소년들을 이끌고 국토순례를 한다. 그들에게 산을 보여 주고 바다를 보여 준다. 명승고찰을 보여 주며 민족문화를 이야기해 준다. 그러나 오히려 절망을 안겨주고 만다. 청소년들의 눈에 비친 조국의 강산은 오물덩이다. 남루하게 망가진 강토다.

  담배꽁초가 있고 입걸레(껌)가 묻어난다. 북악산도 그렇고, 지리산도 그렇고, 한라산 백록담에서도 바라본 얼굴들도 찡그려져 있다.

  이 강산은 그나마 둘로 갈라졌고 언제부터인지 강간당한 것 이상으로 황폐해졌다. 오랑캐가 침범했을 때보다 더 흉물스럽게 훼손되고 엉망진창이 되었다.

  기대했던 조국강토가 쓰레기로 오염되어 있는 것을 보자면 자기학대와 현실도피적 발작이 일어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의 정서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줄 것은 뻔한 일이다.

  돌이켜 보면 35여년,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새 돈도 벌고 자동차도 마련했다. 그래서 지도책을 펴들고 가볼 만한 명승고적은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열심히 오물을 쏟아부어왔다. 모두가 돈이 있으면 무슨 특권이 부속품처럼 따라붙는 것처럼 착각하고 무작정 설쳤다. 자연환경이 오염되기 시작하면서 사회환경도 함께 오염되어 갔다.

  경제가 돈으로 도배질당하자 정치를 오염시켰다. 사회환경도 이기주의로 페인트칠되자 교육도, 문화도 썩고 병들지 않은 것이 없게 되었다.

  도덕이 추락하고, 노인이 소외되고, 여성문제, 청소년문제가 사회문제의 핵심이 되었다.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의 규모도 산악처럼 커져갔다.

  추석과 설이면 향수라는 병을 치료받기 위해 고향을 찾지만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안고 돌아온다. 이러한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동안 사람들의 마음은 병이 들거나 앓게 되었다. 야만인들에게 약탈된 피난민들처럼 처참하게 신음하고 있음을 보았을 뿐이다.

  자연이라는 인간의 모태가 여지없이 훼손되고, 사회도 함께 병들어 신음하는 가운데 고향에서 안식을 찾으려 하던 기대는 절망으로 변했다.

  근래 끔찍한 범죄가 특히 청소년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것을 볼 때 미래의 사회환경도 걱정된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땅을 올려다본다. 바람이 지나다 듣고, 초목이 비웃는 가운데서도 버젓이 자기를 낳아준 제 어미까지 능욕하는 자가 어디 한둘인가? 이보다 더한 패륜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를 다스리는 인간이 정한 대목이 없고 인간의 법으로도 치죄할 수 없음이 한스럽지 아니한가?

  스스로 신체의 일부를 잘라 죄업을 갚되, 담배꽁초를 버렸으면 그 손목을 잘라야 하고, 대기를 오염시킨 자는 심장을 도려내야 마땅할 것이다. 다만 돈 몇 푼으로 그 죄값을 대신한다 하니 죄는 악을 더 크게 잉태하기만 한다. 인간의 보잘 것 없는 능력으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을 함몰시킬만한 죄악을 다스리려 한다는 것은 한낱 쇠똥벌레가 수레의 바퀴를 멈추게 하려는 수작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자연을 훼손해 민족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패륜아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오염을 조장․방조하는 패륜아들, 제 어미의 자궁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저주가 따를지어다.

  그리고 하루속히 통일하자. 금강산 현불암 바위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낙서부터 지워야겠다.

  이 나라 강토에 낙서한 자는 제 어미까지 강간하기를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이며 용서할 수 없는 이 민족의 죄인이다.



돈으로 통일을 샀다



  근래 돈으로 통일을 이룬 나라가 있다. 아직 통일을 그림 속의 떡처럼 생각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나마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의 통일을 두고 여러 가지로 평가하고 있지만 그들이 50여년만에 이룬 통일이기 때문에 아직도 두서를 잡지 못하고 들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올바른 평가를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고 보는 견해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가장 옳은 말이라고 본다.

  그들은 아직 국토는 통일되었을지언정 가장 중요한 게르만 민족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올바른 의미에서 통일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

  민족을 통일하는데 있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자명할뿐더러 돈이면 간단하게 인간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믿는 것부터 큰 착각 속에 헤매이는 것이다.

  민족을 통일한다는 것은 같은 수돗물을 마시고 같은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같은 목욕탕 안에서 목욕을 하고 서로의 자식을 결혼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면 또한 큰 오해라고 생각한다.

  민족의 통일은 마음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민족정기 통일인 것이다.

  민족이 정신을 빼앗기고 몸체만 한 곳에 어우러져 산다고 해서 통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같은 감정을 느끼고,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마음으로 한 몸임을 자각할 수 있는 형편에 이르러야 한다. 또한 민족의 장래를 함께 걱정하고 민족의 살길을 개척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땀흘리며 일하는 태도가 스스로 우러나오는 현상이어야 하며 이러한 모양은 자연스러운 가운데서 이루어져야만 참다운 통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흩어져 있던 가족이 한 처마에서 한 부엌밥을 같이 먹는다고 해서 통일이 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필자와는 일가인 한 축구감독의 부자간의 상봉을 보면서 부자가 한솥밥을 먹게 된다고 해서 그 가족이 다시 한 덩어리의 가족으로서 함께 행동할 수 있을 수 있을지,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행동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서로가 주고받는 인사말을 두고 보더라도 너무나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었다는 현실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비록 말은 같은 말을 쓰고 글도 같은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말과 글로서 토해 놓는 그 내용은 너무나 다른 뜻을 담고 있다는 현실을 볼 때 너무나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을 살아오는 동안 가장 뼈아프게 후회스러운 것이 몇 가지 있다. 배고픈 것이 그 첫째요, 이민족으로부터 만만하게 보여 침략을 수없이 받아 온 것이 두 번째요, 배우지 못한 것이 그 세 번째다. 그 외에도 잘 입어보지 못하고 좋은 음식 마음대로 먹어 보지 못한 것, 권력에 눌려서 기를 펴보지 못한 것, 질병에 시달리며 신체적인 고통을 받은 것 등등이 있다.

  이러한 동기로 경제개발을 치중해서 이제는 경제적으로는 거의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는 국민소득을 올리고 있다. 국방력을 키워서 이제는 세계에서도 4번째 군사강국으로 부상했으며, 웬만하면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수한 인재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외국에 나갔다 하면 외제 옷가지와 술담배는 물론이고 강장제도 싹쓸이 해올 정도로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었고, 자식들은 일류 법과대학에 보내어 판검사를 시켜야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의과대학이라도 보내어 의사를 시키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만큼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되었다.

  ‘누가 장가간다고 하니까 거름을 지고라도 장가간다’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오랜 역사 동안 속담으로 전해 오면서 따끔한 교훈이 되어 주었다. 동서독이 통일된 동기는 단순하게 돈으로 해결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진행되는 모양을 두고 돈으로 통일을 샀다고 따끔하게 비평하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당면하고 있는 남북의 통일 역시 사실과 다르게 오해받는 통일이 된다면 지금까지의 나누어져 고통받던 비극 이상으로 더 쓰라린 아픔을 맞는 결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통일문제는 신중하고도 신중하게 다루어 나가야 한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한편 지나치게 조심하다 보니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성급한 주장도 없지 않다.

  이러고 저러고 하는 사이에 한발 한발 대세라는 거대한 바퀴에 의하여 통일의 문으로 다가서고 있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소원은 오직 통일이기는 하지만 남의 것을 흉내내는 통일을 소망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남북간에 갈라 서 있는 사이만이 통일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살고 있는 현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악독한 일본 식민지 시절에 짓밟혀 왔던 민족의 정기, 이해관계, 신의가 흩어져 있으며, 이웃과 이웃이 서로 알게 모르게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형세로 살아가고 있다. 억압착취에 밀려 조국을 떠나 먼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풍습에 젖어가고 있음은 어찌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런 심각한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보려는 이 땅의 각박한 마음자세가 통일을 갈망하는 자세로서는 진실하지가 않다.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문화의 창출은 국민의 마음에서 나온다.

  한 민족이 그 주권을 다른 민족에게 맡기면 노예가 되는 정도에 그치지만 마음을 남에게 맡기면 그 생명체는 죽음을 뜻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담고 있는 문화만은 누구에게도 위임할 수 없고 잘하거나 못하거나 국민 스스로 창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가장 먼저 공격하는 목표는 국민의 마음을 장악하고 문화를 이데올로기에 부합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일 첫 번째 전략이다. 일본 군국주의가 가장 열심히 노리고 있었던 전략도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 배달 민족의 얼을 빼앗으려고 무진 애를 다 쓰던 흔적을 우리는 목도한 바 있지 아니한가?

  이만큼 정복자에게 문화는 매력 있는 전리품이기도 하다. 경제로서 문화를 다스리려면 구호의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문화로서 경제를 다스리면 복지와 창의로 승화된다.



대한국인(大韓國人)


  뿌요 뿌요


  베이징(北京)의 여름이 한창 무르익은 계절이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한낮의 열기가 도시 구석구석 가득하다.

  생수통은 필수적으로 지니고 다닐 뿐 아니라 윗통을 벗은 사내들은 거리에 늘어서 있고, 햇살이 기웃 넘어가는 저녁때인데도 나무 그늘에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우리 일행이 지나가는 것을 멀끔히 바라본다.

  우리 눈에는 그들의 모습이 이상하여 구경거리로 바라보지만 그들은 우리를 눈요기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동차는 길거리를 메울 만큼 많은데 도로는 중앙선도 없고 건널목 표시도 없어 사람과 차량이 서로 숨바꼭질하듯 눈치껏 코치껏 건너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머무는 곳이면 어디서나 길거리 장사꾼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승강이를 벌어야만 간신히 길을 빌려 다닐 수 있었다.

  “뿌요 뿌요!”

  장사꾼들이 집요하게 따라 붙을라치면 이 소리를 연발하면서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의 하나다. 한국인이라 싶으면 더욱 세차게 따라붙는다는 안내인의 말을 들으면서 그 중에는 손자 놈에게 줄만한 것도 눈에 뜨이건만 그래도 필요 없는 척 옆눈길만 하면서 지나가야만 실수를 하지 않게 된다.

  물건을 헐하게 샀다 싶어도 뒤돌아서 물어보면 그보다 더 싼값으로 값을 부르고, 겉보기에 그럴싸한 것을 샀다 싶어 물건을 뒤져보면 조악스럽거나 부실하게 만든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판사판 기분이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오밍제’란 이름을 가진 안내인의 말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남한에서 왔다 싶으면 무조건 값을 터무니없이 높게 불러요.”

  “바가지를 씌우는 장사꾼이 많으니 조심하세요.”

  “상품을 탐나는 듯 바라보거나 웃으면 안 돼요. 그러면 끈질기게 따라 붙어요.”

  “물건이 탐나거든 ‘고오 고오(高高)’ 하며 값을 깎으시오.”

  “돈을 먼저 보여주지 마시오.”

  “물건과 거스름돈을 먼저 받은 다음 돈을 건네주시오.”

  “가급적 잔돈으로 물건을 흥정하시오.”

  안내를 맡은이가 유창한 우리나라 말로 일러준다. 그는 우리와 말을 같이 하는 조선족이라고 한다.

  약간의 억양과 용어가 어색하게 들리지만 바탕은 숨길 수 없는 우리 동족의 말이다. 조선식 이름은 ‘조명철’이라며 함안조씨라 한다.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 조선족의 청년은 아내와 아홉 살 먹은 예쁜 딸을 연변에 두고 혼자 이 만리 떨어진 북경에 와서 돈을 벌어보려고 여행사 조선인 통역원이란 직장을 얻었다고 한다. 이번 백두산 탐사팀 안내를 맡게 되어 요행히 고향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며 싱글벙글 한다.

  그저께도 상하이를 중심으로한 중국 남부지역 관광객을 안내했다는 그는, 검고 두꺼운 겨울 양복에다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걸치고 배어 나온 땀냄새를 감추려는지 향수 냄새를 풍기는데, 영락없이 30년전 갓 서울땅을 밟은 농사꾼 청년의 형색과 흡사한 우리들의 옛 자화상 바로 그것이었다.

 조선족의 활약


  눈요기 하는 것과 먹거리와 기념품 사냥 등이 주요 여행코스다.

  눈요기는 먼저 현대 중국 사회주의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천안문 광장을 시작으로 북경시내 곳곳에 널려져 있는 고궁 중에 자금성이 그 대표적이고 서태후가 청나라를 마음대로 주물렀다는 역사의 현장 이화원을 빼놓을 수도 없다. 그리고 만리장성이 포함된다.

  먹거리는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아 흥미를 잃었고, 기념품 사냥은 없는 것이 없다는 중국인 특유의 과시적인 것이 역력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천편일률 단조롭기만 하고 가는 곳마다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일이라면 중국이라는 대륙이 변화하는 모양과 아울러 조선족들의 대변신이라 할 것이다.

  호텔에서 창문에 비치는 북경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야말로 거짓말 약간만 보태 말하면 어제는 안 보이던 빌딩 건물이 하룻밤 사이에 호텔 창문에 그림자로 드리울 만큼 어제는 빈터였다가 오늘은 이미 골조가 올라가는 것이다.

  잠자는 대륙이 이제야말로 기지개를 켜면서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았고 그 틈바구니에서 조선족의 활약이 눈부시게 찬란하다는 점이 또한 흥미진진하다

  우리를 안내하는 조명철 통역원이 간간이 소개하는 말 가운데 가끔은 조선족의 활약상을 자랑스럽게 늘어놓곤 한다.

  그의 말을 몇 가지 모아보면 이렇다.

  “중국최고통치 5인위원회의 일인자가 조선족이며 자기와 같은 성을 가진 조○○씨입니다.”

  “조선족은 소수민족이지만 중국 정부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문화민족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현재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 대륙 곳곳의 공장이나 회사에서 특히 조선족은 대부분 지도자급이며 지금 타고 가는 이 비행기 회사의 사장님도 조선족 출신이랍니다.”

  “중국내의 모든 민족 중에 대학진학률이 가장 높은 민족은 역시 조선족이랍니다.”

  “조선족은 유아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을 잘 가르칩니다. 유치원 교육도 무려 3단계로 편성되어 있어서 똑똑하지 않은 조선족은 단 한 사람도 있을 수 없다는 철저한 교육방침이 그러하답니다.”

  “다른 민족들은 아이를 하나만 낳게 되어 있지만 특히 조선족에 한해서는 산아제한을 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부여받습니다. 소수민족이라도 우월한 민족은 더욱 우대하는 당국의 정책이 그러하답니다. 그래도 조선족들은 하나만 낳아 잘 기르려고 한답니다. 그것이 물론 훌륭한 교육을 잘 받은 문화민족이라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안내인의 어조는 매우 자랑스러운 듯 격앙된다. 노골적인 자랑이지만 아니꼽지 않게 들리는 것은 동족이라는 동질감에서 오는 느낌일까?


 무주공산(無主空山) 중원(中原)땅


  그렇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똑똑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너도 그리고 나도…….

  중국에 사는 조선족만이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사는 우리 배달겨레들!

  한 사람 한 사람 어디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아직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하기에 왜놈들 밑에서 모질게 짓밟히고 혹독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도 불과 수십년내에 세계에서 몇째 안 가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성큼 올라서지 않았는가?

  과연 대견스런 동족의 모습을 이곳에 와서도 찾아볼 수 있다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이 부풀어올라 가슴 언저리를 만져보는데 방금 오리고기로 포식한 내 배가 두툼하게 불거져 올라서 거북스럽다.

  만리장성을 마지막 코스로 북경을 떠나 백두산을 찾아보러 비행기에 올랐다.

  정기운항시간 20분전에 비행기는 이륙하였다. 북경발 연길행 비행기는 손님을 더 기다릴 필요가 없을 만큼 빈자리가 없어 비행기는 예정시간을 앞당겨 출발하고 앞당겨 도착하는 것도 가능한가보다.

  거의 조선족이 아니면 한국에서 온 백두산 가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마치 국내선을 탄 분위기이지만 기내방송만은 중국말과 영어였다.

  간간이 떠다니는 창밖의 구름을 내려다보며 저 멀리 길게 솟구쳐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곤륜대맥의 웅장한 줄기가 끈질기게 다가와 몇 차례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거대한 산맥들이 망망한 운해를 이루며 그곳을 떠다니는 시커먼 솔개의 날개처럼 비행기 뒤를 한참동안 따라 붙는다.

  황화 대류와 평행하여 달리는 만리장성의 줄기찬 용트림은 널찍한 운동장을 싸고도는 담장이라 한다면 가로와 세로줄이 반듯반듯 그어진 북경 시내의 모양은 그야말로 그 시대마다 새롭고 흥미롭게 용맹한 승부를 결단낸 바둑판이요 이름 그대로 가히 중원(中原)이다.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각양각색의 민족들이 다투어 이 드넓은 마당에서 온갖 재주를 펼쳐 왔다. 그러나 역사가 있어온 뒤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리 민족이 이 마당에서 가슴 시원하게 춤사위 휘저어 보지 못했었다 하니 그로 인하여 동방예의지국이란 별명을 붙이게 되었음직 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만은 그러한 과거를 챙기며 씁쓸해 할 일이 아니다. 어디 이 땅에 임자가 있다 하던가? 비록 한족이 이 땅에서 주인 행세를 한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서방에서 흘러온 종족이었을 따름이며 다소 숫자가 많다고 반드시 주인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리라.

  불원간 우리 조선족이 선두에 서서 이 거대한 역사의 수레에 가속도를 붙일 날이 있기를 기대해 보면서 역사를 더듬는다.

  참으로 장쾌한 광경이요 볼수록 흥미가 더욱 진지해지는 심오한 역사 속에 잠기는 느낌이다.

  저 넓은 광야를 무대로 영웅과 호걸, 미인과 재사(才士), 서로가 부둥켜 얼싸안고 짜릿한 역사를 과감히 엮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흐뭇한 감흥을 남기었건만 부질없음이여! 이 드넓은 광야에서 추정되는 연인원 400억명의 목숨이 6000년의 역사 속에서 명멸하였다니, 이제는 한낱 작은 티끌로도 남지 못하고 겨우 나의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로 변하고 말았구려!

  연길에 도착한 시간은 밤늦은 11시. 약간의 백열등이 비춰지기는 했지만 먹통을 부어 놓은 것 같아 온통 도시가 컴컴하다. 앞서 안내인으로부터 사정 이야기를 들은 바 있으나 이렇게까지 까막도시인 줄은 몰랐다.

  안내인은 끝내 전기 사정이 안 좋다는 말은 하지 않고 검소하게 밤을 보내는 것이 당국의 방침이라고만 연거푸 말하여 사회주의 국가의 엉큼한 다른 면을 엿보는 것 같았다.

  비행장에서 또 한 사람의 안내인을 만났다. 그는 백두산관광 전문안내요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조명철 북경안내원이 집에 다녀오는 이틀 동안 백두산을 비롯하여 용정 도문 등지를 안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직업은 간호사이며 부업으로 시작한 백두산 안내가 요즘 들어 관광객이 많아져 간호사 일보다 더욱 많은 수입을 올리기 때문에 주업이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그는 아직 수줍은 23세의 처녀다.

  그의 이름은 김예화라고 했다. 여기서 김씨는 ‘진’으로 발음한다. 연길시를 지나면서부터 그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단군왕검이 무엇이요?

  “여러분이 북경에서 만리장성을 보았을 것이지만 여기에도 4000리 장성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그는 자동차 마이크를 잡고 떠들어댄다.

  용정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소개하고 도문에서는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선 민족의 고뇌가 응어리져 있다는 등등 국경의 긴장감을 애써 풀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외어두었다가 술술 뱉어내는 연극대사처럼 느껴져 좀처럼 관광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듣다 못한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안내인에게 질문을 한 가지 해도 좋으냐고 묻는다.

  곧 안내인과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한글을 배웁니까?

  그러자 안내인의 설명이 길어진다.

  “여기서는 한글이라 하지 않고 ‘조선어’라고 합니다. 연길을 중심으로 하는 연길 자치주에서는 모든 조선족 사람에게 조선어를 기본으로 가르칩니다. 모든 교과서가 이 조선어로 되어 있답니다. 학교에서도 조선어로 말하며 선생님조차 모두 조선족입니다. 간간이 중국 사람이 섞여 있어도 조선어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네들이 불편한 지경입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역사공부도 합니까?”

  “물론 합니다. ‘중국역사’라는 과목으로 공부를 합니다. 이 과목에서는 중국의 고대시절부터 만주족이 중국대륙을 지배하였던 때를 포함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역사공부도 합니까?”

  “예! 바로 그게 우리 중국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 그게 아니라 단군왕검에 대한 것이라든지…….”

  “단군왕검? 그게 뭡니까?”

  “고구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가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들은 일은 있습니다. 옛날에 어딘가에 있었다고 하던데요.”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습니까?”

  “학교에서는 그런 것 모릅니다.”

  “조금 전에 말하신 4,000리가 넘는 큰 장성을 발해시대에 쌓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아닙니다. 그건 옛날 여기 살던 여진족이 쌓았다고 합니다. 발해라는 이름은 처음 듣습니다.”

  “족보가 무엇인지 들은 바 있습니까?”

  “족보? 그게 무엇입니까?”

  “집안의 내력을 적어 놓은 기록입니다. 집에는 그런 책이 없습니까?”

  “문혁때 홍위병이 들이닥쳐서 옛날 것이라고는 모두 불태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헌책 보자기를 불에 태우시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만…….”

  “본관이 어디지요? 어디 김씨인가요?”

  “경주김씨라는 말은 들었어요. 경주라는 곳이 남한 어디 있다고 하던데…….”

  일행은 곧 흥미를 잃고 안내인에게 노래를 시켰다. 가장 흔하게 부르는 노래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로 시작되었다.


  또 하나의 침략정책

  역사를 약탈하는 중국 정부의 문교정책은 노골적인 침략이다.

  왜놈들이 한때 조선의 역사를 말살해 보려고 온갖 못된 짓거리를 다했던 자취가 새롭건만 이제 놈들의 굴레를 벗어났다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 참인데 어느덧 중국 안에 살고 있는 조선족에게 역사를 망각시키는 최면술 교육을 퍼붓고 있다. 장차 우리 민족의 앞길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침략전쟁과 버금가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어린 학생의 뇌리에서 그 조상의 흔적조차 지워버리려는 정책은 언젠가 가긍한 결과를 남기게 될지 모를 일이다.

  지금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대부분이 왜놈들의 침략으로 만주와 중국으로 건너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들의 후예들이라 누구보다도 투철한 조국애와 민족애를 피속에 갖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향하여 조상의 흔적을 뿌리째 뽑아가려 하는 정책은 국가와 국가간에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막중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를 당하고 있는 당사자인 조선족도 이에 대한 자구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조선족이면서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여 이민족으로서의 행세를 하는 예도 있었다. 일찍이 바다 건너 왜국으로 건너갔던 고구려와 백제유민들이 문득 생각난다.

  그들이 스스로 왜곡시킨 역사책을 들먹이며 ‘아마데라스오미가미’ 자손이 되고 말았던 그들이야말로 지금까지 천년을 통하여 악착스럽게 우리를 못살게 구는 천하의 못된 종자 ‘왜놈들’이 되고 말았지 않은가?

  ‘국가는 큰 한 가족이다’로 시작하는 조선사를 쓰다 겨우 조선상고사만 남긴 단제 신채호 선생이 이 광경을 또 목도하신다면 다시 무덤에서 분연히 일어나서 나머지 쓰다만 조선사를 마무리하시되 대륙을 향한 통렬한 선전포고를 던질 것 같다.

  하얼빈 역에서 왜놈의 괴수 이등박문을 단 한 방의 총알로 패사시킨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대한국인’이라는 글을 쓰고 약지손가락을 잘라 서명을 하였다. 바로 그 현장이 중국정부에 의해 부정되고, 이를 방관하는 자손들이 있고, 이를 묵인하는 정부가 있다면 또 하나의 매국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여도 아무도 부정하진 못할 것이리라.

  백두산 천지는 천하의 영산이라 한다.

  화산으로 이루어진 산으로서 정상에 호수를 얹고 있는 곳은 백두산밖에 없다는 신비한 현상을 음미하면서 우리 민족의 시작이 이토록 부러움과 자랑스러움으로 넘치고 있음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제 그 마무리는 가히 부끄럽고 창피하여 몸둘 바를 모르는 처지에까지 이르는 분열의 연속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는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한결같은 현상이 아니던가?

  우리 민족이 삼국통일이라는 대 모험 이후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고 분열된 것이 수십 수백이 넘는다. 지금도 중앙아시아 등지와 남만 오지에서 고구려의 풍습과 말을 그대로 이어가는 우리들의 형제와 흡사한 마을이 몇몇 탐사팀에 의하여 속속 알려지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너무나 오랜 세월을 헤어져 살아왔기 때문에 같은 민족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늦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한때 거란의 침입으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듯 광활한 대륙 어느 귀퉁이에서 쓰라린 아픔을 곱씹고 또 곱씹다 이름 모를 원귀로 사라져갔을 목숨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40년간 설쳐대던 우악스런 몽고군사들에 의하여 나무등걸처럼 뗏목처럼 엮어져서 차디찬 이국 땅 어느 구석의 노예로 팔려간 가엾고 힘없는 동포들의 운명이 어찌 되었는지 아는 이가 있는가?

  임진왜란 당시에 포로로 끌려간 자도 부지기수였다. 기구한 것은 얼토당토않은 머나먼 유럽땅 이태리 어느 산골짜기에 한 포로의 후손이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니 반갑기에 앞서 허약했던 민족의 비애가 서럽기만 하다.

  한일합방이 되자 마적 떼가 우글거리는 북만주로 떠나 ‘조선족’이 되고, 차디찬 동토 시베리아로 쫓겨가 ‘까레이스키’가 되고, 일부는 미국이나 멕시코로 끌려가서 사탕밭의 ‘에니깽’이 되고, 징용과 정신대로 끌려간 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왜놈 땅에 아직도 머물러 ‘조센징’이 되어 갖은 핍박과 푸대접을 받고 사는 우리 동족들. 오로지 나라의 힘이 없어 빚어진 비극이라고 단적으로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왜놈들한테 오늘날까지 수차례나 괴로움을 당한 것조차 지긋지긋한데 그것도 부족해서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역사를 잊어먹은 조선족의 후예들에 의하여 또다시 핍박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매우 곤혹스러운 생각이 든다.


 붉은 피야 다시 흘러라


  간판마다 꼬부랑 글씨로 광고하여야 하고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도 지렁이 같은 글씨가 아니면 팔리지 않는 현실 속에 묻혀 산다. 말끝마다 영어 발음이 튀어나와야 하고 영어식 아니면 표현이 불가능해진다.

  어느 종교단체에서 단군을 모시는 사당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등 단군왕검이 이 땅에 터를 잡은 이후 종자가 다른 민족에 의하여 지배되는 서글픔보다 더욱 부화를 돋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마치 한 울타리 안에서 자라난 자식놈들이 남의 자식 행세를 하는 꼴을 보는 것처럼 명색은 배달민족이면서 행동은 마치 다른 민족인양 드러내 놓고 행세하는 몰골을 차마 보기가 역겨울 것이다. 송구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일찍이 왜놈들에게 강탈되던 해 1905년 동짓달 어느 날에 위암 장지연이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이라는 글을 써서 온 민족으로 하여금 울분을 터트리며 목놓아 울게 만들었던 그 해야말로 어느 해 보다도 매섭게 차갑고 시린 겨울이었다.

  줄줄 흐르던 눈물이 고드름이 되는, 섣달 그믐이 다 되어 가는 어느 날! ‘이날에 또 방성대곡한다’라는 사설을 똑같은 신문에 써서 당시 울고불고 하던 2000만 조선 민족의 울음마저 덜컥 그치게 하고, 이역 땅에서 남모르는 눈물로 목마름을 적셔가며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처럼 아끼지 않고 바친 그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심금을 불타게 만든 장본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단제(丹薺) 신채호(申采浩)였다.

  그가 이런 시를 한 수 남겼다.


 살은 썩어 흙이 되고

  뼈는 굳어 돌이 되거라

  님의 나라 한줌 흙

  보태지거라


  필자는 여기에 한 줄 더 얹는다.


  붉은 피 검은 땀

  한 방울만 남더라도

  태어나는 새싹들

  거름되거라


  거침없는 세월 따라

  바람 되어 흩날려도

  조선의 혼(魂) 있거든

  북두(北斗)에 빛나거라

  ‘조선족’! 뿌리를 잊어가는 그들!

  여기 또 역사를 잃은 민족이 한 가닥 크게 갈라서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풍속을 같이 하고 말을 같이 한다. 하지만 근근히 한 가닥 두 가닥 이어오던 민족의 역사, 가족의 혈통을 송두리째 망각하려고 스스로 발버둥치는 군상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천지(天池)! 그대는 냉정하게 바라보기만 한단 말인가?

  그대가 안고 있는 물이여! 이렇게도 차갑고 푸르기만 한가?

  산산이 흩어지는 슬픈 마당에 피눈물을 머금어야 한다.

  압록과 두만에 슬픈 소리를 지르며 피는 물을 뿌리면서 내달려야 한다.

  이 민족의 가슴파기마다 피뭉치를 던져서 이 아픔을 속속들이 알려야 하느니라.


충무(忠武)와 권현(權現)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팔고(八苦) 중 수원봉고(讐怨逢苦)를 의미한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왜군을 대파한 인연으로 그의 사후에 받들어 추존(追尊)하는 시호를 충무공(忠武公)이라 했다 해서 한산도가 속해 있는 통영을 충무시로 명명한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충무에서 가장 대표적인 산업이 멸치잡이를 중심으로한 수산업이며 충무의 경제를 이끌고 간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수산업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일본어를 그대로 옮겨 쓰고 있는데, 일본인들이 강점했던 그때 그들에게서 배운 것이어서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퍽 꺼림칙한 것이 한 가지 있어 이 기회에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멸치잡이 어업을 기선권현망(機船權現網) 어업이라고 한다는데 여기서 권현(權現)이란 글자는 순수한 일본말이며 우리나라 말로 그대로 옮겨 써서는 결코 안 되는 말이다. 특히 이 고을은 충무라는 이름의 도시이고 보면 권현이란 괴상한 글자는 바다 밑에 깊숙이 깔아 뭉개버려야 마땅하다.

  권현은 일본에서 떠받드는 해신(海神)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원래 이름은 동조대권현신(東照大權現神-도조다이곤겐가미)이라 부르며 바다를 평화롭게 해 준다는 신이다.

  일본 땅 중동부지방 일광(日光-닛고)에 동조궁(東照宮)이 있고 그 궁은 곧 이 권현신을 받들고 있는 신사(神社)로서 일본인들에게는 대단히 존경받는 자의 묘가 있다.

  그 자가 바로 덕천가강(德川家康-도꾸가와 이에야스)이며 「권현신」은 그가 죽은 후 유언에 따라 붙여진 추존명(追尊名)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큰 공을 세운 공신에게 붙이는 시호(諡號)와 같은 종류의 명칭일 따름이다.

  참으로 기구한 것은 이곳에서 어이없게도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글자가 서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충무공은 이 나라 남해안을 지켜주는 해신으로 추존(追尊)받고 있다. 고기잡이 나가는 모든 어선들은 모든 잡신을 몰아내고 말끔하게 보듬어준 충무공 이순신에게 경건하게 제사하며 해마다 풍어를 빌곤 하는데, 어이없게도 왜놈들 귀신 뼈다귀가 아직도 떠돌아다니면서 못된 장난을 치니 우리 해신께서도 역시 텃세를 아니 하실 리 없다고 생각한다.

  “원하건대 잡신이여, 이제는 썩 물러가고 정축년(丁丑年) 새해에는 미도정항(美都情港)에 그득그득 풍년풍어(豊年豊漁)토록 빌고 또 비옵니다. 괘심하더라도 지난해처럼 모질었던 시샘만은 잠시 거두소서.”

  지금 기름범벅이 되어버린 바다에 원망 그윽한 시선을 떼지 못함은 신들도 인간들이 한 것처럼 투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1997. 1. 통영에서)


미도정항(美都情港)

 

  통영(統營)의 겨울은 따뜻하고 충무(忠武)의 여름은 시원하다. 아름다운 항구 도시 이곳은 그 이름이 두 가지로 통한다. 하나는 통영, 또 하나는 충무이다.

  충무라는 이름이 붙게 된지도 어언 반백년이 흘렀으나 아직도 옛이름 통영을 잊지 못해 ‘나는 통영사람’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는 토박이들의 고집스러움에 외경스러움을 금치 못하겠다.

  충무라 불러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통영이라 일컬어도 정답게 감쳐오는 미도정항(美都情港)!

  여기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선남선녀들!

  여자로 태어나면 미인이 되고, 남자로 태어나면 미남장부다. 인정도 역시 바다처럼 넓고 깊고 두텁다.

  그래서 통영은 맑고 깨끗해서 아름다운(美) 고장이다.

  그래서 충무는 인심이 후하고 정(情)이 넉넉한 고을이다.

  임진왜란때 통영땅 한산도를 중심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있는 이순신 장군을 흠모하던 한 정부요인이 친구의 선거유세차 왔다가 비로소 ‘충무’라는 이름을 붙여 오늘에 이른 것이 어느덧 세계적인 명승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생전에 쓰시던 유품이 이곳에 잘 보관되어 왔었는데 타의에 의해 부득이 고향지역에 빼앗기다시피 물려주고 충무에는 모조품만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사실유무는 고사하고 전쟁 당시에 쓰던 유품이 본 자리를 옮긴 것은 매우 불유쾌한 일이라 여겨진다.

  애지중지 기려오던 보물마저 빼앗긴 마당에 고지식함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 모양인지 언제부턴가 충무라 하지 않고 통영이란 이름으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진품이든 모조품이든 그 정신이야 어찌 변하겠는가. 그가 조국에 바친 믿음을 믿는다면 유물이 어디 있은들 멀리서나마 이 고을을 지켜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옛부터 충이란 글자 뒤엔 죽음이 따라 반드시 귀신이 붙게 마련이다. 한산도 대첩 때 몰살당한 왜군들의 처절한 죽음은 묻어두고 칠천도 해전 때 미처 도망가지 못해 목이 달아나고 수중의 고혼이 된 무수한 조선 수군들의 원혼이 섬과 섬 사이를 넘나들기도 하고 고개와 언덕에 굴러다니며 조약돌 마다에 이끼처럼 묻어 다니기도 할 것이다. 해안 절벽이나 모래와 자갈틈 사이에도 잠겨 있어 원한 깃든 귀신이 우글우글 하는 것이 사람 눈에도 역력하게 나타난다.

  토성 고갯마루에는 귀신을 상대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충무는 귀신이 도깨비보다 많다. 그래서 도처에 귀신을 다스리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귀신은 족보가 있으나 도깨비는 뿌리가 없는 것이 차이가 있다. 도깨비보다 귀신이 더 많이 살아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는 근거 없는 비과학적 소문도 떠돌고 있다.


  충무에도 예외는 없다. 그것은 교통문제다.

  해안도로를 끼고 도는 길은 예로부터 비좁다. 구석구석 길거리 빈자리마다 자동차를 세워두었는데 다른 차가 주차하게 되면 더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 미리미리 방패막이로 차를 한 대씩 사서 세워 두었다는 가게 주인도 더러 있다.

  충무아들이 통영아버지에게 조른다.

  “아버지! 자동차 사줘.”

  통영아버지는 충무아들에게 말한다.

  “요즘 길 막혀 자동차 타고 다닐만 하던? 길 넓힌다는데 그때 사줄 테니까 우선 대중교통 타고 다녀라.”

  통영의 육로 길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바다를 끼고 산 고개도 넘고 산허리도 감돌아가며 구곡간장(九曲肝腸) 구불구불 고불고불하다.

  산그늘에 조가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던 옛집들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요즈음 집들은 아파트가 되어 높아만 가니 가뜩이나 길들은 좁혀지는 것만 같다.

  미도정항(美都情港)이 한 조각 추억으로 남는가?



옛날의 한 운동권


  매사는 누구나 그저 본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옳은 생각이라고 본다.

  우리가 지금까지 체험한 일 중에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 있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역사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소설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여기서 소설책이라 함은 ‘거짓말을 정말처럼 엮은 책’이란 뜻일 뿐이다.

  특히 삼국시대나 고려의 역사가 모두 그러한 맥락으로 왜곡되어져서 누구든지 이를 미리 짐작하고 읽지 않는 것이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김유신의 이야기다.

  김유신 장군이 소년시절에 있을 법한 이야기 한 가지가 있다.

  김유신이 타고 다니던 말(馬)이 말(言)을 하였다.

  가야를 버리고 신라로 올 무렵 김유신의 조부께서 친히 타고 왔던 그 말의 손자였다.

  “…도련님이 그렇게 아끼던 천관아가씨와 인연을 딱 짤라 버린 일이다. 물론 어머님 되시는 만명부인의 훈계하심도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사랑하던 어여쁜 아씨 천관(天官)낭자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도련님이 드디어 8대 화랑으로 뽑히셨다. 조부 무력공이 내린 가야검(伽倻劍) 대신 신라의 세칼을 차고서 초라한 내 꼬락서니 대신 당나라에서 들여온 늠름한 호마(胡馬)를 타신다면 더욱 모습이 훌륭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내가 도련님 곁을 떠난다 해도 조금도 슬프지 않다. …최근 왕족인 춘추(春秋) 도련님과 도련님의 누이 문희아씨와의 공놀이 사단을 보더라도 모두 우리 유신(庾信) 도련님의 출세를 위한 발판이 된 것이라 여기니 비록 가슴은 아프지만 참아야 한다. 주인을 위해서… 차라리 도련님이 새로 다듬고 장만한 신라검(新羅劍)에 내 피를 첫 번째로 묻혀 드리고 싶다…….”

  이 글은 작가 황순원이 김유신 공의 애마(愛馬)를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의인화하여 쓴 작품의 일부인데 어쩌면 당시의 김유신 공의 마음을 뼈속 깊이 들여다보는 듯한 글이다.

  옛 기록을 더듬어 보면 경주에 천관사(天官寺)가 있었다. 김유신 공이 어릴 적에 사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엄한 훈계를 받고 출입을 끊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늘 타던 말 위에 얹혀 집으로 돌아가는데 말이 자주 찾던 천관아씨네 집 앞에 와 머물거늘 술이 깬 김유신 공은 즉시 말의 목을 베어버리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에 실망한 천관아가씨는 슬피 노래하면서 그 자리에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을 천관사(天官寺)라 했다고 한다.

  이 작은 사건을 한낱 남녀간 작은 로맨스로 엮기에는 너무도 큰 사건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이것을 확대할 형편도 아닌 것 같아 암시적인 표현으로 슬쩍 숨겨 두었는지도 모른다.

  옛날의 글들은 가급적이면 줄이고 줄여야 명문이라고 여기다 보니 이 정도의 암시적 단편으로 끝을 마무리한 것 같다. 마치 빙산의 작은 한 부분만 보여 준다고 해서 빙산의 크기를 그 보이는 정도로만 볼 수 없듯이 당시 소년 김유신 공의 심금은 이 정도 이상으로 착잡하였을 것을 짐작하고도 남는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나의 작은 자로 그 역사의 한 모퉁이를 재어 보고자 한다.

  왜 부친 서현공은 그에게 유신(庾-노적가리 信-믿을 신)이라 이름지어 주었을까?

  단순히 넉넉한 경제생활을 꿈꾸며 안일하게 여생을 보내도록 하기 위한 자식 사랑의 작은 기대감치고는 이름을 지은 유신공의 아버지 심정을 짐작하고도 남을 만한 구석이 엿보인다. 영원히 머무는 창고도 아닌 ‘임시로나마 곡식을 쌓아 둘 노적가리를 믿는다’는 표현은 훗날 삼국통일을 이룩하라는 모험 가득한 소년의 이름은 아니다. 비록 이국의 서글픈 포로 비슷한 볼모살이를 하지만 다소 경제적 안정도 기대하며 타국에서 은자(隱者)답게 살기를 바랬던 자그마한 기대가 숨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망국의 설움을 안고 사는 가야의 귀화인이자 경주에서는 이방인으로, 먼 남쪽에 두고 온 산하를 그리는 처지에 바랄 것이라고는 마음과 몸 편히 사는 것 이상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과욕이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을 ‘임시로 지은 창고’로 지어 비록 가슴속에는 울분이 솟는 망국의 아픔이 있지만 적국에 얹혀서 사는 형편에 노골적인 큰 배포를 나타내어 보일 형편도 아니었던 것이다. 마음을 죽이고 다독거리고 살다보면 차츰 텃세도 덜 받게 되고 의심도 받지 않을 것이며 이웃의 인정을 받아 언젠가는 아픔을 잊게 될 것을 기대하였을 심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라면 하나 같은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이 모두가 가야에서 신라로 귀화한 사람들의 고뇌의 한 조각이었을 것이며 불평을 들어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아픔의 치료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미 1300여년 전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날고 뛰는 솜씨를 갖춘들 어려운 일인데 나 같은 글장난이나 하는 자가 무얼 알겠는가. 사람마다 과거 일을 짚어보는 생각이 너무 박제처럼 편협하고 틀에 박힌 것처럼 옹졸한 것 같아서 그나마 몇 안 되는 자료를 뒤적거려 삼국통일의 가장 큰 공신이라 할 수 있는 김유신의 소년시절의 자그마한 가슴속을 뒤적거려 보고 싶었다.

  역사를 읽는 시각은 움직이는 현실을 직감하는 방법이 동원되지 못하면 늘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여서 현실과 미래를 상고할 만한 살아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없게 된다. 한낱 조상의 뼈다귀나 훑어보는 일이 고작인 우리의 역사관은 항상 반복이 교차하는 가운데 비슷한 비극도 반복하여 당하고 사는 것을 보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박제가 마치 살아서 힘차게 허공을 박차고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가히 역사를 읽는 맛이 깨소금처럼 맛깔스런 향내가 나게 될 것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공은 비록 유능한 장군이었지만 가야인이라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변방에 배치를 받아 서울인 경주를 떠나 살아야 했다. 김유신이 소백산 북쪽 진천땅(당시 고구려와의 국경선)에서 태어난 것을 보더라도 신라 여인인 어머니 만명부인의 고민과 서글픈 객지 생활에 찌든 모습이 떠올려진다.

  이미 신라인이 되었지만 본토박이 신라인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릴 때부터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영특하기 짝이 없었던 소년 김유신은 이미 이러한 정신적인 고뇌를 극복하기 위한 갈등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네 어귀 골목에서 또래들에게 둘러싸여 이방인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당한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배짱껏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려고 해도 만명부인의 주도면밀한 감시 감독에 이끌려 신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을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외지 변방에서 병영살이만 하고 있는 아버지보다는 집요한 신라 여인인 어머니로부터 철저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해야 했던 소년 김유신에게는 인생 설계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가야인이면 가야인으로서의 긍지가 있다.

  구지봉 아래에 아홉 신선이 모여 나라를 세워 일찍이 남해를 손아귀에 잡고 뒤흔들던 대가야국! 벌레처럼 못난 섬나라 왜놈들을 종 부리듯 호령하며 철갑옷을 입고 우람찬 말을 타고 아홉 마리의 용이 춤을 추는 듯한 구룡일장기(九龍日章旗=왜놈들 해군이 이 깃발을 도용해 쓰고 있음)를 펄럭이며 가야산을 넘어 신라 경주에도 여러 차례 넘나들었던 가야의 무인들. 그들의 핵심 지도자인 구해왕과 그 일족이 신라에 귀화해서 순치(馴致)되어 길들여지고 있는 형편에 이르고 보니 비록 넘치는 패기를 억누를 길 없는 대가야인의 어린 지도자 김유신이지만 거의 손발이 묶인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만명부인이 보기에도 이 폭탄처럼 위험천만한 소년의 마음을 짐작하고 집요한 가정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도 십분 이해가 가고 남는 것이다.

  당시의 천관아가씨는 가야인의 후손이거나 가야를 부흥시켜 보려는 운동권이었을 가능성도 있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을 상징하는 단체의 이름일 가능성도 있다.

  김유신이 타고 다니던 말은 가야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록 귀화는 했지만 언젠가 기회가 오면 다시 가야를 부흥시켜야 하는 반신라적인 독립정신이 깃든 청년 김유신의 마음 한 구석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김유신이 ‘칼을 들어 사랑하는 말의 머리를 잘랐다’고 한 장면은 곧, 구질구질한 가야의 재건이란 독립운동을 팽개치고 새 나라 신라의 기치아래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면서 보다 더 원대한 꿈을 실현해 보고자 하는 소년의 정신 세계와 같은 것이리라. 즉 그러한 마음 자세가 엿보이는 것은 작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삼국통일, 민족통일의 위업을 관철시킨 한 영웅의 작은 마음의 갈등이 아니었나를 짐작해 보고 싶었던 것이 이 글을 더듬는 나의 작은 관찰이다.

  역사책 속에는 그대로 읽을 수 없는 뒷사정이 많이 깔려 있지만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무척 많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가야정신은 김유신이 말의 머리를 잘라 버림으로서 영원히 버려졌고 구룡일장기는 바다 건너에서 지금도 펄럭인다.

  그리고 천관사는 가야재건 운동권의 아지트였을 것이라는 은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정으로 남겨두고 싶다.


금테 똥테


  껌이 우리나라 사람의 입속에서 놀아나기 시작한 것은 양키들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때부터이다. 양키들이 왜놈의 군대를 몰아낸다는 구실로 상륙하여 이 땅을 두 동강 내면서 달콤한 알사탕을 물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어이없게도 개선장군처럼 이 땅에 왔다.

  이때 그 알사탕을 얻어먹어 본 아이들은 모두 양키 행세를 흉내내게 되었다. 아이들의 혀끝이 알사탕 맛에 어느덧 식민지화되면서 다투어 꼬부랑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꼬부랑 글씨 쓰인 물건만 보면 사족을 쓰지 못하고 무조건 애용하기에 이르고 말았다.

  됨됨이는 조선 사람이지만 이미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또다른 작은 이완용의 몰골들을 하고 있었다.


  “껌을 순수한 우리말로 적당하게 표현할만한 단어가 없을까”

  “입속을 걸레질하는 것이니 ☞입걸레라 부르면 되지.”

  “☞입걸레란 말은 너무 저속하고 추저분하게 느껴지잖아.”

  “그렇게 이름이라도 지저분하게 부쳐 두어야 입걸레질을 덜 할게 아니겠어?”

  입걸레질도 너무 심하게 하면 입도 상하고 이까지 썩게 될 뿐 아니라 말솜씨마저 뒤죽박죽 횡성수설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개 회의할 때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거나 전화하는 교양이 서투른 까닭 역시 입걸레질을 하는 버릇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해도 변명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이제 문민의 시대가 와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이 점점 더 높아 가는 경향이어서 그런지 여하간 입걸레질을 덜 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껌에다가 금테까지 두르고, 텔레비전에 비싼 광고를 하는 걸 보면 다소 짐작이 가고, 그 대용품으로 알사탕 따위를 나누어주는 것을 보면 인식은 조금씩 바뀌는가 보다.

  광고를 하려면 껌으로 인해서 더러워진 길바닥, 복도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사람을 고용하여 그 유니폼에다가 광고를 예쁘게 써 붙이는 방법을 사용하고, 버스, 택시, 전철, 기차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예쁜 통을 만들어 달아놓고 걸레질 끝난 입걸레를 모아 버리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고용효과도 더 늘게 되는 것은 물론 그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되어 과연 ‘꿩 먹고 알 먹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올리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이 나라에서 장사하려고 광고하는 기업 중에 입걸레 장수에게만 해당하는 충고로 그치겠는가?

  신경질적으로 쏟아 붓는 많은 광고물이 기업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마치 ‘국 쏟고 발등 데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그 뿐이 아니다.

  껌이라는 물건이 이름 그대로 끈적거리는 것이어서 이를 함부로 버리게 되면 곳곳에 지저분한 몰골로 끈적거리게 한다. 그러나 환경을 생각하고 걱정한다는 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입속에도 여전히 이 입걸레가 끈적거리는 모양인지 이에 대한 대책을 말하는 자는 아직 없다.

  껌 한 조각의 피해가 얼마나 큰 해독을 끼치고 있는지 모르고 있지 않겠지만 환경치료를 위한 대책을 말하는 이가 없다. 말하지 못하는 까닭은 한때 자동차를 마구잡이로 팔아 넘겨도 끔쩍 못했던 정권이 있었던 것처럼 껌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이미 정부가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금테를 두를만한 세력으로 커져 정부의 힘을 능가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 말하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이미 껌의 겉포장에다 금테를 둘렀다 해도 만들어내는 자의 마음이 국민을 업신여기면 오히려 똥테를 두름만도 못할 것이다.

  지금도 덧니에 주근깨 더덕더덕 솟은 외국 여자를 모델로 광고를 하는 일은 예사고, 치과의사가 껌 광고 모델로 나올 정도로 광고장이들의 양식은 땅에 떨어진지 오래되었다.

  지남철처럼 확 끌어 잡아당기는 그런 힘을 풍기는 정성어린 제품을 만드는 기업인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양식 있는 광고가 지극히 아쉬울 때다.



사향노루의 배꼽



  한때 일본인들을 일컬어 경제동물이라고 손가락질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경제동물이란 표현의 대상을 우리 한국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니 아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에 관광 가서 일본인들이 하던 짓을 그대로 흉내내면서 그림이란 그림은 계타죽로(鷄打竹勞-닥치는 대로란 이두문-吏頭文)로 사들고 거리를 누비고, 중국 가서는 돈 자랑을 하다가 우리 동포로부터 등골이 오싹하도록 낯뜨거운 충고를 수없이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경제동물의 모양은 평범한 사람의 모양과는 전혀 달라 특유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 감별법은 병아리 암, 수를 가리는 것만큼 알쏭달쏭 하지만 대충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판별된다.

  경제동물은 변신술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모양을 할 때도 있지만 아무리 변장을 한다 해도 속일 수 없는 것은 그 정신 자세에 있다. 경제동물의 자세를 눈여겨 살펴보면 확실히 구분이 가능하다.

  동물이 무슨 정신이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보는 이에 따라 마음씀씀이는 마치 물고기와 비슷하다.

  손으로 만져보면 뱀처럼 비늘로 감겨 있어 미끈미끈하고, 꼬리를 쳐서 방향을 잡아 헤엄치기 때문에 꼬리가 잘 발달되어 있다. 앞을 멀리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눈은 근시안이고,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머리는 있는 둥 마는 둥 작다. 먹는 것을 탐해 입이 크며, 손발은 지느러미나 문어발처럼 여러 갈래 쳐져 있다. 햇빛을 필요로 하지 않아 경제라는 어두운 물밑(수준이하-水準以下)에서 살기 때문에 아가미로 숨을 쉬고 특히 허파(가슴=良心)가 없는 것이 일반 사람과 크게 다르다.

  그래서 경제동물을 두고 마음이 비었다느니, 정신이 나갔다거니 하는 경우가 있다. 경제동물은 물속에서는 날쌔게 헤엄치면서 꼬리를 좌우로 돌려서 자유자재로 다닌다.

  그러나 뭍에서 햇살을 쪼이며 상긋한 공기를 들여 마시며 사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선호하는 자연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약한 놈은 언제나 강자의 먹이가 되고 심지어 제 어미가 제 새끼도 가리지 않고 꿀꺽 삼킨다.

  자본주의하의 경제동물은 오로지 이익을 앞세우고, 친구를 배신하고, 경쟁을 핑계로 형제를 패망시키는데, 그들은 이를 경제정의라는 명분으로 호도하려 애쓴다.

  경제동물이 사는 수준이하의 생활환경에서는 청소년문제, 환경문제, 노인문제, 노동문제, 여성문제 등은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증권문제, 통화문제, 물가문제, 수출문제 그리고 밥통문제 등 이익이 앞선 것이라면 관심을 쏟는다.

  경제동물은 국적이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번식은 종자에 의한 번식이 아니고 모방에 의하여 번식한다. 민족이 다르고 조상이 달라도 닮아 가는 것으로 인해 그 숫자가 늘어난다. 경제동물은 이익이 있는 곳, 수준이하의 경제라는 물속에서 번식하는 속도가 파리 떼나 바이러스처럼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효자는 부모를 탓하지 않으나 불효자는 자기의 잘못을 부모에게 돌린다. 경제동물은 자기가 잘못한 일은 하늘에 돌리고 자기가 잘한 일은 자기에게 돌린다. 경제동물과 일반 사람과의 차이점 중 하나이다. 똥이 있는 곳에 파리가 들끓듯 이익이 있는 곳이면 경제동물들이 파리 떼처럼 바글거린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가 있는 곳에서는 한 마리도 없다.

  폭우가 쏟아지고 홍수가 나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중징계를 내리기 앞서 미리 정신을 차리라는 경고라고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이를 원망만 하는 부류가 있다. 어린아이가 부모로부터 잘못을 뉘우치라고 매를 맞으면서 오히려 그 부모를 원망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함부로 하늘을 원망하고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도 책임을 하늘에게 미루거나 신의 잘못으로 돌려 원망한다. 이런 태도는 인간으로서 삼가야 할 일인데도 경제동물들은 어떻게든 책임을 모면하려 하고 불가항력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신에게 잘못을 돌려 눈가림만 하려든다.

  경제동물은 종교를 믿는 경우가 있는데 반드시 이익이 있어야만 한다. 특히 신에게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신에게도 돈을 바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 대가를 바란다. 이익이 적으면 또한 신을 원망한다.

  경제동물은 문화환경을 싫어한다. 그들이 문화를 싫어하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우선 돈이 벌리지 않기 때문이며 문화는 돈을 낭비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핑계에 불과하고 문화를 혐오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문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돈이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자가 경제동물이다. 경제만 손에 잡으면 도깨비 방망이를 잡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정치마저 좌우할 수 있다고 여겨 문화도 얕잡아 보고 손아귀에 넣어 보려고 하는 경제동물이 있지만 차츰 문화만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눈뜨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문화를 더욱 두렵게 여기고 경외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얼음덩이를 햇볕에 쏘이면 슬그머니 녹는 것과 같이 경제는 거대한 문화의 따끈한 손길에 의하여 외투를 벗어 던지게 되고 길들여지게 된다는 것을 영악한 경제동물은 미리 알고 있어서 양철지붕 위에서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못한다.

  경제는 문화를 정복할 수 없어도 문화는 경제를 너끈히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다. 삐뚤어진 마음새를 고쳐줄 수 있다. 문화를 사람이 사는 환경에 비유하면 경제는 경제동물만이 선호하는 환경이다.

  문화동물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지만 경제동물이라는 말은 흔하듯이 문화와 경제의 차원은 격차가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로서 문화를 다스리려 하면 구호(救護)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문화로서 경제를 다스리면 복지(福祉)의 개념으로 승화(昇華)된다.

  ‘이제 우리나라의 경제도 선진국 수준에 올라섰다.’

  ‘GNP가 10,000$을 넘어섰다. 우리의 경제정책은 성공했다.’

  경제개발 35여년에 이 정도의 경제수준을 두고 자화자찬하는 것은 오직 경제동물들의 수준에서만 할 소리이지 국민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서른다섯 해 동안 경제개발하고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면 몰라도 아직도 미련이 남아서 경제개발만을 계속해 보고자 하는 속셈도 들여다보인다.

  서른다섯 해 동안 경제개발계획에 밀려 근로복지를 가꿔왔던 선배님들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겹지만 아직도 셋방살이하는 처지에 있다. 그리고 노사분규 때문에 경제발전이 안 된다고 나무람을 당한다.

  예산을 절감하라는 권고를 받고, 몇 푼 되지 않는 예산을 둘러싸고 국정감사 자료를 산더미처럼 준비하느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밤을 지새운다. 노동부 지방사무소는 임대료에 맞추어 사무실을 구하다보니 어떤 경우는 남한산성 아래 호젓한 마을에 자리하기도 한다. 멀리라도 찾아주는 민원인들의 땀내를 맡으면 왠지 미안한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노동부는 셋방살이 사무실 신세를 벗어날꼬?”

  그래도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미안스러울 뿐 불편해도 참고 지낼 만하다. 그 동안 이골이 나 있으니까 이 정도 불편은 견딜 만하다. 다같은 국민이건만 우리 노동부를 찾아오는 국민만이 불편을 겪을 이유가 따로 또 있는지 흔히 쓰는 어려운 말로 모색(模索)해 보고자 한다.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로 경제동물에게도 취약점은 있다. 그러나 그것까지 들먹이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사향노루 이야기로 끝을 맺고자 한다.

  사향노루는 배꼽 밑에 사향이 박혀 있어 사냥꾼들이 특히 노리는 부분이다. 비록 짐승이긴 하지만 사향노루는 자신의 배꼽 아래를 북치듯 치면서,

  “이놈의 원수 때문에 더 살지도 못하고 내가 죽는구나…….”

화명(華明)이여! 명예욕이여!


  너는 네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장육부에 가득 차 있는 줄 내가 다 안다. 우선 네가 즐겨 쓰고 있는 세속의 이름을 버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너는 뭐 잘난 망아지 마냥 희희낙락 즐기면서 알랑방귀를 풍기고 다니고 있지 않느냐? 솔직히 말해 보거라! 너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나는 너의 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눈이 달려 있어서 이 정도는 누워서 팥떡 먹기보다 쉽다.

  어느 이름 없는 선생 한 분이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그분은 이름조차도 이 세상에 남기지 않고 이제 그 육신은 세상에 없지만 그 말씀은 아직도 내 귀에 남아 많은 사람의 마음을 깨우쳐 주신다.

  “나는 평생 성공하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부질없는 짓거리로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할 일 없이 그 돈이나 지키는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벌어들인 돈이라고 해서 어디 내 마음대로 써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비록 열심히 살아서 대통령이 되었거나 훌륭한 장군이 되었다 하더라도 가슴에 훈장을 달거나 높은 자리에 높이 올라앉아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자리를 물려주어야 하는 미련을 남기게 되는 과정을 밟게 되니 처음 자리에 오를 때는 좋았겠으나 그 자리를 버릴 때는 아쉬움으로 가슴을 매워야 하기 때문이지요!

  인간으로 한 번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불자라면 일단 짐작할 터이지만 차라리 태어나지 않음만도 못하다는 결론이 자명하지 않습니까? 오직 인간의 탈을 쓰고 태어나서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 아닌 남들을 위해 무엇이든지 한 가닥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만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편이요, 인생의 사는 보람을 맛보는 궁극적 값어치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군이 되거나 대통령이 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이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보다는 그가 남을 위하여 일하는 방편으로 그 자리가 필요하였다면 다소 이해는 할 수 있으나 세상 사람 생각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습니다. 그의 명예욕을 먼저 꾸짖기 때문에 기껏 잘해 주고도 욕을 얻어먹게 되는 소위 ‘뭐 주고 뺨맞는 꼴’이 되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사는 보람이 없는 셈이겠지요.”

  이분은 반드시 인간으로 다시 환생해서 훌륭한 위치에서 더 많은 사람을 돕는 자리를 맡아 훌륭한 일을 많이 하였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대통령, 장군, 돈 부자가 될 자격조차도 없는 사람이 갖은 못난 짓거리를 다하면서 세상의 비웃음을 사지 않으면 환장을 하는 종자도 많이 있지만 만일 그들이 다시 환생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몰골을 하고 있을 것이 뻔할 것 같다.

  너의 모습을 네가 상상해 보거라?

  얼마나 재미난 모습일는지, 그러한 생각을 해보는 재미도 또한 클 것이다. 마치 시집가기 전에 신랑을 맞이할 신부처럼 가슴이 설레는 순간일 터이지? 어린아이가 저금통에 동전을 한잎 두잎 던져 넣으면서 이 저금통이 가득 차면 누구에게 어떤 모양의 선물을 사다줄까 하고 마음속에 그려보는 심정과 흡사할 거야?

  석가모니께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통해 이런 말씀을 내리셨다.

  ‘욕정에 따라 영화(榮華)와 명예(名譽)를 구하는 것은 마치 향을 사다가 그 향냄새를 맡아 심취하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세속의 명예를 탐할 뿐 참다운 길을 지키지 못한다. 화명(華名)은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데 도움을 줄지언정 이를 후회하는 것은 바람처럼 지나가는 시간에 달렸다.’

  비유경(譬喩經)에도 어두운 마음을 비춰줄 합당한 말씀이 있다.

  옛날 아내를 셋이나 거느린 부자가 있어 마침 때는 목숨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한다. 첫번 부인에게 저승길 혼자 갈 수 없으니 함께 가자고 물으니 단호히 거절하더란다. 둘째 부인도 물론 거절하였지! 마지막 하녀처럼 부려먹던 젊은 첩에게 말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 가겠다고 했다. 그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도 스스럼없이 따라갈 터이니 어서 죽기만 하라는 것이다.

  즉 제일부인은 육체를 비유한 것이어서 결코 육신을 갖고 저 세상을 방문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과 명예인데 이것 역시 이 세상에 남아서 임자를 찾아 다시 시집가야 할 처지이지 죽은 사람을 따라나서는 어리석은 짓을 할 까닭이 없고, 세 번째 첩은 이 세상에 와서 밤과 낮을 따지지 않고 뭉게뭉게 짓고 있는 선업과 악업으로서 이것이야말로 저 세상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나서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거절한 소련의 유명한 문학가가 있었다. 그의 작품 역시 유명하지만 그는 그 작품보다 더욱 훌륭한 말 한마디로 유명하다.

  ‘창조의 목적은 헌신에 있다. 더러운 입들 속에서 튀어나오는 내 이름이 더욱 더럽다.’

  참으로 깔끔한 말이 아니냐? 그야말로 곡우절 되기 전에 따 놓은 우전차(雨前茶) 맛을 연상시키는구나?

  이제는 돈으로 명예를 산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벼슬도 돈으로 사고, 가수나 배우가 이름을 날리려면 돈을 주어야 한다더라? 경우에 따라서는 뭐도 바친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소문으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 박사도 돈으로 사들인다고 하고, 하늘의 별도 돈만 주면 따온다더라.

  돈을 주면 죄도 줄고 감옥살이도 면하게 되는 세상이니 이를 두고 자본주의 세상이라고 예찬을 마지않는 수전노(守錢奴)가 들끓는 세상이니 굿만 보고 떡이나 먹자꾸나?

머리 둘 달린 새


  너도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지? 너의 대머리는 소갈머리가 없는 대머리냐? 아니면 주변머리가 없는 대머리냐? 가운데가 푹 패인 모양이면 소갈머리 없다 한다.

  옛날 어떤 소갈머리 없는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다가 자기 얼굴과 머리가 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서 거울을 던져 버렸더니 거울이 깨어지고 말았다. 그는 거울을 뒤집어 보았기 때문에 얼굴과 머리가 보일 턱이 없었던 것이다.

  하기사 소갈머리 없는 것은 머리모양만이 아니고 줏대가 없고 앞뒤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을 말할 때도 그런 다더라.

  불행을 한탄하며 살고 있는 독신 청년이 있었는데 하루는 손님이 찾아 왔더란다.

  문을 열고 보니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여성이 한 사람 서 있었다.

  “누구신지요?”

  “행복이라 합니다.”

  허! 이게 웬 떡이냐? 아! 행복이란 게 바로 이런 거로구나 하고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하고 공손하게 안내를 하였더란다.

  그랬더니!

  “함께 온 사람이 있는데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하면서 등뒤에 있는 또 한 사람의 여인과 같이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는 누구입니까?”

  독신청년이 물었다.

  “불행이라는 저의 동생입니다.”

  행복이라는 여인이 말했다. 슬쩍 보니 불행이라는 여인은 무척 밉게 생겼더란다. 예상했던 것과 상황이 달라지게 되자 청년은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잠깐! 그분만 되돌아가시라고 하지요. 돌아갈 차비까지 드리겠습니다.”

  “글쎄요, 우린 떨어져 살 수 없는 처지랍니다. 그만 가겠습니다.”

  행복이라는 여인과 불행이라는 여인은 그냥 뒤돌아 가고 말았단다.

  청년은 한탄을 하면서 제 가슴팍만 뜯으며 세월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 실망스런 이야기는 많은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져 내려온 것인데, 그 출처는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具舍論)이다.

  행복과 불행!

  이건 거울의 앞면과 뒷면이라 할 수도 있으며 한 어버이로부터 태어난 형제자매와 같은 이신동체(異身同體)인 것이다.

  좀더 가까운 예를 들어볼까 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머리 둘 달린 새가 있었다. 공명조(共鳴鳥)라고 해서 옛날 서역에서는 그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면 매우 아름다운 곡조가 되어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매우 값비싼 보물이라고 애지중지 하였다.

  어느 날 한쪽 입은 맛좋은 석류를 쪼아먹고 있었는데 다른 쪽 입이 이를 질투해서 그만 독버섯을 쪼아먹고 말았다. 글쎄? 어찌 되었겠느냐? 물어보나 마나겠지?

  행복이라는 것과 불행이라는 것이 이렇게 요상하게 붙어 다니기 때문에 하나는 버리고 하나는 마다하면 둘 다 오지 않는다가 아니고 둘 다 없기 때문에 결국은 불행만 남아 있게 된다는 그러한 논리가 성립되고 마는구나? 비유이비무(非有而非無) 아니겠냐?

  동양에서는 흔히 새옹지마득실(塞翁之馬得失)이라는 일화를 들어 행복과 불행, 유익과 무익, 즐겁다 슬프다 등을 비교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국경 가까운 변방에 한 노인이 살았다.

  하루는 임자 없는 말 한 마리가 국경을 넘어 집으로 들어서기에 좋아서 얼른 마구간을 지어주고 이웃사람을 초청해서 떡을 해 먹었다.

  얼마 후 아들놈이 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서 병신이 되었다. 노인은 슬퍼 울었다. 이웃사람들이 와서 위로해 주길래 술을 한 잔 하고 그냥그냥 살아갔다.

  그후 전쟁이 일어나서 이웃 청년들은 모두 전쟁에 끌려가 죽고 말았다. 하지만 병신 아들은 남아 효자노릇을 해 마냥 즐겁기 한량없었다. 그래서 그는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크게 잔치를 열었다. 이웃사람들은 모두 그를 칭송하면서 부러워하였다.

  그 후부터 그는 행복하게 살았다.

  인생은 짧기도 하지만 길기도 하다. 지금은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어느 날 갑자기 땅값이 올라 부자가 되어 집, 돈, 옷, 그리고 좋은 승용차도 모두 갖게 되어 행복의 노래가 마냥 굴러 나온다.

  어느 날 증권이 폭락하는 바람에 몽땅 날려버린 벼락부자에 벼락가난뱅이가 명멸했다. 행복해지려고 아등바등 모아서 자식놈을 유학까지 보냈더니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손끝에 자신의 목숨까지 맡기게 된 유명한 부자 이야기도 신문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행복과 불행, 이것은 종이 한 장을 뒤집는 것과 같고 껍질에 쌓인 수박과 같다. 그래서 별로 문제될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는 스스로의 노력과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고 하니 크게 마음 쏟을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불행해질 때 비로소 행복했을 때를 생각한다’ 또는 ‘행복해지면 불행했던 때를 잊는다.’



욕만 먹는 놈!


  둘이사네야! 넌 참 바보중의 바보로다. 번듯하게 일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글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친구들로부터 욕만 얻어먹으니 참으로 괴롭고 괴로운 일이로다.

  그러나 비록 바보라 꾸짖더라도 너무 신경을 쓰지는 말아라. 만약 바보라면 그 원인을 찾아 빨리 고치는 게 좋지만 구태여 그렇게까지 서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서둘거나 변명을 하다가는 그때는 정녕 바보가 되어도 할 말이 없단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석가모니께서 세상에 계실 때 ‘주라 판다가’라는 바보 제자 한 분이 계셨더란다.

  석가모니께서는 그가 너무 가엾어서 친히 불러 한 말씀 가르치셨다.

  “입을 무겁게 하고 뜻을 배우며 몸으로는 비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으리.”

  이렇게 가르치셨건만 우매한 제자 판다가는 그 구절의 의미는 물론 외우기조차 못해서 어물거리기만 하였다.

  며칠 뒤 석가모니께서 불러 물으셨는데 비록 어리석기는 하였지만 겨우겨우 그 구절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암송하는 것을 보고 석가모니께서는 다시 한 말씀 더하여 주셨다.

  “네가 나이는 먹어도 그 구절을 외우는 걸 보니 대단하다. 잘 하였다 판다가여! 그 구절의 뜻을 너에게 알려주겠다.”

  다음은 그 구절의 뜻을 직접 석가모니께서 판다가에게 내리신 내용이다.

  “몸에는 세 가지 악이 붙는단다. 살생! 이는 사람이나 생물을 죽인다는 뜻이니라. 둘째 도적질이다. 이는 제것이 아닌 것을 허락 없이 자기 것으로 쓰는 것을 말한다. 요즘 남의 글을 제것인양 허락 없이 옮겨 놓는 것도 도적질일 수 있다. 셋째 음탕한 짓거리를 말한다.

  입에는 네 가지 악(惡)이 붙기 쉽다. 거짓말하는 것,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 악한 말하는 것, 꾸며서 하는 말이다.

  뜻에도 세 가지 악이 붙기 쉽다. 탐내는 것, 성내는 것, 미련한 것 등이다.

  이것으로부터 떠나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를 것이니라. 이를 십업(十業)이라 한다.”

  너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이 판다가는 말씀대로 수행을 꾸준히 해서 마침내 성자(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 한다.

  둘이사네! 너 정녕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마냥 졸기만 하다니!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판다가가 오백여 명의 여성들 앞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바보로 소문난 판다가가 설교를 한다고 흥미로워서 구경오는 이도 있었고, 짓궂게 골탕이나 먹여서 혼줄내주고 싶어하는 장난치기 좋아하는 자들도 있었다.

  판다가가 설교를 시작하였다. 정말 바보처럼 뚜벅뚜벅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난 머리가 나빠서 겨우 한 구절 부처님 가르침만 알뿐이라서 그 말씀을 실행하기 위해 나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고 첫인사를 시작했다. 마침 야유꾼이 말을 이어 비아냥거리려고 입을 열려고 하는데 그만 말문이 막혀서 그때부터 아무말을 못했다.

  또 한번은 석가모니께서 판다가를 데리고 왕이 있는 궁정에 가기로 했다. 막 대궐문을 들어서려고 하는데 문지기가 가로막으며 말했다.

  “이 바보 판다가는 못 들어갑니다. 궁전이 더러워지는 것은 우리 책임이니까요.”

  할 수 없이 석가모니께서는 혼자만 들어가 대접을 받게 되었다. 왕이 내놓은 공양을 받기 위하여 바루(식기)를 찾으니 갑자기 팔꿈치가 튀어나오면서 석가모니가 늘 쓰시던 바루를 쑥하고 내어 밀더란다. 왕은 놀래 석가모니께 물었다.

  이렇게 “?”라고.

  “실은 제자 판다가의 팔입니다. 함께 여기를 오는데 문지기가 그를 못 들어오게 해서 나만 들어 온 것이지요. 그는 지금 내 바루를 갖고 문밖에 서 있지만 맡은 일은 성실히 해내고 있음은 누구도 그를 따르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소문에 그는 어리석어서 한 구절만 외울 뿐이라는데 어찌 그가 깨달음을 얻지요?”

  왕의 이러한 우문(愚問)에 석가모니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둘이사네야, 듣거라!

  “어리석은 왕이여, 반드시 지식이 많아야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실행을 한 가지도 못하는 것이 더 우둔한 것입니다. 그는 한 구절밖에 외우지 못하나 꾸준히 실천하며 그 의미를 체득했고, 그 입도 마음도 청정해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둘이사네야!

  더 자세히 알려거든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에 잘 설명이 나와 있으니 기회 닿는 대로 읽어보거라!

  자동차를 타고 가다보면 별별 일을 다 겪지만 한 가지 이상한 일은 목적지에 거의 도달하였다 싶으면 더욱 속력을 내어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는 평소에는 착하게 살고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일단 일에 부닥치면 말과 행동이 다르고 배운 것이 있어도 배운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바보스러운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승점을 앞에 둔 경쟁자들처럼 마치 죽기내기 경쟁을 하는 것 같이 보일 뿐이다.

  기왕 타고난 인생인데 비록 욕을 먹을지언정 스스로 사람답게 사노라면 영원히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에서 흔히 윤회전생(輪廻轉生)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영혼이 몸을 바꾸어가며 살아가는 모양새라고 생각된다. 평소에 열심히 살면 육신을 바꿀 때 그러한 모양으로 선택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라 여겼으면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어디 열심히 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훗날이 없으며 우주의 원심력에 의해 멀고먼 명왕(冥王)의 품안에 안기게 될 뿐이라 생각된다. 흔히 이를 업보라고도 하지만 그때는 이미 끝난 아득한 이야기일 따름이다.



우울하게 사느니 차라리 사표를 쓰라!


  날씨가 더우면 ‘덥따! 더버!’ 방정떨고, 추우면 ‘춥따! 추버!’ 방정떠는 사람이 있다. 물론 눈, 비만 와도 투덜투덜거린다. 날씨가 개여도 때로는 투덜거린다.

  둘이사네! 네놈도 그런 것 같은데 오늘은 ‘태연자약’을 먹었는지 철든 아이 같구나?

  물어보나마나 간사스런 살덩이를 가졌으니 더울 때는 시원했으면 하고 추울 때는 따뜻해지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을 불평으로 여겨서 늘 우울하게 살아가는 너 같은 놈들에게 오늘 아침 한 마디 해야겠다.

  이 글은 대장엄법문경(大莊嚴法門經)에 있다.

  ‘보살(菩薩)은 여러 잡것을 깨닫지 않고 다만 자기를 깨닫는다. 왜냐하면 자심(自心)을 깨닫는 자는 곧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잠이 오는가보다? 각설하고,

  춘천이라면 강원도 도청 소재지가 있는 물의 도시다. 좋은 말로는 ‘호반(湖畔)의 도시’라고 불러주고 여름이면 뱃놀이로, 겨울이면 스케이트 타러 오는 사람들로 붐비는 아주 아름다운 도시다.

  그런데 안개가 피어올라서 지척을 분간 못해 불편하다고? 안개 때문에 살 수 없다고 야단법석에다 엄살을 떤다고? 그래도 춘천토박이들 말을 들으면 ‘춘천을 떠나서는 살맛이 안난다’더라? 춘천 토박이들은 고향 춘천을 사랑하고 더욱 가꾸어가며 살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나는 춘천 사람이 아니고 춘천보다 더 못하다고 하는 경상북도 북쪽 오지에 처박혀 있는 예천 호명, 송곡동 촌구석이란다. 웬만한 도시면 이미 ‘시(市)’자가 붙어 있건만 아직도 여기는 ‘군(郡)’ 그대로 남아서 사방 팔방이 시로 둘러싸여 있다. 낙후된 도시지만 그래도 비행장이 들어서고, 마시는 물맛이 세계에서 가장 좋고, 오순도순 일가친척과 이들의 인정이 샘솟고 있어서 차마 여기를 버리고 다른데 가서 살고 싶지는 않단다. 장차 나이 들면 이 지긋지긋한 서울을 하직하고 거기 가서 살려고 마음먹는단다.

  “뭐? 서울을 하직한다? 그러고 보니 그럼 지금까지 서울에서 우울하게 살고 있었나보네?”

  참으로 네놈이나 나나 사실은 뒤웅박 신세처럼 한 통속이니 이 요망한 번뇌를 벗어나기가 힘들 터이지? 춘천이면 어떻고, 시골 예천(醴泉)이면 어떠며, 서울은 또 어떻냐? 글쎄다?

  오만 잡종인간들은 서울이 좋아서 몰려드는 판이 아니더냐? 지금도 서울대공원에 가 봐라! 참으로 야단법석이다. 이젠 우리나라 사람 말고 외국인들도 북적북적 거리는데 세상에 오만요상한 것은 모두 여기에다 끌어 모아 놓은 것 같더라.

  어떤 시인이 이런 말로 사람들 마음을 달래려고 했더란다.


  날씨?

  좋고 나쁜 게 어디 있나?

  다 좋은 날 뿐이지!

  바람이 불어도 좋고!

  눈이 와도 좋고!

  비가 오면 또 어때!

  애인과 함께 우산을 받쳐들고 덕수궁길을 돌아간다면!

  이런 것을 가지고 투덜거리면 사람 사는 맛을 모르는 거야!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자격이 없지비!(人間失格)!

  인간사표(人間辭表) 내놓거라!

  사람이 불평을 가지고 살게 되면, 그로 인하여 늘 우울한 기분에 젖어 들고, 식욕이 감퇴하고, 체중은 팽창하고, 담배만 빨게 되고, 술만 뒤집어쓰게 되며, 기억력이 없어지는 치매가 빨리 오게 된다. 또 모든 일을 비관하게 되고, 함께 하는 사람까지 피곤하게 만들고, 과거를 후회하며 장래를 포기하는 증상까지 발작하게 되면 마침내 인생사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산업사회의 특징은 누구나 직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누구나 두 집 살림을 하는 처지에 있다는 것인 만큼 걱정도 한 집 살림 할 때보다 많아서 늘 우울증세에 시달리는 이가 많아진다는 통계가 있다. 이것은 사람 사는 지혜를 터득하지 못하고 아옹다옹 각박하게 살아가려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울’이라는 병은 ‘노이로제’라는 이름으로 이건 약이 없다더라. 신발명 다리미로 마음을 활짝 펴라! 이것이 약이니라.

  옛날 다리미질 한 번 하려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느냐? 자식들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은 어머니는 한 분도 안 계셨느니라. 묵묵히 숯에 불을 당기면서 후우후우! 무거운 다리미를 밀었다 당겼다. 땀을 뻘뻘 흘리시지만 그래도 밝은 웃음을 머금으시며 자식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셨더랬지!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오늘 아침에는 네놈이 다소곳이 있네? 아니 이놈, 너! 가만히 보니 졸고 있네!


돈이 너의 주인행세를 하고


  50여년전에도 아이들에게 저금통을 주어 저금을 시켰다. 그리고 지금도 아이들 책상 위에 저금통을 놓아둔다.

  옛날의 아이들에게 저금통은 저축이라는 ‘도덕’의 항목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등용되었고, 요즘 아이들에게는 ‘경제’를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주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35여년의 긴 세월을 통하여 줄기차게 경제개발을 해 왔다는 것을 매우 장한 일로 평가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반대로 나는 매우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

  ‘경제개발계획’이라는 국가의 정책은 사실상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금기였다. 세계공황을 통하여 자본주의를 재정비하고 소위 수정된 자본주의 이론을 도입하여 경제부흥을 도모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는 당시 유행하던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계획경제’의 이론을 가미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마침내 미국에서는 최초로 ‘뉴딜’이라는 유명한 경제정책이 성공하여 대공황에서 비로소 헤어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 힘이 바탕이 되어 오늘의 미국이라는 경제대국이 만들어지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 이후 이를 본보기로 하여 많은 나라가 흉내를 냈고 이 비상수단을 사용하여 국가경제 재건에 큰 몫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 중에 하나로서 장면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흥부를 두고 경제개발계획을 시도했고, 박정희에 의하여 우리도 마침내 1960년대 초반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그 돛을 달았다. 아직까지 그 계획이라는 이름의 정책이 꿈틀거리면서 거의 3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이 경제개발계획이라는 경제개혁 수단은 그야말로 비상수단이다. 몰핀과 같은 흥분제로서 수술후 환자에게 일시적으로 신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주사하는 마약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약을 무려 평생 동안 맞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어린 것들이 불쌍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러는 동안 국민은 모두 경제동물이 되어 버렸고 모든 사람이 돈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배고픈 세월을 생각하면 고맙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이러한 생각에 머물며 살 수는 없다.

  둘이사네야! 너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돈에 대한 생각을 념(念)하는 모양이던데 그러지 아니하면 잠시도 살아남기 어려운 것임을 절박하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니라.

  자기 자식놈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하여 8학군에 주민등록을 해두어야 했고, 일류 대학에 보내기 위해 좋은 강사를 모셔다 과외를 시켜야 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록 빽을 주선해야 했고, 승진을 하도록 하기 위해 또 무엇을 해야 했다.

  부동산경기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도 많단다. 이것은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가장 경제원칙에 입각한 소득의 원천이며 수단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란다. 요즘 증권회사 앞에 있어보면 경제를 측정하게 된다고 한다. 증권이 올라가면 문전성시가 되고, 증권이 내리막길로 들어서도 문전성시가 되는데 이때 사람들의 얼굴 표정 하나로 경제의 온도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1원을 비웃는 자는 1원 때문에 울게 된다’는 속담이 있느니라. 이건 돈을 아껴 쓰라는 ‘도덕’이었느니라.

  비록 적은 돈이긴 하지만 그것이 소중한 줄도 모르고 큰 돈만 돈일 줄 아는 세상이 되고 보니 우리나라의 돈의 단위가 이제는 ‘만원’이라는 단위로 바뀌게 되었다. ‘십원과 일원’은 이제 골동품 취급을 받게 되는 그런 현상이 되고 말았으니, ‘경제’는 사람의 마음보를 너무 크게 부풀려 놓았다.

  돈은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임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 없이는 하루도 살아 남기가 어렵다.

  참으로 무서운 것이기도 하고 고마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돈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돈을 섬기면서 살 수 없다.

  이를 두고 말 잘하는 사람들은 ‘돈은 생활에 필요조건이나 절대조건은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므로 필요 이상으로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해서 그것을 과시할 필요도 없고 오만해질 필요도 없다.

  돈이 필요 이상으로 많을 때 오히려 그 돈 때문에 불행해지는 모습을 많이 보았지 않느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는 두 대통령의 이야기는 이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짐작도 못했던 우리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며, 그들이 돈을 많이 가졌다고 놀래기만 하는 것은 오히려 열등감만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 올 뿐이다.

  불과 7년 동안에! 불과 5년 동안에! 너는 그 동안 무얼 했느냐?

  옛날 산모가 난산일 때 엽전을 던지는 풍습이 있었는데 아기에게 ‘돈!’ 소리와 동시에 ‘쨍그렁!’ 하고 금속성이 나게 되면 ‘쑥!’ 하고 순산을 한다고들 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이는 너무 흔한 속담이 되어 오늘의 진리처럼 되고 말았지만…….

  ‘히말라야산을 황금덩어리로 만들고 또 그것을 두 배로 불린다 하더라도 사람의 욕망은 그 열 배 스무 배 커지기만 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 바른 행동을 하라!’

  이 말은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에 있다.

  다시 말한다. 돈! 돈! 돈! 돈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돈의 노예보다는 돈을 사용하는 주인이 되라.

  그러지 못하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알지 못하고 죽고 만다.

  사람들은 이 말을 죽기 직전에 가서야 비로소 깨닫는다고 하는데, 이것이 문제이다.


잔소리 쟁소리


  석가모니 재세(在世)에도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더라? 그뿐 아니고 석가모니 제자 가운데도 잡담을 즐기는 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석가모니는 제자들의 이같은 모양을 보시고 못 본척 하실 분은 아니지 않느냐!

  “비구들아, 너희들이 모였을 때 두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느니라. 하나는 바른 말을 해야 하며, 또 하나는 존귀한 침묵을 지키는 일이니라.”

  이는 석가자설경(釋伽自設經)에 있다.

  또 잔소리에 대해 법구경을 통해서 말씀이 계셨는데,

  “말의 위세를 지켜 말을 삼가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지 말며, 말해야 할 것만 말하여라” 하셨다.

  잡보장경(雜寶藏經)을 통해서 이 말씀도 남기셨다.

  “지자(智者)는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경솔히 말하지 말아라.”

  석가모니께서도 ‘잔소리’에 대하여 말씀을 많이 하셨을 정도이니 잔소리가 고금을 통하여 문제거리였나 보더라!

  그러니 자고로 ‘침묵은 금(金)’이란 속담이 판치는 것을 봐도 짐작이 되지 않느냐? 금이라 말한 것은 곧 경제동물에게는 보약과 같은 것인데 금을 최고지상의 가치로 비유하여 우리 불자에겐 먹혀들지 않는 말이 되고 말았구나?

  ‘침묵은 깨달음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꼬?

  이러다간 내가 석가모니께서 하신 말씀을 공연히 왜곡시키는 ‘잔소리꾼’이 되고 말 것이니 이 정도로 덮어두면 좋겠다.

  그렇지만 유명한 화가 라파엘도 르네상스 때에 별의별 똑똑이가 많이 쏟아져나와 한 마디씩 하니 비록 그림은 그리지만 참을 수 없었던지 몇 글자 남겼다.

  ‘총명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 알맹이 있는 질문을 하고 주의 깊게 듣고 읽으며 대답할 때에는 침착하여야 하고 더 얘기할 것이 없거든 입을 다무는 기술을 배우시오.’

  내가 오늘 아침에 잔소리 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을 하면서 너에게 잔소리를 해야 하는 슬프고 애끓는 사연이 있는 것을 너는 아느냐?

  왜냐하면 말이다. 똑똑히 듣거라! 모두 너의 경솔한 잘못 때문이니라.

  네가 말이 많다고 질책하는 너의 친구들이 있고, 또 너의 친구들까지 잔소리를 하게 만드는… 그러니까 얽히고 설키는 못된 업을 쌓아가게 만드는 꼴이 계속 연출되고 있으니, 너는 이 얼마나 무서운 업보를 감당하여야 정신이 돌아오겠느냐?

  이 ‘잔소리’라는 것 때문에 석가모니께서도-차마 ‘잔소리’라고는 말할 수는 없고-‘많은 말씀’을 하신 걸 본다면 너도 좀 깨우침이 있거라!

  이미 수천년 전에 석가모니께서 너의 말이 많은 업을 쌓을까봐 걱정하시면서 말씀을 곳곳에 새겨두셨는데 이제 보니 너는 아직도 미망에서 헤매이고 있구나!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며, 말씀을 읊고 또 읊으며,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또 새겨라!

  너같이 우둔한 자라 하더라도 깨우침이 다가설 때가 있으리라. 그때가 내일 아침이 될지, 아니면 모래 새벽이 될지, 아니면 억만겁이 흘러간 후가 될지는 모르나 다 네가 정진할 탓이니라.

  “선근(善根)을 심지 않고 게으르면서 남의 공덕만 물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은 마치 장님이 젖을 마시지 않으면서 색깔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처럼 헛수고만 하는 것이다. 젖 색깔이 어떻다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중요한 것은 먼저 젖을 먹은 다음에 자기의 선근을 기르는 것이니라.”

  이 글은 불조통기(佛祖統記-지반志盤 지음)에 나오는 말로 천태종의 지의조사(智顗祖師)가 임종에 이르러 둘러앉아서 지켜보는 제자들에게 한 말씀하신 것인데 제자들의 질문은 이랬다.

  “스승께서 돌아가신 후에 어디에서 태어나십니까? 또 우리는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까?”

  하긴 잔소리라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있어 명약이라고 말하는 정신과 의사도 없지 않다더라? 심심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여자이건 남자이건 구분할 것 없이 거기서는 없는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재판을 하는데 이때는 그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팔 떼고, 다리 떼고, 눈알 뽑고, 콧구멍 쑤시고, 외과의사 내과의사 모두 불러다 방정을 다 떤다더라?

  요즘 컴퓰러(이건 본토발음이라 카더라? 이것 있어서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권총 쏘듯 코옥코옥 찔러가면서 말하는 방법이 생겨났는데 이를 피씨통신-PC 통신이라고 한다더라?

  ‘피=P=皮’라는 위인이 만들어 내었는지 피자가 처음에 오는 것인데 이것이 요물단지라 말썽을 종종 피운다고 하더구나?

  별별 해괴한 일도 벌어지긴 하지만 주로 말썽스러운 것은 둘이사네 너같이 할 말 안할 말 온갖 잡소리 다 긁어모아서 되지도 않는 오물로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하는 행동이야말로 혹세무민하는 소행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아직 기계의 발달이 사람의 욕심을 따르지 못해서 얼굴과 목소리를 듣고 보지 못하는 단점은 있지만 이것을 잘만 활용한다면 참으로 훌륭한 시대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 가르침을 비롯해서 모든 좋은 가르침을 좀더 빠르고 쉽게 전파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도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겨우 ‘잔소리’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실제 장난칠 말이나 주고받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면 앞으로 많은 시련을 겪어야만 올바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오늘 아침에 나는 너로 인하여 ‘잔소리’로 시작하여 잔소리로 끝나고 마는구나!

  잔소리가 지나치면 ‘징’ 소리로 들린다고도 하더라.



사탕을 좋아하느냐?


  너는 사탕을 좋아하느냐?

  50년전 왜놈들이 물러가고 미국군인들이 전승국 행세를 하면서 이 땅에 와서 뽐내던 일을 기억할 터이지? 네 나이도 제법 들었으니 하는 이야기인데 그때 미국군인들이 큼직한 알사탕을 마치 강아지 놀리듯 던져 주며 낄낄거리고 네놈들은 그걸 한 개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다투어 아우성을 떨었더랬지? 기억나지 않느냐? 그 알사탕은 큼직해서 입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저 그만이었다. 엿가락이나 얻어먹다가 세계에서 가장 당도가 높다는 큐바원당으로 만든 알사탕인지라 단맛이라기 보다 혓바닥이 갈라지는 듯 짜릿한 그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솔직히 털어놔라.

  그때 이미 네놈 또래 아이들의 입들은 미국의 식민지 백성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미국군인들은 먹던 레이션박스를 던져주기도 하고 걸치다버린 군복바지를 주었었지. 무척 없던 때인지라 주는 대로 얻어 쓰게 되었지만 이미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꼬부랑말에 심취해서 그런 말들이 적혀 있는 물건이면 환장을 해서 아직도 그런 이름을 즐겨 쓰고 있지 않느냐? 비록 국내에서 만드는 제품조차 미국말을 써야 팔린다 하니 비록 잠시지만 그들의 식민지 백성행세는 꼴꼴나게 해주었었지?

  심지어는 오직 하나의 우상만 믿어야 한다며 그들이 믿는 종교까지 구호물자와 함께 묻어 들어와 특히 부처님 말씀을 아리송하게 물고늘어지는 꼴이 아직까지 남아서 의기양양 떠들고 있음을 네놈은 이미 다 알아차릴 터인데도 모른 척 하니 네놈이 더 어리석고 나쁜 놈이로다.

  그때는 먹고살기가 어려운 때였느니라! 스님이 허기진 모습으로 이집저집 빈 바랑을 메고 다니시며 시주를 찾고 있는데, 시주할 것도 없었지만 괜히 스님을 조롱하여 심통배나 채우려고 ‘우리 예수 믿어욧!’ 하면 두말없이 다른 집으로 총총히 사라지셨느니라!

  스님에게 공양을 드리고 싶지 않으면 예수를 믿건 안 믿건 이 말을 부적처럼 써먹었더란다. 그러면 스님은 아무 말씀 없으시고 다른 집으로 향하여 가셨는데 하얗게 깎은 뒷머리 모습을 보며 매우 측은하게 여기던 그런 시절이 있었느니라.

  그때 아이놈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 스님께서 예수라는 귀신이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이라고. 하지만 거듭 식민지 백성이 되는 꼴을 보시고 너무 가엾어서 그냥 두고 가신 것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머리 속까지 식민지 백성이 돼버린 네놈들의 꼬락서니가 너무도 가엾고 가슴 아팠을 것이다. 왜놈들 굴레를 벗어 던졌는가 했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미국놈에게 꼽살이 붙는 꼴이 무척 안쓰러웠을 것이니라.

  참으로 기구하고 기구하다. 이 땅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자리할 곳이 너무 인색하구나!

  조선 오백년간을 핍박속에 지내면서 산중으로 밀렸다가, 왜놈등살에 갖은 수모를 다 겪고 그나마 해방이 되어 어찌 되는가 싶었는데 예수 믿는 대통령이 나와서 불교를 또 한번 뒤흔들어 불교 믿는 사람들끼리 이간질시키고 전 재산을 몰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더니라! 기구하다! 부처님의 길!

  둘이사네야! 네놈은 욕심 또한 더덕더덕 양볼따구니에 붙어 있어 내가 너에게 꼭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말 한 마디 하려는데 들어두겠느냐?

  흥! 오늘은 제법 고분고분 하니 웬일이라더냐! 네놈 어젯밤에 좋은 일이 있었는가 보구나?

  눈앞의 욕심에 사로잡힌 너같은 놈에게 부처님께서는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통하여 말씀을 이미 내리셨느니라! 몇 천년 전에 이미 네게 말할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말이다.

  ‘재물과 색을 쫓는 자는 비유하건대 어린아이가 칼날에 발린 꿀을 핥는 것과 같아 그 달콤한 맛에 취하여 혓바닥이 잘릴 위험이 있음과 같다.’

  둘이사네야! 너 입을 딱 벌려 보거라! 혓바닥이 이미 잘려나가서 없구나! 그러니까 말을 해도 반동가리말을 하고 혀짜래기 소리를 하게 되는구나! 요즘 대통령 하시는 분도 말을 잘 못해서 흉을 보더라만 글쎄? (확실히) 하면 될걸 (학실)이라 그러고 (경제)하면 될걸 (갱제) 하는 걸 들으면서 혹시나 네놈처럼 혓바닥에 이상이 오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단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비웃는다는 것은 불경하다만 대통령을 지낸 두 사람이 이미 욕심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옥중에서 별별 구경거리를 만들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 대통령 알기를 뭐 같이 아는 세상이 되고 보니 없던 흉도 자연히 쏟아지게 마련이란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혀짧은 소리를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공공연히 주의성없이 한다는 것도 국민을 업수히 보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이놈 둘이사네야, 너 아직도 꿈속을 헤매는 식민지 백성꼴이라 웃긴다 웃겨!

  내가 오늘은 욕심에 관해서 말해주려고 하였는데 이 욕심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은 글귀가 있고 또 많은 가르침도 받았을 것이어서 생략한다. 다만 한 나라 한 민족, 그리고 개개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욕심을 가지고서는 결코 깨우침에 이르지 못한다는 걸 한 마디 남기고 싶구나!

  네놈 한 몸 잘못하면 온 나라가 잘못된다는 것을 아느냐?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이라면 모두가 작은 욕심을 버리고 함께 깨우쳐,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헤매이는 많은 동포들!-너는 그분들의 마음지기가 되어드려야 한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할 일이 더 많은 것이니라.

  열심히 살거라!


왜인들의 다도(茶道)

 

  삼일절을 맞아 갑자기 배가 아파요. 설사인가?

  왜놈들에게 ‘칼’을 쥐어 준 잘못이 그 하나요

  왜놈들에게 ‘돈’을 쥐어 준 잘못이 그 둘이요

  왜놈들에게 ‘다(茶)’를 맛보인 잘못이 그 셋이라.

  그들에게 쥐어 준 칼로 많은 생명들이 무참히 당했고요

  그들에게 쥐어 준 돈이 놈들을 경제동물로 만들었고요

  그들에게 알려 준 다는 못된 짓거리 하는데 써먹는 다오.

  삼일절 아침에 앞집의 약방문 열었을까?


  왜인들의 문화라는 미명하에 애용하는 차 마시기는 꽤 오래 전 우리로부터 물려받은 흉내내기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우리로부터 전해 받았다고 여기지 않고 중국으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8세기경에 천황이 백 여명의 스님들과 다회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때 중국에서 차를 직접 갖고 와서 재배하여 퍼트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신라에게 밀려 건너간 일부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이 구태여 밉기만 한 신라를 들먹이기를 싫어한 나머지 그렇게 비위를 맞추어 기록했던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이러한 왜의 다도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고 하는 센노리규(千利休)는 장사꾼 신분으로 중국과 우리나라를 내왕하며 서당개 풍월처럼 안목을 넓혀 제법 다도에 대한 체계를 세운 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풍신수길과 비슷한 시대에 살았으며 당시 무사들의 다툼이 최상의 도덕인양 의기충천할 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무사도가 죽음의 예술이라고 한다면 다도는 삶의 예술이다.”

  그는 인간과 자연을 총체적으로 보는 기하학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차의 맛에 심취하였다.

  당시는 전국시대로 무사들이 잠시라도 짬을 내어 쉴 곳을 다실(茶室)이라고 했고, 대여섯 명이 들어앉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을 황야의 보금자리처럼 중요한 안식처로 여겼다.

  센노리규가 설계해서 지은 다실은 웬만한 궁궐 이상으로 높게 평가할 정도로 아담하며 다도에 심취한 건축인들은 천황의 집보다도 더욱 아름답다고 칭송한다.

  그래도 그는 죽음은 어떻게 피할 수 없었다.

  풍신수길은 의심이 많은 자였다. 센노리규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사형에 처하려고 하다가 그래도 그간의 정리를 측은하게 여겨서 할복자살 하도록 배려를 해주었다는 일화와 함께 그의 일생에 한 자락 낙엽처럼 비춰주고 있다.

  1591년 2월 27일 그는 최후의 차회(茶會)를 갖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 자신이 마신 찻잔을 들어 서쪽을 향하여 던지면서 하얀 옷에 붉게 배어 오르는 그의 선혈을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일본의 차 마시기 경쟁을 심어주어 그의 전설과 함께 전해지게 되었다.

  일본 관광지 어디에나 두어 평 남짓한 방에는 전통다실이라는 공간이 있다. 정원도 있고 한 켠에 아늑하고 돋보이는 이 공간은 가히 수도선원을 방불하게 분위기를 잡아준다. 일본관광을 하게 되면 이런 구경을 맛볼 수 있다.

  일본 여자중학교에서는 이 차 마시기와 기모노 입기를 필수적으로 배우는데 그들은 이 풍습이 전통이라고 여기고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곳 찻집은 거의 성의 교섭장소였다. 에또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는데 오늘날 ‘주간다실 야간술집’이라는 것이 바로 그때의 모습을 연상한다.

  그들은 이것을 심미적인 예술이라고 여긴다.

  유원지와 부근 길가에는 가게차야(掛茶室)라는 이름의 술집인지 찻집인지 헷갈리는 곳이 많다. 글자 그대로 유람객들이 잠깐 걸터앉아(掛) 차를 마시며 쉬는 곳이라는 뜻이지만 후미진 뒷방에는 반드시 빈 방이 하나 있다. 강호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남자가 여자를 찾는 그런 장소인 것이다. 일종의 교묘한 매음장소이다.

  또 데아이(出合)라는 찻집이 있다. 이는 우연히 산보를 나와서 마주치다라는 뜻이지만 내용은 매우 음흉하다. 일종의 러브찻집인 것이다. 강호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신사를 참배하러 나간다든지 바람을 쐬러 잠시 나들이 한다든지 핑계를 대고 눈이 맞은 외출한 남녀가 쉬었다 가는 장소인 것이다.

  근본적으로 역사적으로 섹스에 탐닉한 종족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정이지만 그들의 차 마시는 과정에서도 이것을 빼놓고는 소위 그들이 말하는 문화가 없으며 차 마시기도 소위 다도라는 것조차도 성립이 되지 않는다. 한때 조선의 사신들이 수신사로 가서 이 점을 지적한 바도 있고 막부에서도 부끄러이 여겨 이를 조처한다고 말만 해두고 이미 호색에 젖어 있는 그들의 생리현상을 어찌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에도시대 환락가는 동경의 요시와라(吉原), 경도의 시마바라(島原)가 대표적인데 손님이 오면 먼저 과자 부스러기와 차를 대접한다. 몇 개의 찻잔을 늘어놓고 찻가루를 절구에 넣고 빻아 준비하였다가 내어다 놓는데 이 빻는다는 것은 준비하기 위한 행동이라지만 ‘손님이 없어 공친다’는 은어이기도 하다. 대신 차를 ‘끓인다’는 말은 손님이 있다는 뜻이며 장사를 잘한다는 말이다.

  ‘미찌고는 차를 잘 끓이는구나!’라 하면 그녀는 장사가 잘되는구나! 또는 그녀의 그 문턱에는 손님이 많다라는 뜻을 담은 은어이다.

  그리고 ‘차맛이 기가 막히다’라고 하면 차를 파는 여자가 좋다는 뜻이라는 은어이다. ‘차맛이 좋다’는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싸구려 여자는 매화차, 좋은 여자는 설중매, 이들은 이런 투로 차를 빗대어 여자의 섹스 품격을 평하는데 이용한다.

  또 반차(番多), 산차(散茶) 따위는 일종의 엽차이지만 아무때 손님에게 거절하지 않고 몸을 허락하는 여자를 빗대어 말한다.

  그들이 차를 이용한 외설은 지나치게 극도에 달하고 있어 자칫 우리나라 사람이 이것을 모르고 그대로 모방하다간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왜놈들 속담에, ‘저질의 반차도 금방 달인 것이 더 맛 좋다’가 있다. 이는 못생긴 여자라도 한창 때엔 예뻐 보인다는 속어이다. 왜놈들은 찻집에 여자 없이는 못 마신다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

  오구라 덴싱(岡倉天心)은 24세때 「차의 책」을 지었는데 1906년 뉴욕에서 간행되어 서양인들이 즐겨 이러한 왜인들의 차 마시기에 흥미를 갖는다.

  요즘 일본에는 이러한 퇴폐적인 문화의 잔재를 쓸어버리기 운동이 일고 있으며 장차 우리나라에도 혹여 왜놈들의 것을 본따서 잘못 차 마시기를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삼일절 아침에 한 줄 쓴다.


있다? 없다?


  지금 ‘있다’와 ‘없다’의 논쟁이 전국 각 서점에서 불같이 일고 있다.

  마치 400년전에 일본을 다녀온 두 사신의 의견에 대해 ‘있다’와 ‘없다’로 나뉘어 논쟁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다가 임진년 봄, 왜놈들을 맞아 애꿎은 국민만 무려 7년 풍진에 암울한 세월을 헤매게 했다.

  그때 그 사람들의 자손들이 또다시 그러한 말씨름을 하면서 말장난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해운대 해수욕장에 왜인 한 놈이 칼을 빼어들고 상륙했다. 누구하나 맞서서 ‘너 웬놈이냐?’ 하고 묻지도 않는다. 모두 피난 보따리만 싸들고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다.

  누구 한 사람 칼 든 놈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예리한 칼날에 목이 달아날까 두려워 얼씬하는 사람도 없다.

  책임자는 따로 있으니 시민은 피난 갈 권리를 찾기만 하면 된다는 심보다. 이놈의 왜놈 사무라이는 계속 진격한다. 문경새재를 넘었지만 누구 하나 대항하는 한국인은 없다.

  다시 충주 탄금대를 향했으나 저마다 살아 남으려고 도망치는 통에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고 불과 며칠 사이에 수도 서울에 도착했다. 사내들은 저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산으로 도망가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사무라이의 노리개가 된다. 이 와중에도 사무라이에게 빌붙어서 동족을 고자질해서 무참하게 죽게 만드는 놈이 있는가 하면 숨겨둔 금은보화를 사무라이에게 바치고 목숨을 구걸하는 놈도 있다.

  이 한 놈의 사무라이는 계속 진격해서 임진강을 건너갔다. 그곳에도 대항하는 자는 없다.

  쌀을 공짜로 얻어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녘 하늘 아래 원수들을 쳐부수지 않고서는 먼저 왜놈하고 싸워야 할 명분이 없다 하면서 우선 목숨이나마 부지하겠다고 도망치기 바쁘다.

  사무라이는 압록강가에 이르러 의기양양 ‘침략은 당하는 자에게 잘못이 있다’라고 외친다.

  400년전에도,

  100년전에도,

  관군들은 도망가고 평민들이 앞장선 의병이 일어나 왜놈들을 쫓아 버렸으나 이젠 단 한 놈의 왜놈에게도 대항할 의병이 없는 형편이다.

  의병을 하면 삼대가 망한 실례를 들어 차라리 왜놈에게 아첨을 하면서 친일파로 살아 남아 자손을 퍼트리기를 열심히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지금 경복궁 앞에 있는 흉물을 제거하는 작업과 광복 50주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애쓴다.

  그나마 의견이 분분해 산으로 바다로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50년만에 처음으로 무조건 헐어 버리고 보자는 가장 단순하고도 단호한 주장이 드디어 실천에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 같으면 그 돌들을 잘게 갈아 한국인이면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한 사발씩 꿀떡꿀떡 마시며 자손만대에 또다시 그런 치욕을 거듭하지 않도록 다짐하고 싶다.

  왜색문화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왜놈이 쳐들어온다.

  단 한 놈의 사무라이, 단 한 편의 왜색 비디오, 한 편의 만화가 이 강토를 정복하려 든다. 이제 또다시 먹히고 말면 앞으론 결코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한때 경제적 예속을 면하지 못해 허덕이더니, 일제 36년 동안에도 끝까지 지켜왔던 문화가 이제 무너지고 만다.

  이 하늘 아래 함께 할 수 없는 원수가 있다면 우선 왜놈들인데 이들이 군대를 몰고 침공하는 것이 아니라 슬그머니 쳐들어오고 있는데도 사람마다 ‘나는 바쁘다. 딴 사람이 맡아 할 테지’ 하고 제 살 궁리만 한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음은 좋은 일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관군에 해당하는 군사의 수뇌들은 돈 따먹기에 여념이 없어 유치장 들락거리길 밥먹듯 하다보니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먼저 도망갈 궁리부터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평화시절에는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국민이요, 전쟁이 일어나면 겨우 기대할 만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이 앞장서서 싸움을 맡아하는 의병이 아니면 다른 방도가 없는 판국인데 우선 이 한 놈의 사무라이를 되돌려 세울 의병은 정녕 단 한 사람조차도?

  “없다?”

  아니면

  “있다?”

갑오농민전쟁의 전략적 교훈


  1894년 봄


  역사가들은 전봉준이 이끌던 갑오년 동학농민봉기를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음미하고 있다. 왕조사학적 측면에서 본 견해는 일종의 체제도전적인 반란이라고 하고, 민중적 사학자는 민중의 공명정대한 의식의 발산으로 소위 혁명적인 움직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적이고 이념적인 측면을 떠나서 전략전술적 측면에서 보면 이 운동 역시 많은 교훈을 남겨 주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1894년 정월 보름날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분격, 동학교인 전봉준의 지휘아래 고부군아를 점령하고 불법으로 탈취한 양곡을 다시 빈민들에게 나누어주며 문제의 만석보를 파괴해버린 사건이 곧 동학난을 발단시킨 계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건을 무마하기 위하여 정부에서 파견된 관리는 오히려 사건의 책임을 동학교도에게 돌려 이들을 문초하고 살해하는 등의 폭력행사를 하였기 때문에 이에 더욱 분격한 동학의 지도자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이 동학교도들과 농민들을 이끌고 정부에 대한 정면대결을 위한 반기를 들기에 이르는 것이다.

  전봉준은 녹두장군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그들의 총지휘자가 되었고 동학군의 병력 규모는 약 1만 여명에 달했으며 그 세력은 불과 수일 내에 전라도 북부지역을 일사천리로 석권하였고 관군의 큰 저항을 받지 않고 전주를 무난히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전봉준이 전주를 점령할 즈음에 이미 원세개가 이끄는 청의 구원군이 아산만에 도착하고 뒤이어 왜군들도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출동했다. 이에 당황한 정부군은 동학군이 제시한 것을 들어준다는 조건으로 휴전을 제의하기에 이르렀으며 전봉준은 그 휴전제의를 받아들여 일단 해산하였다.

  그후 정부측이 휴전조건을 무시해 다시 봉기하여 척왜(斥倭)를 내세워 북진하였지만 마침내 공주에서 현대무기로 무장한 왜군들과 합세한 관군에게 일패도지 당하고 말았다. 동학군이 지니고 있었던 무기는 죽창과 관군으로부터 노획한 화승총 몇 자루뿐이었는데 이러한 장비로는 군함과 대포 거기다가 다연발 현대식 무기의 위력 앞에는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었다.


  열약(劣弱)한 전략


  경제사학적 입장에서도 갑오동학봉기는 농민전쟁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분명히 이는 국제간의 복합적인 전쟁임에는 틀림없다. 일부 이슬만 마시고 사는 명리논자는 그들이 죽창을 들고서라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현대식 무기 앞에 하루살이처럼 쓰러져 버린 참혹한 죽음들을 위로하기에 급급하지만 이들을 이끌고 앞장섰던 지도자들에게는 역사적인 냉철한 비판의 칼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농민들의 힘이 근대적인 방향으로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간파하고 이끌어낼 지도자가 없었다고 하는 점 등을 경제사적인 위치에서나 정치사적인 위치에서나 한결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전략적인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때 그 당시에 합당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모처럼 용솟음치던 근대화의 갈림길이 무너지고 말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동학봉기에 대하여 여러 방면에서 판단하고 있으므로 다만 전략전술면에서 이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이를 계획하는 입장에서 평가할 때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오사(五事)와 칠계(七計)를 고루 갖추지 못한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당초에 전략전술이 없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그때 그 당시의 전략을 분석해야 할 입장에서 본다면

  첫째, 거사의 취지에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을 표명한 점은 우선 높게 평가할 만큼 그 시대에 적절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이러한 목표가 농민에게는 땅을 나누어준다던가 집을 준다는 내용의 손에 잡히는 명분이 약했다. 또한 왜군을 무찔러야 한다는 ‘척왜(斥倭)’를 함께 내세운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빨리 내세운 목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말미암아 관군이라는 적과 더불어 현대식 무기로 철저히 무장한 앙칼진 여우의 이빨에 목덜미를 물린 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특히 거사목표가 시기에 적절하지만 전략적인 측면에서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면 잠시 이를 감추어 두었다가 적절한 시기에 이를 들춰내야 한다. 척왜를 부르짖고 나선 동학군에게 그들의 대항군이라고 볼 수 있는 청국군대의 움직임을 충분히 관찰한 다음에 목표를 결정하는 것이 그때의 지도자들이 결정했어야 할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정부를 비호하는 것이 유익한지 아니면 새로운 힘으로 떨쳐 일어나는 농민들의 세력이 더한층 유리할 것인지는 청국군대나 왜군들도 저울질해 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변화의 요소를 무시하고 농민들의 사기진작책의 하나로 외국군대의 진주를 배격하는 목표를 표방한 것은 엄청난 큰 적을 더욱 많이 끌어들인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앉으면 백산(白山), 서면 죽산(竹山)


  둘째, 물량면에서 검토해 보면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우선 농민들이 입고 있는 흰색 무명 바지저고리와 죽창을 든 모습은 군인이라고 하기보다는 총알받이에 불과하였다. 비록 농민군의 사기는 충천하였다 할지라도 오합지졸임에는 틀림없었다. 흰 바지저고리에 긴 죽창을 잡고 모두 앉으면 백산(白山)이 되고 서면 죽산(竹山)이 되었다고 하니 그때의 임전태세를 짐작할 만하다.

  예로부터 지도자는 ‘담은 크되 심장은 적게 하여야 한다(心小膽大)’는 말이 있다. 이것은 의욕만 높아서 가슴만 벅차게 흥분하게 되면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방법을 차분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되고 그 의욕도 실천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동학군의 지도자는 수많은 농민군이 갑자기 도처에서 호응해 오니까 벅찬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체조직을 다시 점검하거나 상대방에 대응할만한 방법을 구체화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략에서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군비를 갖추지 못한다면 백 번 싸워도 매번 실패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 외로운 군대를 외롭게 운용한 것이 전략면에서 큰 약점을 드러냈다.

  당시의 농민군들은 전라북부 지역만이 아니라 경상도 지역과 충청도 지역에서도 호응하여 전라군이 진격해 오면 함께 합류하리라는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조직이 모두 분산되어 있어서 연락이 용이치 못하고 전세의 추이를 즉시 감지하지 못함으로서 겨우 700명에 불과한 관군들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개훈이 이끄는 관군은 전투의욕을 상실한 상태에 있었고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도망가는 형편이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유리한 여건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전투적인 정보연락이 부재한 까닭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역에 흩어져 있던 농민군의 조직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스스로 저해하고 스스로 외로운 군대로 전락하여 피곤한 전쟁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안에도 적, 밖에도 적


  넷째, 지도자들간의 의견 불일치와 상벌제도가 미약하는 등 취약점이 노출되었다.

  전봉준, 김개남 등은 실력행사를 통하여 보국안민을 주장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려 하고 2세교주 최시형은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에 가담한 무리는 모두 사문난적이라고까지 매도하는 등 지도자급끼리의 의견이 정반대로 대립되는 바람에 충천하던 사기를 스스로 잠재우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물론 동학의 기본사상에 입각한다면 무력을 통하여 혁명을 하는 것보다는 정신개조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사회개혁을 하자는 의견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일단 중대사를 결정한 위치에서 우왕좌왕 한다는 것은 적에게 더욱 유리한 조건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뿐 아니다. 농민군이 파죽의 세력으로 진격을 계속 하고 아직 지원을 요청한 청국군이 전세를 갖추기 이전에 관군이 제의한 휴전협정을 승낙한 것은 전술상에서 볼 때에는 가히 영점인 것이다. 휴전 조건 중의 하나가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는 것이 있었는데 관군은 당시 사정으로는 일조일석에 실현될 수 없었던 약속이지만 급한 김에 모두 들어주기로 하고 무조건 휴전에 임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조건은 결코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불과 며칠 후에는 오히려 농민군의 주모자를 색출하여 이를 정치하고 처벌하는 등 휴전협정과는 정반대의 행위까지 하였다. 농민군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상황판단에 민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유의하지 못한 지도자의 불찰이 있다. 그것은 순수한 농민군이나 동학교도의 집결체가 아닌 상태에서 내부의 기강을 철저하게 다스리지 못한 것이다. 한꺼번에 10여만 군중이 모여드는 가운데 도둑과 불한당, 그리고 사회적으로 부도덕을 일삼던 무뢰한들이 함께 참여하여 전세가 유리한 때에는 정복지에서 약탈을 일삼고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지도자를 배반하고 간첩질을 하거나 고자질하는 따위의 불리한 행동을 하였다. 이러한 관계로 민중으로부터 일부 외면당하거나 전력의 약화를 가져온 원인이 되었다.

  10여만명의 조직이라면 반드시 기강이 서야 하고 기강을 세우려면 상벌을 엄정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심지어 동학군으로 위장 침투한 관군을 색출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동학군 지도자는 이들을 풀어 주면서 종교적 방식으로 설득하였는데 전쟁 중에서 종교적인 제스추어는 오히려 내부의 기강을 혼란하게 하는 요인일 수도 있는 위험한 방법인 것이다.


 귀신같은 전술


  전략적인 측면에서 본 동학군의 전략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하자를 노출하고 이로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으나 전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대담하고 기민하여 동서양 고금의 어느 전쟁에서도 보기 힘든 탁월한 면이 돋보였다.

  홍개훈이 이끄는 관군은 병선을 타고 군산에 도착하여 동학군을 추적하고 있었는데 동학군은 이들을 유인하기 위하여 먼저 전주성으로 입성하지 아니하고 고창, 부안, 무장 등 전라남북지역을 우회하면서 배에서 내린 관군을 더욱 피로하게 했다. 이런 점은 비록 오합지졸이 결집한 농민군이라 하더라도 상당한 민첩성과 전술적 효과를 거둬들인 것이라 볼 수 있다.

  피로에 지친 관군을 황토마루에 유인, 이를 포위한 다음 관군이 지니고 있던 현대식 무기들을 쉽게 노획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러한 전술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손자의 ‘예민한 적은 피하여 피로하게 한 다음에 쳐야 한다’는 전술이며 무기와 양식은 적으로부터 얻는다는 방법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전략에서는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완벽을 기하지 못했을지라도 지도자 중에 전술에 탁월한 이가 있어서 이러한 고등전술을 구사하고 이로서 승전을 거듭함에 따라 각지에 흩어져 기회만 보고 있던 농민들이 자진하여 죽창을 들고 모여든 동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여하간 갑오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은 농민들의 자발의식이 발로한 민족의 움직임이며 근대화, 민주화의 길을 좀더 앞당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음에는 틀림없으나 주변 강대국들의 탐욕스러운 압력에 의하여 무산되고 말았다.

  이러한 국제간의 변화를 의식하지 못한 지도자의 잘잘못을 논죄하고자 하는데 이 글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러한 민족의 대운동이 전개될 때에 두 번 다시 이 괴로운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자는데 뜻이 있다.

  다만 이 움직임의 효과가 앞으로 노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민중운동을 시도한다든지, 민족의 이름으로 여러 가지 의미의 움직임을 시도할지라도 철저한 준비 없이 나선다면 오히려 좋은 기회를 무의미하게 흘러 버릴 염려가 있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기미년 삼일운동 역시 그 지도자 대부분이 동학이나 기독교의 지도자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무저항주의로 시위만 한 것에 그쳤다. 이에 대해 당시 미국을 비롯한 국제여론은 필리핀의 반란에 비교할 정도로 비하시켜 오늘의 평가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비록 좁은 땅덩어리에서 작은 일 하나를 하게 되더라도 소꿉장난처럼 흐지부지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비록 작은 땅덩어리이긴 해도 야멸찬 고추 맛이 있다는 평을 듣는 것이 한결 듣기에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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