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니없는 황소        처음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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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간




 이제 노동운동은 원색적이고 파괴적이었던 시대가 가고 지혜롭고 무게 있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힘과 단결된 모습으로 경제발전 모습만큼이나 급성장한 것이다. 앞으로 보다 조직적인 모습으로 승화한다면 그 동안 노동운동에 의하여 희생된 많은 운동동지들에게는 무엇보다 훌륭한 선물이며 흐뭇한 위안이 될 것이다.

                                 -「승화(昇華)하는 노동운동」중에서

네놈은 쫄보여!

  생각할수록 네놈이 하는 짓이 어리석구나!

  보면 볼수록 그렇게 어리석은 짓거리만 하고 다니니 차마 내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아주 쉬운 이야기 하나 해줄까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뭐? 듣기 싫어?

  하기사 너는 미련한 놈이니 좋은 말이 귀에 들어갈 턱도 없고 옳은 말을 마음에 아로새기지도 못할 것이 아니더냐?

  불쌍하고 가엾은 둘이사네! 오늘은 네놈이 매우 좋아하는 구절을 말해 줄 것이니 이리로 와서 앉거라! 들어두면 약이 되느니라! 평소에 잘 씹어 넘겨둔 밥알이 곧 보약이며 이에 버금할만한 보약이 또 없는 것처럼 오늘 내 너에게 하는 말을 평소에 네가 먹는 밥알처럼 평범한 말이니라.

  ‘색(色)이 공(空)과 다르지 않으며 공은 색과 다르지 않느니라.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라.’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니더냐? 아마 너의 전생이 인간이었더라면 네 귓바퀴에 이 말씀으로 테를 만들어 두었을 것이다. 너의 귓밥이 두툼한 것을 보니 좀 듣기는 들었나 보구나?

  그래 이것은 반야심경에서 그야말로 반야와 같은 말씀이요, 말씀 중에 제일이로다.

  네놈이 늘 하는 말이 있지 않느냐?

  조감도(鳥瞰圖)라는 말을 네가 가끔 인용하는 것을 들었다. 말하자면 새가 공중을 날면서 아래를 훑어보는 그것을 말하는 것인 줄 나도 알고 있다. 혹은 거시적 안목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사물을 네놈처럼 이렇게 본다면 늘 실수투성이란다.

  반대로 충탐도(蟲耽圖)라는 것도 있어서 이는 사물을 미시적 안목으로 면밀하게 파악하는 관찰방법이니라. 더 쉽게 말하면 이렇게 예를 들어 설명할 수도 있지! 벌레가 구석구석을 기어다니며 살펴보는 것이란다.

  조감도식이라면 ‘숲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한다’라는 평을 듣게 되는 것이고, 충탐도식은 ‘나무는 보되 숲은 느끼지 못한다’와 같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다 활용하여 관찰하는 것이 옛 어른분들의 말씀이시니라.

  ‘불즉불리(不卽不離),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다. 중도(中道)는 공자가 한 말이니라.

  사람 가운데 융통(融通)이나 기전(機轉)이 잘 되지 않는 이는 곧 머리가 굳었다고 하는 것이니 너 둘이사네같이 나이가 들어서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제 생각만 하는 처지라면 무조건 자기고집만 주장해서(執)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며 이로서 늘 상대와 충돌하게 되고 따라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원수의 업(業)을 쌓게 되는 것이니라!’

  융통이라 함은 마음의 한가운데를 사통팔달 가로질러 가면서 너그럽게 판단하는 정신력이요, 기전이라 함은 마음의 가장자리를 두루두루 살펴가면서 빠짐없이 살펴보는 정신력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사람들은 무수한 말로 이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각기 마음으로 비추어서 이를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말, 아무리 많은 단어, 아무리 풍부한 감정, 아무리 해박한 지식으로도 이를 깨우치게 할 수는 없는 것이 이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이 말씀 이 구절은 곧 ‘반야’라는 표현만큼 단단하며, 무거우며, 탄탄한 것이어서 많은 이들이 소중하게 여기느니라. 그러므로 이 글귀는 한 번 깨치기만 하면 영원토록 흐트러짐이 없으며, 영원토록 마음의 가장 한가운데에 핵심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니, 내가 구태여 너에게 이 말뜻을 풀어 보이지 않는 까닭을 알아차리겠느냐?

  이 글귀는 결코 남이 풀어서 알려주는 그런 방식으로는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미리 간직하고 늘 이 글귀를 마음에 두면(念) 언젠가는 깨우치게 되면서 너에게 인간으로서의 사는 보람을 맛보이게 될 것이니라. 이러한 때는 내일 새벽에 올 수도 있으나 게으른 네 평생에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싶구나.

  어리석은 둘이사네! 네가 요즘 거리마다 넘쳐나는 전자오락실에 가본 일이 있느냐? 거기 가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나 로켓을 실제로 타고 즐기는 것처럼 재미를 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 있는데 네놈은 나이가 많아서 가볼 수도 없을 것이니 참 안되었다.

  공중에 날아오르면 각종 계기판을 이용하여 운전하는 이가 스스로 판단하여 높은 곳을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다. 이때 너무 기계에만 의존하다가 보면 실제 상황이 일어나 계기판과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고 늘 동전만 날려버리고 만단다.

  이때 각종 계기판은 실제를 떠난 가상의 표시이니 공(空)이요, 현재 일어난 상황은 곧 실체이니 색(色)이라 이름한다면 이 두 가지가 다 온전하게 활용되어야 비록 작은 게임놀이도 원만하게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너의 인생살이도 이와 다를 바 없느니라.

  둘이사네! 그래도 융통성, 기전성 이런 거 잘 들어 두어라.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면 너에게 거듭 오늘의 일을 되새겨 줄 것이다. 또 쫄보라 해서 너무 섭섭케 생각하거나 마음깊이 새겨두지는 말거라. 네놈에게 그런 욕을 한 것은 장차 네가 융통성 깊고, 머리회전이 좋은 그런 청년들보다 더 영민한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는 증명서 같은 것이라고 여기면 되느니라. 그렇다면 네놈도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 이거야!


부질없이 매혹당해


  석가모니께서 너를 위해 또 한 말씀이 계셨느니라. 비유경(譬喩經)에,

  “아난자여! 저 어물가게 앞에 떨어져 있는 새끼토막을 주어 오너라.”고 말씀하시자마자 충직한 아난다는 즉시 뛰어가서 비늘 묻은 새끼자락을 주어왔다.

  “여기 가져 왔습니다.”

  아난다는 주어온 새끼토막을 석가모니께 바치려고 하는데,

  “그것을 다시 버리고 네 손을 코에다 대고 냄새를 맡아보아라!”

  아난다는 석가모니께서 시키는 대로 새끼토막 잡았던 손을 자기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고기 비릿내음이 납니다.”

  “바로 그거다! 생선의 비린 냄새는 새끼줄로 옮고, 또 네 손에까지 옮았구나! 잠시라도 함께 하는 친구를 잘못 사귀게 되면 자신이 좋게도 되고 나쁘게도 되느니, 항상 좋은 사람을 사귀고 좋은 일에 열심하여라.”

  바둑을 두는 사람은 바둑에 몰두하게 되면 바둑친구가 제일 좋고, 컴퓨터에 몰입하게 되면 그때 사귄 친구가 가장 친숙하게 느껴지게 되어 있다.

  한때는 영화가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극장이 메여지도록 인기가 높았다. 그 시절에는 둘이사네 너도 제법 극장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으리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시절 네가 사귄, 함께 구경가던 친구들이 기억날 터이지?

  그 당시에는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아는 척하고 뽐내었던 시절이었지?

  뿐만이 아니고 네놈 역시 영화관에서 만나는 여자친구도 있었겠지?

  그 친구 지금도 생각날 터이지?

  두 손을 꼬옥 잡고서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읊조리고 배우가 뱉어낸 대사를 읊으며 네 여자친구를 홀리려고 하다가 도리어 네놈이 그 친구에게 매혹되고만 그런 추억이 없지 않을 터이지?

  하긴 그때야말로 호박 겉핥기여서 요즘처럼 조금만 자극적인 노출이 있게 되면 자른다 뭐다 하면서 신문이 야단법석을 떨고, 어른들 입에서는 그보다 더한 욕설이 튀어나오고, 학교 훈육선생님들은 극장 뒷자리에 숨어 혹시 자기 학교 학생들이 눈에 뜨이지 않나 감시하는 척하며 무료감상을 즐기던 그런 때도 있었다. 요즘은 예사로 벗고 저지르고 치고 박고 고의적으로 더욱 처절하게 장면을 묘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시시하다는 평을 듣는다더라?

  매스컴의 생명은 시청자를 매혹하여 끌어들이고 상품을 팔아먹기 위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데 심지어 단골고객을 만든 다음 이를 이용하여 더 많은 불특정 장사꾼에게 광고라는 이름으로 중매쟁이 노릇까지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옛날말로 배신자의 근성이지만 요즈음은 당연한 상업적 도덕이라고 칭송 받는단다.

  우리가 TV광고를 역겹도록 봐야 하는 그 환멸감은 모두 방송국이라는 것이 연속극이다 뭐다 해서 눈물 짜는 멜로물이나 궁금증을 도발하는 추리극이나 무술극 따위, 아니면 시대극을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픽션이니 논픽션이니 하는 말을 옮아가면서 홀려 놓고서는 그것을 몽땅 광고판으로 몰아가는 꿍꿍이속을 시청자들은 이미 알면서도 속고 또 속는 처지가 되었지 않느냐?

  미성년자, 연예인, 유흥가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환각제 먹고, 폭력, 살인 등을 저지른다고 하면서 기사를 메꾸어 나가는 사이, 몰랐던 사람들에게까지 더욱 넓게 전파되고 마는 폐단까지 나타나니 문제는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는 것같다.

  금지시키면 더욱 더 극성스럽게 하고 싶어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보다. 금지함으로서 더욱 흥행이 번창하는 것도 역시 장사하는 방법 중 하나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의 철학자가 한 마디 하였더라!(윌리엄 홉킨)

  ‘인간성에는 자기의 주의를 집중하게 하는 목적물에 같아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을 해석하면, 가령 비열한 생각을 하거나 추악한 곳에 눈독을 들이거나 불순한 환경에 처해 있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물들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재미있다는 정도였다가 차츰 매혹되면서 어느덧 자신이 바로 그렇게 되고 말아 이를 자업자득이라는 표현으로 몰아 부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일단 여기에 함몰한 당사자는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심지어 후회가 무언지조차 모르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고 싶어지는 경지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러한 경지에 미쳐버렸다고나 할까? 아니면 엉뚱하게 해탈에 이르렀다고 할까? 참으로 한심한 지경에 도달하고 말아 인생으로 태어난 보람을 찾기는커녕 그저 그대로 축생으로 몰입해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25사변이 터지기 직전까지 장덕조여사가 ‘벌레 먹은 장미’라는 연재소설을 쓰고 있었더란다. 당시 신문이란 것은 모두 한문으로 썼기 때문에 이제 중학교에 막 입학하려는 우리 또래들에게는 제법 자극적 가치를 부여하였더란다. 가끔 음란(당시로서는 느낌)한 장면이 묘사될 것 같으면 이것을 오려서 학교에 가져가 돌려가면서 읽어보고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여학생 책가방에 슬쩍 넣어주던 선심도 썼었다.

  전쟁이 터지고 피난을 갔었는데 영남일보에는 ‘자유부인’이라는 제목의 정비석씨 연재소설이 또 한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이 있었다.    뿐만 아니다. 방인근씨가 쓴 소설이 많이 쏟아져 나왔는데 대개는 남녀관계를 요상하게 묘사하는 것들이 많았다. 요즘처럼 노골화한 것이 아니라 보일 듯 말 듯 약간의 암시만 주는데도 인기가 있어서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모두 춘향전보다도 더 고리타분한 고전이 되고 말았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매우 에로틱한 재미였었던 것이다.

  둘이사네야! 그러나 그때는 별거 아니었는데도 난리를 쳤던 것 같다. 지금에 비하면 겨우 발목에도 닿지 않는 깊이였지만 어른들이랍시고 난리법석을 떨었던 것 같아서 쑥스럽기만 하단다. 하긴 지금은 완전히 머리꼭지까지 몽땅 빠져서 살기 때문에 깊이와는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창녀를 교화시킨 석가모니 말씀의 터인 대장엄경논(大莊嚴經論)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만약 사람이 지혜 있는 착한 벗을 가까이 한다면 몸과 마음을 안팎으로 청정(淸淨)하게 한다. 이것이 참된 선장부(善丈夫)이니라.’

  둘이사네야! 네가 노래방에 가기만 하면 부르는 그 ‘차표 한 장’ 좋은 노래인 것 같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아. 사랑했지만 갈길이 달랐다아. 이별의 시간표대로 떠나야 했다아!-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길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는데 궁극적으로 너의 갈 길에 장애가 없길 바란다. 상행선이냐 아니면 하행선이냐?

  아무것에나 그저 얼이 빠지는 현상을 곧 매혹당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화성 임금


  몇 해전 염소가 성경책 한 권을 먹은 일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저명한 철학자이며 교육자로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일흔이 넘었지만 부지런히 전국을 돌며 우매한 국민들의 덜 깬 잠 일깨우느라 노심초사하시는 A 선생님. 마침 서울근교 A시 시장으로부터 시민의 날 강연을 부탁 받고 시간 맞춰 기념식장에 나타났다.

  수천 명의 청중이 넓은 운동장에 가득차 발들여 놓을 틈도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내 강연 들으려고 이 많은 사람이 모인 건가?”

  선생님은 의아해서 주위를 둘러본즉 최근 청소년들의 우상인 여가수 R양이 다소곳이 앉아서 아는 척 목례를 올렸다. 당대 최고의 지성과 최고 우상이 한자리에 앉았다.

  그 가수가 먼저 마이크에 앞에 섰다.

  “♪♬ 멀리이 기이이적이 우네에♪♪ 머얼리 떠어나 간다네에으이♬♬얏 ♬♬.”

  하늘과 땅을 쑤시고 흔들흔들 꼬면서 한 곡조로 운동장은 뒤집어질 듯 질탕한 분위기로 들떴다.

  드디어 선생님 차례가 되었다. 그 가수가 잡고 노래하던 마이크를 뽑아드셨다.

  선생님의 강의는 두 시간 남짓 진행되었다. 운동장에 가득차 왁자하던 군중들은 반절로 줄어들고 선생님의 목소리만 더 격양된 듯 찌렁찌렁 메아리쳐 외롭게 되돌아왔다.

  졸고 있는 이도 많았다. 가끔 앞줄에 앉아 턱을 괴고 듣던 사람 몇몇이 뜸뜸이 박수를 치긴 했지만 손뼉 치는 시늉만 내는지 박수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의 강의가 끝나고 시청직원이 선생님께 봉투를 건네 드렸다. 강의료다. 강의 두 시간에 십만원 상당 두 장의 수표를 건네 드리고 싸인을 받았다.

  그 가수는 이미 백만원짜리 두 장을 선불로 받아 갔다는 것이다. 액수로도 열곱이었다.

  강의료는 시장의 체면과 선생의 권위를 수습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침표일 뿐이었다.

  “한잠 잘 잤다. 고리타분한 소리를 들으니 잠이 안 올 수 있나?”

  들은 것을 후회하는 이도 있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려면 연예인이 되어야 해! 스타! 스타가 제일이야!”

  선생님 강의 내용과 관계없이 시민 중엔 큰 깨달음이나 터득한 듯 머리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염소에게 성경책을 주었더니 맛깔나게 먹더란다. 그러나 책 속의 진리를 깨쳤다는 소문은 들은바 없고 다만 염소치는 목동들이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말이,

  “개미가 매미오빠로부터 노래를 배우고 나서 울었을까? 매앰 맴 할까?”

  “아니야 개엠 갬 할걸.”

  “그래, 개민 개미니까 어쩔 수 없잖겠어?”


  “이봐 생산성 임금과 문화성 임금의 차이가 뭔지 알아?”

  “그런 것도 몰라! 생산성 임금은 부가가치 기준이고, 문화성 임금은 체면유지 기준이지 뭐!”



승화(昇華)하는 노동운동




  노동부에서 발표하는 가장 관심 있는 자료 가운데 하나는 노사분규에 관한 것일 것이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열심히 장식하고 있는 노사분규 발생대비표는 사회안정의 가장 기본적인 척도로서 인정받을 만큼 세인들의 관심사였으나 이제는 그 수가 줄어들어 발표의 의미도 감퇴했다.

  87년 7월부터 엄청나게 불어난 노사분규의 횟수도 그 증가한 숫자만큼 사회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국민으로 하여금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을 돈독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해주었던 것은 분명하다.

  특히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이나 버스노조의 파업은 시민들로 하여금 동정과 공분을 함께 자극한 좋은 본보기일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 하여금 노동교육을 체험시켜 준 중요한 사례가 되어 주었다.

  한국의 노동운동을 가장 먼저 선도했었어야 할 대기업노조는 마지못해 깃발을 들은 것처럼 이때서야 비로소 서툴게나마 노동쟁의를 했다. 그러나 지나친 파괴적 행동을 하여 시민으로부터 지탄을 면치 못했는데 결국 자신의 밧줄에 자신이 묶인 결과로 끝을 맺는 것이 다반사였다.

  60년대와 70년대만 하더라도 대기업이라는 우산 밑에 안정만을 추구하며 이기적인 목적을 지향하던, 특히 그룹계열은 노동조합이 어용이거나 노동조합도 조직할 엄두도 못 내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 이 나라 노동운동계를 해일처럼 휘감기만 해왔다.

  이제는 광복 이후 중소기업의 피나는 노력 끝에 꾸준히 쌓아온 지혜로운 노하우를 다시 음미하면서 운동방식을 개선해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70년대초 한국의 노동운동은 반드시 노동조합주의를 지향하여야만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경제발전을 이룩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틀을 닦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으로 한국 최초의 노동교육을 실시코자 수강생을 모집하러 다녔던 필자로서는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할 길 없다. 특히 대기업에 소속된 사이비 노동운동가들에 의하여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빨갱이’라는 모욕적인 말도 듣고 지냈던 옛일을 더듬어 보면 한국 노동운동의 갑작스런 변모는 어찌 보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여겨진다.

  이제 노동운동은 원색적이고 파괴적이었던 시대가 가고 지혜롭고 무게 있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힘과 단결된 모습으로 경제발전 모습만큼이나 급성장한 것이다. 앞으로 보다 조직적인 모습으로 승화한다면 그 동안 노동운동에 의하여 희생된 많은 운동동지들에게는 무엇보다 훌륭한 선물이며 흐뭇한 위안이 될 것이다.



이런 교섭 저런 교섭


  장차 이런 유형의 임금교섭이 유행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기업주는 임금을 많이 주려 하고, 노동조합은 임금을 적게 받으려 애쓴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임금교섭이 잘못되어 임금이 너무 많이 인상되었다고 단체행동을 한다. 노사는 이래저래 옥신간신하다 마지못해 어물쩍 선에서 타결한다는 야릇한 모습의 교섭방식…….

  노동자들이 임금을 적게 받으려 애쓰는 것은 많이 받을수록 노동의 부담이 많아져서 그만큼 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주가 임금을 많이 주려고 떼쓰는 이유는 임금을 많이 주면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고 작업을 더 강도 높게 강화할 수 있어 임금인상 효과는 상품의 품질 향상과 더불어 생산량도 더 높일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로서는 임금이 오른 만큼 생산성이 향상되지 못하면 기업이 도산하게 되고 결국 그 직장을 잃게 되기 때문에 무조건 임금을 많이 받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장 적당한 선에서 알맞게 받는 것이 좋고, 또 차라리 다음 결산 때 주식분배와 상여금으로 받으면 훨씬 유리하므로 그야말로 꿩도 먹고 알도 먹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임금을 올려주지 않으려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더듬거릴 이유도 없을 거고 임금 몇 푼 더 받으려고 아옹다옹 이놈 저놈 할 일도 없게 된다.

  항상 생산원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는 엄포를 놓아 왔지만 이제는 그런 억지를 부릴 일도 없게 되고 자가용 타면서도 최저생계비를 들추어보는 일은 없게 될 터이다.

  한 단계 높이 뛰려면 반드시 몇 걸음 물러섰다가 달려야 가속도가 붙게 되고 좋은 기록도 나온다. 한두 걸음 양보한다고 해서 늘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렇듯 기업을 시작할 때 나 혼자만 잘 살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며, 노동자 역시 기업이야 무너지든 말든 나만 잘 살려고 입사한 것도 아님이 분명하다.

  앞으로는 심기일전(心機一轉)해서 서로가 서로를 염려해 주는 임금교섭을 해 볼만도 하고, 앞으로는 이런 교섭을 기업끼리도 뒤질세라 경쟁적으로 하게 될 때가 머지 않아 다가올 것 같기도 하다.

  꿈 한번 꿔봤다.



요분질 교섭


  고추 중에도 가장 맵다는 영양초로 고추장을 담았다. 이 고추장 이름을 ‘총액임금제’라고 붙였다. 처음에는 맵다! 맵다! 하더니만 이제 여름이 들어서기 바쁘게 어느새 바닥이 드러나 보인다. 매우면 매울수록 혀끝의 감칠맛은 더 솟구치는 모양이다. 그래서 너무 맵다 하니까 처음엔 안 먹을 것처럼 오두방정을 떨며 동네방네 소문만 퍼트렸다.

  총액임금제는 사람 죽이는 독약이라 선전하기에 두고 봤더니 실상은 전혀 딴판이었다. 고추장이 매워 밥도 더 많이 달라고 해서 비벼 먹기도 하고, 상추도 더 많이 얹어 쌈싸먹는 바람에 종래 편식만 하던 습관도 어느덧 고쳐지고, 변비증도 감쪽같이 없어졌다. 비타민 C가 많은 야채를 많이 먹게 되어선지 걸핏하면 콜록거리던 감기조차 달아나고 입맛이 솟구친다.

  현금지급 5%란? ‘넘기자니 시어미 눈흘기고, 낮추자니 아내는 꽃비녀’다. 물가가 오른다는 길목을 ‘현금치기임금’으로 수문장시켜 인플레란 소매치기는 막기는 막아야 한다. 그리고 총액임금제로 사내복지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며, 후생문제도 다양하게 꾸며주어야 한다.

  종래 기업주 인심에만 의존해 왔던 복지와 후생이 정부의 적극적 두호(斗護)아래 장려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성과급, 주식배분, 경영참여 등 엄청난 특혜가 연구되고 권장되면서 종래 현금에만 의존해 왔던 외골수 소득원이 뜻밖에 여기저기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잘만 하면 공장주인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되었다.

  끝내 안 먹을 작정이면 고추장독을 몇 번 깨트렸고, 누구누구는 집시법위반 등의 구실로 곤욕을 톡톡히 치뤘을 것이지만 어쩐지 그런 기미는 전혀 눈치챌 수 없는 걸 보면 이는 정녕코 기발한 속셈이 있음이 틀림없다. 전략이라면 대단한 고등전략(高等戰略)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죽으면 죽었지 고추장맛 안 보겠다는 석녀(石女)같은 순정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방을 잘 만나 제 할 일 잘만 하면 그 맛보다 더한 맛이 또 어디 있으며 그 보다 더한 낙을 또 어디서 찾겠는가. 고추장단지는 언젠가 바닥이 나더라도 고추장은 해마다 거듭 담게 될 것이다.

  속담에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도 먹고 알도 먹고’ 한다지만, 화폐가치가 점점 떨어진 요즘 말로는,

  ‘이 정도 먹고서 맘차것나?’가 압권(壓卷)이다.

  맛이 좋으면 다다익선이라고 한다. 총액임금제라는 고추장은 마치 오만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그래도 사내 허리를 꽉 끌어안고 요분질치는 옹녀의 맛갈나는 비명처럼 끈적찌근하게 메아리친다.

  임신년 한여름 밤 석녀의 가슴은 왠지 더 찌뿌듯하여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鷄打竹勞) 물어뜯어야만 직성이 풀린다카이.


※D조선에서 이 땅에선 제일 먼저 총액임금제 임금타결을 보고나서 윗    동네의 호들갑스러움에 얼이 나갔다가 숨을 돌리고 나서 한 줄 썼다.



성인무지(聖人無知)

  공자님은 어린이들을 좋아하셨다. 어린이들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씨를 칭찬하며 제자들에게도 본받으라고 가르치셨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동산에 올라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구름도 한 점 없어 일출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공자님께서는 깊은 사색을 즐기시면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명언을 후세에 남기시려고 고심하는 중이셨다.(이 순간까지 그 유명한 조문도(朝聞道) 석사가의(夕死可矣)라는 문구는 세상에 없었다. 필자의 註)

  이 말씀은 공자님의 여러 가르침을 한마디로 함축시킨 문구로 공자님 이름은 잊어도 이 구절만은 오래도록 기억될 만 해서 석가모니의 해탈(解脫)과 버금가는 의미를 갖는다.

  이때였다.

  아이들끼리 옥신각신하는 말다툼이 벌어지면서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공자님께서는 깊은 사색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지구와 저 태양과의 거리는 해가 뜰 아침때가 더 가깝다. 왜냐하면 해가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점심때에 더 가깝다. 햇살이 더 따갑게 느껴지는 것을 봐도 지구와 태양은 점심 때 더 가까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이들의 말다툼 요지는 이런 허망한 것이었지만 두 패로 갈라져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공자님은 방금 사색에서 깨어나시느라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논쟁 자체가 너무나 무의미한 것이었기에 미처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다 하는데 이 정도 문제도 풀지 못하십니까?”

  아이들은 선생님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잘 아시는 줄 알았다가 크게 실망하는 낯빛이 되었다.

  “어찌 어린아이들도 능히 알만한 일을 도대체 한 마디 말씀도 못하시니 성인도 이름뿐이군요!”

  아이들은 묵묵부답의 공자를 보더니 제마음대로 떠들며 까불었다.


노동인간

  저녁노을이 무척 곱다.

  이때마다 노마는 누나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누나아아--.”

  “누-우-나-아-아-아--”

  노마가 애타게 찾는 누나는 산울림이 되어 산모퉁이를 돌아 멀리 사라진다.

  노마의 아빠는 어느 날 갑자기 일터에서 병신이 되어 안방에 드러눕고 말았다. 한때는 술로 아픔을 참고 위안을 삼더니 어느덧 술주정이 심해지면서 엄마와 말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심하게 다투던 어느 날 엄마는 집을 나가 영영 노마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빠의 신음소리는 더욱 좁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누나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 다닌다고 하더니 어디론지 떠나간 후 소식이 없었다.

  오늘도 노마는 누나가 다니던 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 나섰다. 노마는 길가에 핀 코스모스 꽃잎을 물고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머언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둥실 떠 있고 구름 속에 누나가 보였다. 누나는 빨간 입술연지를 하고 방실 반기더니 노마 입술에 살포시 입술을 포갰다. 노마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코스모스 꽃잎이 떨어지면서 잠자는 노마의 얼굴을 하얗게 덮었다. 고추잠자리가 노마의 입가에 앉아 꼬리를 치켜올렸다 내렸다 하며 졸고 있지만 이미 노마는 모든 것을 잊고 이 세상을 떠난 후의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노마가 잠든 길섶을 지나지만 깨어날 줄 모르는 천진한 얼굴에서 차마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흘깃거리며 황망히 지나가 버린다. 고약한 전염병이라도 옮길까봐 총총걸음으로 도망가 버린다.

  산업재해로 말미암아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일하던 사람이 사라진다.

  이러한 산업재해는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가고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 재해를 예방한다지만 건수는 물론 재해손실액도 높아만 간다. 이 상처의 아픔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번져나간다. 번져 나가면서 더욱 더 아픔이 커진다.

  이 아픔의 상처는 이웃에게 번져 나간다. 상처가 깊어지면 아픈 줄을 모른다. 마비증세가 오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인간의 마음까지 마비시킨다. 수족을 잘리운 짐승이 아픔을 호소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기만 하듯 인간들 역시 이 표현하기 어려운 진통을 모른 채 하면서 참고 넘긴다.

  잃어버린 만큼만 챙겨주어도 다행스럽게 여기라고 말한다. 먹고, 입고, 자고, 그렇게 챙겨주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고 여겨야 한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도 아픔을 갚아주는 방법도 모르는 척 한다. 이것이 오늘의 방식이다.

  시각이 수정되어야 한다. 노사문제는 경제문제에서 시작하여 경제문제로 끝내지 말고 노동철학을 생각하며 노동인간을 굽어보는 참된 깨우침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모든 결실이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였고 인간을 위해 있었으며 인간에 의하여 성취된다. 그러나 인간은 제도와 체제와 낡은 이념에 도취되어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억누르고 무시한다.

  모든 꿈에서 새롭게 깨어나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서서 노동인간의 참모습을 찾아보자.

  ‘손톱 밑에 가시가 끼면 아픈 것을 알지만 염통 속에 구더기 우글거리는 것은 모른다.’

  마루밑 강아지도 다 알고 있는 우리나라 속담이다.



근로자가 행복한 나라


  종로 3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싸이버족의 최후’라는 새 인기영화가 개봉중이기 때문이다.

  그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보통사람들은 오늘도 아침부터 길게 늘어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이때 작업복을 걸친 한 노동자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극장 매표소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서더니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표파는 아가씨에게 말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이미 약속이나 된 듯 표 두 장을 받아들고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 광경을 바라본 아들놈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연신 저의 아버지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다.

  아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가슴이 콩닥쿵 콩닥쿵 뛰었다.

  “우리 아버지는 이상해! 표 파는 아가씨와 친한가 봐, 엄마!”

  그날 저녁 아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어머니에게 일러 바쳤고, 이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노동자의 부인은 쌍심지를 돋우고 노동자를 노려보면서 그 날밤 잔인한 수법을 동원하여 남편을 심문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그 부인의 환히 밝은 모습을 바라본 아들놈은 더욱 어리둥절했다.

  “너희 아빠는 매우 소중한 분이시란다. 너도 장차 너희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렴, 응!”

  “왜 엄마?”

  아들은 어머니마저 의아스레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희 아빠는 이 나라에서 매우 소중한 분이시란다. 그래서 근로복지공단이라는 곳에서 네가 그 극장에 가고 싶어하는 것까지 미리 알고 표를 부탁해 뒀던 모양이더라! 너희 아빠는 비록 공장에 다니시긴 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인가 보다.”

  비록 기름때 묻은 옷을 걸치고 묵묵히 살아가는 남편이지만 이제 출근하는 모습을 대견스레 바라보는 부인, 엷게 화장한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화사하다.

  

  이 이야기는 몇 십년 후의 어느 날을 가상해 본 환상의 그림이다.

  아무렴 이 정도의 수준에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또한 착각일 것이다.

  그러나 극장표 하나로서도 능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름지기 만족에서 머무르지 않고 감동의 영역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보태어져 가야만 할 것이다.

  여의도 광장을 가로질러 영등포 로터리를 감아 돌아가는 동안 초콜릿 색깔의 8층 건물 앞에는 ‘근로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하얀 바탕에 까만 글자가 돋보인다.

  ‘근로자가 행복한 나라!’


소매치기


  공단 오거리 버스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는 한순이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오늘 월급을 받았지만 어딘가 계산이 틀린 것만 같았다.

  꽃샘바람은 그녀의 잘 다듬어진 머리칼을 짓궂게 흩트려 놓지만 그녀는 다시 한 손으로 쓸어 올리며 계산서에서 시선을 좀처럼 떼지 못한다. 계산착오가 분명 있을 것 같은 심증을 떨치지 못한다.

  10여년전만 하더라도 구로공단 오거리에는 소매치기가 많았다. 월급 타는 날이 될라치면 ‘내노라’ 하는 전국에서 이름난 소매치기가 떼지어 모였고 많은 아가씨들의 피를 말렸다.

  궁여지책으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백출하였다. 누구는 저축을 했다. 정기적금에도 들었다. 소매치기도 피할 수 있을뿐더러 은행이자도 늘어나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누구는 천장에 숨기고 누구는 방구들을 파고 묻어 두기도 했다. 그렇지만 소매치기는 미리 알고 세금처럼 거둬갔다. 그러나 이 신출귀몰한 도둑을 잡았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소매치기가 이렇게 극성을 떨어도 당국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신출귀몰한 소매치기에 대해 방송과 신문마저도 한결같이 무관심한 것이 이상했다.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그 형체를 식별할 수 없는 이 소매치기는 합법을 가장하여 종횡무진 하기 때문에 수사관도 그의 옷자락조차 잡아보지 못했고 누구도 그를 파출소에 신고하지 않았다. 어떤 학자는 경제개발을 하다보면 웬만한 부작용은 참아야 하고 이러한 소매치기 정도는 묵인되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상당한 기간 경제개발을 하느라 임금 올리기도 자제하여야 한다고 했으며 기업은 높은 임금 때문에 국제경쟁에서 뒤떨어지게 되어 용은커녕 지렁이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많이 빼앗겨야 한다는 투쟁적 임금협상이 성공한 듯 했지만 임금인상폭은 거북이 걸음으로 기어가고 소매치기는 토끼처럼 날렵하게 앞서 뛰어 올랐다.

  당시 임금인상율은 요즘처럼 한 자리 숫자가 아니라 두 자리 숫자였으며 대개는 비슷하게 타결되었지만 부자가 되었다는 노동자는 없었다. 모두 소매치기가 한몫을 차지하였기 때문이었다.

  흔히 빵의 크기를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막상 빵을 나눌 때는 둘이 아니라 소매치기 몫이 먼저였으며 삼등분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소매치기가 한국은행에 숨어 있다는 첩보가 있으나 누가 은행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으리요. 헛소문이라 여길 뿐 아무도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간혹 한국은행 독립문제를 두고 논란이 오고 갈 뿐이었다.

  오늘도 한순이는 이 못된 소매치기를 잡으려고 월급명세서를 뒤적이지만 놈은 바람으로 둔갑, 그녀의 치맛자락에 찰싹 늘어붙어 한순이 피말리기에 여념이 없다.

  모두가 이 소매치기의 공범으로 의심받는 가운데 믿었던 노조마저 임금협상에 ‘인플레’ 몫까지 함께 접어 두는 판에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야 하는 ‘한순이 죽이기’ 음모는 멈춤이 없다.


※여기서 ‘소매치기’라 함은 ‘인플레’이다.



3등노동자


  ‘3등인생’이란 말은 인생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부류를 일컫는 대명사다. 노동자도 삼등노동자가 있다. 노동자이긴 하지만 노동자로서의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로서 다음과 같은 유형이다.

  첫째는 소사장이라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소사장이라는 허울좋은 명칭이 붙었으나 노동자처럼 월급을 받고 일하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한 상태에 있다. 말하자면 노동자로서의 보호받아야 할 법의 범위를 벗어나 버렸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범위를 벗어난 상태이며 노동조합법상으로도 조합원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소사장 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이 일하고 있는 노동자까지 싸잡아 피해를 입히고 있다.

  다음은 파견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직업의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불특정한 제3자에게 노동을 바친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닌 자에 의해 감독 받으니 언제 어느 때 해고될지 모르고 산업재해로부터도 떳떳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불행한 부류다. 대개 단순 사무직 노동자여서 외모 따위에 구애받고 결혼과 동시에 당연 해고되어도 할 말을 못한다. 이는 노사관계가 첨예화되던 시대에 생겨난 노동통제 방법의 일환으로서 노동운동을 견제할 목적으로 착안하여 소외당한 삼등노동자들인 것이다.

  현재 노동자파견법의 찬반 소용돌이가 항간에 화두로 꼽히고 있지만 어디서나 이들을 대변해주는 기구는 없다. 이들 노동자는 노동조직으로부터도 동정 받지 못하는 처지에 있다. 이들 단순사무 노동자들은 대부분 사용자의 측근에서 낮은 임금으로 일하는데다가 임금의 일부는 근로계약의 상대자인 인력회사에 일부를 착취당해 불명예한 노동을 감수하여야 하는 아픔을 안고 있다. 이는 노․사․정간의 불신과 노조의 귀족화 등 노노갈등의 골이 깊어진 탓도 그 원인의 하나이다.

  삼등노동자는 이외도 얼마든지 많으나 마지막 하나를 예를 든다면 골프장의 캐디와 소위 관광유흥업에서 팁에 의존하면서 노동을 바치는 노동자들이다. 특히 캐디들은 같은 노동조합으로부터 차별을 받으면서 노동자로의 취급을 못 받는 점은 매우 불합리한 가운에 오랜 숙제인양 논란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캐디가 노동조합원으로 인정되면 골프장 기존의 노조조직이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된다는 전제하에 조합원 자격을 의심받는 삼등노동자로 남았다.

  이와 유사한 관광유흥업소의 팁 받는 노동자들도 엄연히 사용자의 지배를 철저히 받고 있으며 노동의 질 역시 다른 노동에 못지 않고 특히 윤리와 도덕을 넘어서까지 저질의 노동을 바쳐야 하는 처지에 있으니 노동자도 아닌 사이비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도덕적 의심을 받으면서 구차히 생계를 이어 가고자 처절한 노동을 바치건만 같은 노동자로부터도 도덕적 멸시를 당하니 실로 삼등보다 더 못한 사등취급도 못 받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자로서의 대접조차 못 받는 그들에게 만민이 평등하다는 민주화된 사회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심지어 쿠테타라는 이름으로 총칼을 휘둘러 대담하게 도둑질하는 현실에서 혹여 이들도 그런 꿈은 꾸지 않을까? 참으로 무서워지고 있는 세상이다.



삼이사공 일오육구


  삼이사공 일오육구. 전화에 국번은 없고 번호만 있었던 때, 이것은 대전시 중동에 있던 직업소개소 전화번호로 닭의 갈비뼈처럼 쓸모는 한푼 어치도 없으되 가끔 여러 가지 생각을 일깨워 주기도 하는 숫자이다.

  나로 하여금 노동문제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한 동기부여도 이런 전화번호 따위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3240인가요?”

  “그런디요.”

  “다마꼬 아줌마! 사진 보내드린 것 봤지요. 빨리 찾아주소!”

  “큰애는 1569건데, 이미 갔어! 문양이라고 지금 신탄진 오동동집에 있어 그리 가봐요. 그리고 또 한 애는 논산 444로 가보면 있을 거예요.”

  나는 당시 3천여 명이 넘는 젊은 여성을 쓰고 있는 대규모 방직공장에서 노무인사를 맡아 한창 끓어오르는 젊음을 쏟아 붓고 있었다.

  대전에 직업소개소가 19개소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공장에서 쓸 사람을 구해주는 곳은 아니었다. 노동청이 이를 감독한다고 하였는데, 소개소는 오히려 공장인력을 나꿔채가곤 했다.

  공장은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방직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젊은 여자가 귀했으므로 그야말로 사람을 모으기 위해 시골장터를 돌아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딴따라’라고 하는 노래패들을 모아 군용트럭에 태우고 8미리 영사기를 싣고 시골장터를 찾아 공장 소개를 하는 삐라를 뿌리기 앞서 노래패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한다. 대개는 5일장이 있던 때라 오늘은 금산, 내일은 논산, 모래는 옥천 등 군소재지 아니면 면소재지 장이 서는 곳이면 찾아 나섰다.

  저녁 어둑어둑할 때면 영사기를 돌려 영화도 보여주면서 회사 전경을 보여주고 마이크로 선전을 하였는데 다소 효과가 있었다. 긴 유똥치마를 걸친 채 고무신을 끌며 회사 정문을 찾는 젊은 여성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여자라면 채용하였다가, 6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구름처럼 모이게 되자 키가 153센티미터 이상 국민학교 졸업이상 등의 조건을 따라 뽑았는데 대개는 18세 미만의 젊고 중졸 이상의 건강한 여성근로자들을 선호하였다.

  당시 여성의 호적 나이는 대개 실제 나이보다 적어 작업능력은 충분하지만 법률이 허용하는 나이가 되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방법을 연구하느라 머리털이 몇 개 빠졌다.

  먼길을 찾아온 이들에게 그냥 돌려보내기에는 회사는 물론이고 당사자에게도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양자의 목적을 충족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호적초본을 다시 만들어 오도록 하되 타인의 호적초본이라도 본인이 인정하는 것이면 되었다. 이 호적초본도 회사 앞에 있는 식당 아저씨가 주선하고 떼고 몇 마디 훈련시켜 노무과로 돌려보냈다.

  오전에 다녀갔지만 서로 처음 보는 척 하고 면접시험을 본다. 새로 만들어 온 호적초본과 이력서를 대조해 보고 질문을 한다.

  “호적상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하시오.”

  “이름은 김○○, 생년월일은 1942년 3월 13일입니다.”

  “아버님 성함은?”

  “김○○입니다.”

  “예, 합격입니다. 내일 아침, ○○부로 출근하십시오.”

  당시는 주민등록증이 없었으므로 이 정도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불법이 통했다. 한날 한시에 한 아버지에 의하여 태어난 김○○는 우리 회사에만도 수백 명 되었다. 그 중에 몇몇 김○○는 회사를 그만 두고 직업소개소의 안내를 받아 어디론지 갔다.

  흔히 있은 일이지만, 시골에 사시는 정말 박춘자의 아버지 박○○씨가 오셨다. 그는 박춘자을 만나러 경비실에 면회신청을 했지만 직원명부를 대조한 경비반장은,

  “그런 사람 없는데요. 혹시 다른 공장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구만요. 다시 찾아봐 주세요.”

  “열 번, 백 번 찾아도 박춘자는 없어요. 그만 두었는가 본데요.”

  “아니 엊그제 편지가 왔는데요. 이거 보세요. 주소가 이 공장 맞잖아요?”

  “주소도 맞고 공장 이름도 맞는데 사람은 틀린데요.”

  먼길을 찾아온 진짜 박춘자의 아버지는 노무과로 쳐들어와서 책상을 뒤집고 난리를 친다.

  “내 딸 찾아내라! 이놈들! 내 딸을 꼬셔 가지고 가더니 어떻게 모른 척 하다니!”

  공장 사무실은 떠들석 난리가 나고 3교대를 하기 때문에 일일이 사람 얼굴을 대조할 수도 없다. 우선 인력카드의 사진을 보여주는 일만이 최선의 방법일 뿐이어서 무려 2만 여장이 넘는 현직, 퇴직자 카드를 일일이 보여 주었는데 대개는 퇴직자 카드에서 나오는 일이 많았다.

  퇴직하였으므로 주소는 공장주소로 보내 자신의 거처를 부모님에게 숨기는 일이 많았다. 이 정도면 나는 이미 짐작을 하고 전화를 건다.

  “3240입니까? 다마꼬 아줌마예요? 사진 보낼 터이니 빨리 찾아 주세요, 빨리요!”

  이때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전의 명물 중동 10번지의 도급포주의 자리에 올라앉았던 것이다.

  일당은 적은데 일은 고되고, 들뜬 어린 마음은 하루속히 고향에 가고 싶지만 현실은 빈손으로 남고, 공장 부근에 너절하게 줄 서 있는 양장점 앞에서 기다리는 포주들에 의하여 유혹되고, 하루 종일 놀고먹어도 잔소리하지 않고 밤이 되면 녹의홍상 걸쳐 입고 마음껏 노래 부르며 한량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그야말로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무릉도원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처럼 산업화의 그늘에는 어린 처녀들의 달디단 피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훑어내기도 하고 빨아먹기도 하는 기생충들도 극랄하게 기승을 부렸던 것이다.

  내가 이 직장을 박차고 서울로 향할 때 이 모든 추접스런 기억을 잊어버린 줄 여겼지만 아직도 ‘삼이사공 일오육구’는 뇌리에서 좀처럼 사그러들 줄 모른다. 저승까지 가져 갈려나 보다.   

 

장애인 고용


  장애인이라면 신체의 일부가 정상인과 달라 온전한 행동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불쌍해라!”

  “가엾어라!”

  또는 “아까운 사람!”

  이처럼 정상인들은 동정과 연민의 시각으로 장애인을 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마치 걸인에게 동전 한두닢 던져주며 그것으로 책임을 다 한 것처럼 여기며 돌아서는 태도와 같다.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제도화하고 있지만 몇몇 독지가를 제외하고 한낱 박제 만들기에 그치고 있다.

  무릇 인간은 장애인에게 대해 유별나게 인색하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먼저 신체적 승리감에 취한 심리적 우월감이 작용하는 용렬한 생각 탓도 있고, 또한 생존경쟁에 말려들면서 신체장애인을 무시하고 경쟁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도 있다.

  경제주의 생활방식이 기준이 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멸시는 더 한층 심해졌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작은 이익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한치 앞에 도사리고 있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깜깜한 맹인이다. 그야말로 일급 장애자인 것이다. 조금 높고 길게 인생을 조감하는 시각에서 보면 한낱 하루살이의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간헐적인 삶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위인으로 추앙하는 분들은 모두 어려운 역경을 잘 다스려 훌륭한 생애를 살다간 분들을 말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위인들 가운데 장애인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인류역사를 통해 뒤를 돌이켜 볼 때 수천 수만 년간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하다가 불과 지난 2백년 동안 비로소 문명을 이루고 과학을 진작시켰으며 생활이 편안해지고 만인이 함께 부유함을 맛보게 되었다.

  이 모든 발전의 대부분은 특히 장애인의 두뇌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정박아로 지목 받아 학교에 입학도 못한 토마스 에디슨, 심신의 열등의식을 자책하던 아이쟉 뉴턴, 그리고 뇌성마비의 스티븐 호킹. 모두 정상인의 유형에서 도외시 당한 장애자였지만 모두 정상인을 능가했다.

  그러니까 장애인의 ‘필요’에 의해서 탄생한 ‘과학’은 일반인도 함께 이용하게 된 것뿐이다.

  ‘필요’는 ‘발명’을 낳고, ‘발명’은 ‘과학’을 낳고, ‘과학’은 또 ‘문명’을 낳는단 말인가?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를 무릅쓰고 월등히 훌륭하게 살다간 장애인이자 위인들을 눈물겹도록 존경하면서 현재 함께한 장애인에 대해서는 너무 인색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장애인이라 해서 신체적으로 부족하니까 모든 면에서 부족한 줄 알고 있는 우리의 고정관념은 잘못이다.

  장애인을 정상인도 짐작할 수 없는 비범한 생각과 탁월한 방법으로 그들 나름대로 생활을 영위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 보통사람 이상의 지각과 사고방식을 동원해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창출하기도 한다.

  장애인 고용은 한낱 동정에 머물 일이 아니라 기업의 사활을 좌우할 아이디어 창출 원천일 수도 있어 오히려 경제효과면에서 다투어 고려되어야 할 과제로 볼 수 있다.

  오늘의 기업경쟁은 아이디어 경쟁이다.

  비교적 확률이 높은 아이디어맨을 채용하려 한다면 당신이 푸대접하는 장애인을 택하는 방법도 결코 어리석지는 않으리라.

  장애인 자신은 잘못함이 없는데,

  장애인은 죄 지은 바가 없는데,

  그래서 장애인은 범죄자가 없다.

  자신이 안고 있는 신체적 부자유를 이미 죄의식으로 느끼는 장애인도 있어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본성이 늘 깨어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양심은 그야말로 하늘과 같이 푸르다.

  함께 사는 세상에 동정보다는 동반의 의미가 있다.

  이 세상살이만 인생의 삶의 전부가 아니다.

  장애인은 다음 세상을 잘 살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다음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의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산다.


계약자유


  일찍이 ‘계약’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한 학자가 있었다.

  ‘계약은 서로의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다.’

  권리를 양도한다고 하는 것은 서로가 의무를 진다는 말과 안팎의 관계라고 부언했다.

  서로가 서로의 권리를 상대방에게 주었으므로 상대방으로부터 권리사용을 제한 받으며 상대의 요구에 의하여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어김없이 제공되어야 할 의무가 부과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이라는 특수한 상품이 제공되기 위하여는 동반하는 인격이 있고, 잠시라도 소홀히 하면 파괴 또는 변질될 수 있는 신체가 따라다니고, 의무의 주체에 부속한 거추장한 가족이 따르고, 저장할 수도 없는데다가 단체적 행동우려 등 계속적인 주의가 따라 타상품에 비해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어 이를 제공받는 이의 처지에서 볼 때 꽤 귀찮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유’에 대해서도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자유는 방해받지 않고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사유재산의 보호, 자유경쟁과 더불어 자유계약이란 지상의 원칙은 무한한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이에 대한 논란이 많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노동의 계약은 곧 노사간 체결한 단체협약이며 단체교섭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흔히 단체협상이라는 교환적 행위를 부여하고 있어 타상품의 교환보다 더 까다롭게 여기고 있다.

  따라서 단체교섭은 인격이 따라다니고 신체가 부속된 특수한 상품인 노동을 교환하는 상황이므로 늘 인격과 신체가 훼손되지 않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특별히 인간존중의 척도가 되는 자유로움이 필수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한 진리이다.

  신체가 허약한 질병에 의해 훼손되었을 때 노동이라는 상품은 저질로 변할 것이 분명하고, 인격이 약탈에 의해 훼손된 가운데 제공받는 노동은 그 질이 조악할 것은 필연이다.

  이러한 조건이 전제되는 까다로운 상품을 모름지기 좋은 품질로 양도받기 위해서는 이를 양수받는 경영자의 처지에서는 보다 조심스러운 배려가 따라야 마땅하다고 본다. 단체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술책의 하나로 공권력을 유도하려는 모의는 곧 양질의 노동력을 받아들일 자질이 없다고 본다.

  물론 불법적인 파업을 자행하여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치는 일도 삼갈 일이지만 스스로 해결하기 앞서 무조건 공권력 기대심리에 편승하여 해결코자 하거나 공권력을 빙자해서 술책을 모의하는 행동 또한 공권력에 무력으로 무조건 항거하는 행위와 더불어 사회적 범죄로 응징되어 마땅하다.

  하물며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미명하에 도둑들의 재산까지 보호하려 드는 학자들의 논리가 공중을 날아다니는 판인데 단체협상이라는 노동상품의 교환을 이유로 자유의사를 방해받는 일은 불균형한 것이다.

  청천백일하에 소신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곧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매력이 아니던가?


만족과 감동


  만족과 감동!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차이를 둔다면 또한 그 시사하는 바가 크게 다를 수도 있다.

  첫째, 만족은 양적인 의미를 갖지만 감동은 질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만족은 눈, 귀, 코와 같은 감각을 통하여 계측이 가능하지만, 감동은 감각의 차원을 넘어서서 심장이 아니면 감지할 수 없는 정신적인 상태에 가깝다는데 특징이 있다.

  둘째, 만족의 최대값은 겨우 본전치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감동의 최대값은 계량할 수 없는 무한한 것이어서 수적으로 표현한다면 무상량(無想量)에 속한다.

  셋째, 만족과 감동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생각하는 바의 기초가 다르다는 점이다. 만족은 겨우 경제적인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정도에 머물고 있지만 감동이라는 영역은 경제적인 충족도 포함할 뿐 아니라 마음적으로 희열하는 상태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사회적 문화적 가치창조를 위한 원동력이 되어 더욱 큰 가치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양자는 비교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만족이라는 이름의 거래는 주는 이의 희생이 전제되는 것이지만 감동은 오히려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다같이 만족하는 거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족에 대한 개념은 통상적이며 이미 예상하였던 부분을 충족시키는 정도에 머물지만, 감동의 차원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비로소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탄성이 터져 나오게 마련인 것이다.

  종래 인간이 할 수 없었던 최대값의 서비스는 고작 피해를 상대적으로 보상하는 정도에 머무르는 범위 즉 만족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러한 상태하에서는 결코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고 여겼으며 손해의 몇 분의 일이라도 변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에 강요당하는 정도의 권고가 고작이었다. 또한 만족시켜 주고자 하는 쪽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의해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만족을 받아야 하는 쪽의 희망사항과는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역시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례의 하나이다. 받는 쪽은 항상 주는 쪽의 경제적 형편에 기준을 두고 결정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만족의 경지에 이르기는커녕 늘 주는 이와 받는 이의 갈등이 존재하는 형편에 머물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받는 이로 하여금 인내를 강요하는 정도에서 이루어졌다 할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서 심부름을 대행하는 처지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움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야 하는 것이다. One-Call, One-Stop, Any-Time, Any-Where(언제 어디서든 단번에 끝내준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발전하고 있는 정보사회의 발달은 가히 인간을 만족의 수준에서 감동의 경지로 넘나들게 하고 있다.

  이제 산재보험 수혜자를 위한 감동적 서비스에 대한 방법적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신속과 친절과 공정을 함께 충족하기 위한 음성녹음 서비스, 폼뱅킹 서비스 등 여러 가지의 서비스 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이 그것이다.

  생각하건대 이 정도의 수준에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또한 오산이다.

  모름지기 만족에서 머무르지 않고 감동의 영역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보태어지면서 마치 천년 동안의 몽상을 현실로 ‘뎅그렁’ 깨뜨렸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근로복지공단 ‘전산실장’이란 직책으로 옮기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형제의 강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건만 밑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기대하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노사개혁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시작했던 노사대타협의 기회는 어느덧 가을이 깊어 낙엽이 한겹 두겹 겹쳐지면서 시작할 때보다 더 영겨붙고 더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그야말로 목구멍에 넘어간 음식을 다시 되새김질 하도록 아니꼽게 만든다.

  한편 성급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어느듯 선진국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고 과분한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감겨야 하는 절박한 처지를 모르는바 아니건만 이 나라의 노사관계는 그야말로 온 세계가 걱정해 줄만큼 여리고 서글픈 현실로 추락했다.

  지난 세월에 숱하게 사라져 간 아까운 희생들, 헤아릴 수 없이 쏟아부은 많은 정성들이 일조일석에 허물어지는 모양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내꺼는 내꺼이고 네꺼는 내꺼이다.’

  한때 농담처럼 오고간 이 말투는 혹시 오늘의 한국 노사관계에 보이지 않는 암투의 구실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공략하려는 협상이 계속되는 동안 다소 응어리가 풀렸다싶었던 한국의 노사관계는 더한층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고 협상을 했다 하면 반드시 자기에게 유리하게 고집하는 타성이 남아 있는한 장기간 지루하게 테이블을 마주할 필요가 없었다는 후회스러움과 함께 지난 한여름 어정쩡한 각종 노사협상조차 흐지부지된 아쉬움도 크다. 욕심은 더욱 더 큰 욕심을 잉태한다고 했다.

  형제가 산에서 나무를 해 짊어지고 내려오다 손잡이에 값비싼 보석이 박힌 보검 두 자루를 주었다. 형제는 한 자루씩 나누어 가지고 나뭇짐 속에 감추었다.

  강을 건너기 위하여 형제는 배에 함께 올랐다. 이윽고 강 중심에 이르렀다. 동생이 나뭇짐 속에서 그 보검을 끄집어 내더니 깊은 물 속에 던져 버렸다. 형이 물었다.

  “왜? 그 아까운 것을 버렸니?”

  “형님! 갑자기 저도 모르게 형님이 미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형도 동생이 한 것처럼 나뭇짐 속에 깊이 넣어 둔 그 보검을 끄집어 내더니 ‘풍덩!’ 강속 깊이 던져버리고 두 손을 툭툭 털며,

  “잠시 나는 너를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단다.”

  형제는 강을 건너 배에서 내리자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각기 자기 집으로 갔다. 그날밤 두 형제는 두 다리 쭈욱 뻗고 깊은 잠을 잤다.

  꿈속에서 어머님의 인자한 모습을 보았다.

  이튿날 형제는 다시 만나 마주 쳐다보면서 따뜻한 웃음을 주고 받았다. 어떤 보배보다도 더 값진 이들의 미소는 그들이 한 형제간임을 거듭 증명했다.

  서로 상대를 공략하려는 무기경쟁에 혈안인 한국의 노사, 어차피 한 번은 이 강을 건너가야 한다. 형제의 급소를 노리는 것이라면 아무리 값나가는 보물일지라도 강물 속에 미련없이 ‘풍덩’ 던져넣을 수 있는 아량이 지극히 필요한 때다.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 정도조차 극복할 수 없다면 노․사형제는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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