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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노동에 관한 회칙 [노동하는 인간]    4
  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아들 딸들에게
인사드리며 사도적 축복을 보내는 바이다
교황 요한 바울로 2세의 사회회칙

제4장 노동자의 권리

16. 노동의 의무

노동은 인간의 의무이다.

바로 이 의무 때문에 이를 수행하기 위한 노동자의 권리가 발생한다.

많은 국제 기구들이 천명하고 점점 많은 나라들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모든 권리의 광범위한 맥락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고찰해야 한다. 이처럼 광범위한 인권의 존중은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오늘날 평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조건이다.

교회는 특히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반포한 이래 수차례 이 점을 강조해 왔다.

노동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인권은 인간 기본권의 광범위한 맥락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노동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인권은 인간 노동 특유의 본질에 따르는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인간은 노동을 해야 한다.

우선 창조주께서 노동하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이고, 또 인간성을 보전하고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그렇다. 인간은 다른 이를 위한 관심에서도 노동을 해야 한다. 자기 가족과 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여러 세대에 걸친 노동을 물려 받았고 동시에 역사의 흐름 속에서 뒤따라올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 건설에도 참여할 것이기 때문에 온인류를 위해서 인간은 노동을 해야 한다.

우리가 노동의 의무에 따라 오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말할 때 이같은 모든 점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7. 직접 고용주와 간접 고용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먼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직접 고용주란 노동자가 직접 노동 계약을 맺는 사람 혹은 단체를 말한다.

간접 고용주란 노동 계약을 제한하는 요인들과, 노동 현장에서 정당하거나 부당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말한다. 간접 고용주란 개인들과 단체들뿐 아니라 전체 사회경제 체제를 결정짓는 집단 노동 계약과 행동 원리까지도 포함한다.

간접 고용주의 책임은 직접 고용주의 책임과는 다르지만 직접 고용주의 행동을 실제로 제한하기 때문에 역시 중요하다. 간접 고용주란 개념은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 우선적으로는 국가에 해당된다. 그것은 국가가 정당한 노동 정책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나라들 사이에 상호의존하는 다양한 경제적 유대 (예를 들면, 수출입 무역)가 맺어져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 결과 어느 나라에서든, 아무리 경제적으로 강력한 나라라해도 완전한 자급자족을 할 수는 없다.이러한 상호의존 체제는 정상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착취나 불의에로 쉽게 빠질 수 있다.

그래서 개별 국가들에게 영향을 미쳐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면,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들, 심지어는 이른바 다국적 기업들까지도 자기네들이 파는 물건을 될 수 있는 대로 비싼 값을 매기고, 자기네들이 사들이는 물건, 즉 원자재나 반가공품은 될 수 있는 대로 싼 값을 매기려고 든다.

바로 이 때문에도 나라들 사이의 소득격차가 자꾸만 커지게 된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들은 점점 더 가난해 지게 된다.

이는 가난한 나라들의 노동 정책을 더 어렵게 만들고 그 나라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든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가난한 나라의 직접 고용주는 진정으로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만큼에도 못 미치게 노동 조건을 정해 버리기 일쑤다. 심지어는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이윤을 벌려고 애쓰기도 한다.

이는 한 사회의 경제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들이 야기시키는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는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체제가 빚은 결과로 운명 지워질 수는 없다. 사실은 이와 반대다.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함은 개별 국가 안에서 그리고 국가 체제를 통해서도 전체 경제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

국제연합을 비롯해서 국제노동기구와 국제식량기구가 공헌해야 할 과제가 바로 이것이다. 다른 기구들도 역시 이 점에 관해 공헌해야 한다. 각 나라에서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행정 부서나 사회 단체들이 설립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노동자의 온전한 권리가 보장되는 데 있어서 간접 고용주가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18. 고용 문제

우리가 간접 고용주와 관련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고찰하자면 당연히 근본적인 문제, 곧 실업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 즉 간접 고용주는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찾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전반적이든지, 어떤 분야에 국한되든 지간에 실업은 정의롭고 올바른 상태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간접 고용주라는 이름에 속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실업에 대항하여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실업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죄악이며 어느 수준에 이르면 실제로 사회의 재앙이 될 수 있다. 특히 교육과 직업 훈련을 마치고 일을 하려는 진지한 소망과 공동체의 발전에 책임 있게 이바지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젊은이들이 실업 때문에 좌절하는 것을 보기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정부가 실업 수당을 지급해야 할 의무는 생명과 생존의 권리에서 나오는 의무다. 실업과 싸우기 위해서는 간접 고용주들이 다양한 종류의 노동에 관한 전반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올바르고 합리적으로 조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국 이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하지만 일방적인 중앙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정의롭고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개인이나 독립된 집단들과 노동 단체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가운데 정부의 책임이 이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야에서의 활동은, 각국의 주권을 보존하면서도, 조약과 협약을 통하여 국제적으로 취해져야만 한다.

이런 조약과 협약의 기준은 노동이 인간의 권리라는 점이며, 그 목적은 여러 나라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불의 하게 벌어져 있는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이 생활수준의 격차 때문에 폭력적인 사태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교황 바울로 6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 따르면,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발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가능하다.

이러한 발전에 있어서 기본 요소는, 그리고 그 발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노동의 목적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관점에서 그침 없이 인간의 노동을 재평가하는 일이다. 발전은 인간을 통해서,인간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리고 인간 안에서 그 결실을 맺어야 한다.

노동에 관한 계획이 합리적이고 조직이 올바르기 위해서는 고용이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즉 농업, 공업 및 서비스 분야의 노동과 정신 노동들, 즉 학문적이거나 예술적인 노동 등의 사이에서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리고 사회와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올바른 균형을 이루도록 계획하고 조직해야 한다.

노동이 지닌 많은 가능성에 따라 인간 생활의 조직은 적절한 교육체제와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교육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성숙을 목적으로 하며 또한 노동의 세계에서 제각기 독특한 일을 담당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전세계 인류 가족 전체를 볼 때 우리를 극도로 당황케 하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토록 많은 자원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실직당하고 있거나 불완전한 고용상태에 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각 나라 안에 그리고 국제적으로 극히 중대한 핵심문제인 노동과 고용의 조직에 있어서 무언가 잘못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 임금과 사회적 혜택

이제는 노동자와 직접 고용주의 관계에 있어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이제까지 간접 고용주에 대해 다룬 것은 경제와 정치에 관한 소론을 쓰자는 것이 아니었고, 직접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에 있어서 하느님의 위치와 도덕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사회 윤리의 핵심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 문제이다.

노동이 생산수단이 사유화된 체제에서 이루어지든 어느 정도 사회화된 체제에서 이루어지든 올바른 노사관계를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현재로서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밖에 없다. 어느 사회경제 체제가 얼마나 정의로운가 하는 것은 결국 그 체재 안에서 인간의 노동이 정당한 보상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데에서 결정된다.

재화의 공동 사용 원리를 다시 생각해 볼 때, 어느 체제에 있어서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금을 통해서 이 공동 사용의 재화에 접근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당한 임금은 사회 전체의 정의를 가늠하는 구체적인 척도이다. 이것이 유일한 척도는 아니겠지만 가장 중요한 척도임에는 틀림없다.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어른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란 가정을 꾸려 나기기에 충분하고 가정의 장래까지도 보장할 만한 보수를 말한다. 이는 가장에게 지급되는 '가족 임금'을 말한다. 즉 가장의 노동에 대한 보수로서도 그의 배우자가 집안일 외에 다른 유급 직업을 갖지 않아도 가족의 생계를 충족시킬 만한 단순 임금을 가리킨다.

그리고 또한 가족 수당이나, 집안일에만 전념하는 어머니들에게 주어지는 배우자 수당 같은 보조금들도 가리킨다. 이 보조금들은 부양가족의 숫자에 상당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머니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경험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역할이 사회적으로 주어져 있다. 어머니로 하여금 자신의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고, 심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지 않으며, 또 다른 여성들과 비교하여 아무런 열등 의식도 느끼지 않으면서, 자녀들을 보살피고 교육하는 데 헌신할 수 있게 한다면, 이는 그 사회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가정 밖에서 보수가 따르는 노동을 하기 위해 이러한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와 가정을 위해서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머니로서의 사명이라는 근본 목적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정말로, 전체 노동 과정은 연령과 성별에 따라 각자의 필요를 생각해서 조직되어야 한다.

사실 많은 나라에서 여성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노동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은 차별 대우를 받지 않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서 제외되지 않고, 또한 가정과 사회에서 그들의 본래의 특별한 역할을 방해받음 없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의 지위가 제대로 향상되려면 가정에서 어머니로서의 둘도 없는 역할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노동이 조직되어야 한다. 임금 외에도,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활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회보장 제도가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의료 혜택은 그 첫째로서 건강 보호를 위해서 특히 노동 중에 사고가 일어날 경우에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하면 무상으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휴식의 권리도 중요하다.

적어도 일요일을 포함한 정기적 주간 휴식과 1년에 한번씩의 장기 휴가, 또는 수차례의 단기 휴가가 주어져야 한다.

연금의 권리와 노후 대책, 그리고 산업재해 보험에 대한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권리들 가운데에서 노동자의 신체적인 건강이나 정신적인 건강에 손상을 끼치지 않는 노동 환경과 작업 과정에 대한 권리도 소홀히 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권리들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와 함께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들이다. 이 모든 권리들이 보장되는 가운데 노사 관계가 발전하기 위해서 노동 조합이 필요하게 된다.

20. 노동 조합의 중요성

이 모든 권리들은 노동자들의 자기 보호를 위한 필요성과 더불어 다른 또 하나의 권리, 즉 단결권을 갖게 한다. 단결권에 의해 형성된 모든 단체를 노동 조합이라 부른다. 노동 조합은 갖가지 노동 형태와 직업 종류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지녀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노동 조합은 그 기원을 중세 장인들의 동업 조합에 두고 있는데, 그 조합들은 같은 기술을 자긴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노동을 토대로' 하여 만들었다.

그러나 노동 조합과 동업 조합은 서로 다르다.

현대의 노동 조합은 노동자들이 기업가들과 맞서서 그들의 '정당한 권리들'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을 하는 가운데 성장해 왔다. 역사의 교훈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산업화된 현대 사회에 있어서 이러한 형태의 조직들은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노동 조합들이 단지 사회의 '계급'구조를 반영하는 것이라거나 불가피한 계급 투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노동 조합은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을 대변하는 것이며, 이 투쟁은 공동선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투쟁이어서는 안된다.

비록 투쟁이 다른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에 반대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사회 정의를 지향하려는 것이지 투쟁 자체를 목적으로 하거나 반대자를 제거하려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노동의 특성은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데 있다.

노동의 사회적인 힘은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있다.

결국에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과 생산수단을 경영하거나 소유하는 사람들이 어떻든 간에 이 공동체 안에서 결합되어야 한다.

어떠한 사회체제에서든 노동과 자본은 생산 과정의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에 비추어서 분명한 것은 비록 노동의 필요성 때문에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단결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조합은 사회 질서와 결속의 건설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이며,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이 자기네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그 나라의 경제 사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 조합의 요구가 비록 생산수단의 소유 체제와 생산수단의 경영 체제에서 발견되는 모든 결함을 사회 전체의 공동선이라는 관점에서 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고 또 이를 목표로 해야 하나, 노동 조합이 일종의 이기적인 집단으로 전락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 조합 활동은 정치 분야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노동 조합의 역할은 오늘날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표현으로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뚜렷이 '공동선에 대한 지혜로운 관심'으로 이해되는 정치를 의미한다. 노동 조합은 정당도 아니려니와 어느 정당에 예속되거나 너무 가깝게 유착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 조합이 그 고유한 역할, 즉 사회 전체의 공동선이라는 틀 속에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역할을 쉽게 잃어버리고, 그 대신에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도구가 된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수호한다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물론 개별 직업의 특성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중요한 일은 노동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주의하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 의한다면 노동 조합의 활동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 된다. 즉 훈련과 의식계발 교육과 노동자들의 자체 교육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학교들, 노동자 대학 혹은 공민 대학, 직업 연수 과정은 치하할 만하다.

노동 조합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보다 많이 '소유'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노동 조합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추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한 가지 방법에 파업이 있다. 올바른 조건과 정당한 한도 내에서는 파업도 합법적이라고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인정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파업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파업은 남용되어서는 안될, 극단적인 수단이다. 특히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파업을 남용해서는 안된다. 파업의 권리를 남용한다면 사회 경제 생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으며, 이는 사회의 공동선 요구에 반대되는 것이다.

21. 농업 노동의 존엄성

인간 노동의 존엄성에 대하여 우리가 말한 모든 것은 농업 노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농업은 사회를 지탱하는 재화를 공급해 주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농업 노동의 조건과 농민의 사회적 지위는 나라마다 다르다. 이는 농업 기술의 발달 수준뿐 아니라 농민의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농업 노동은 힘든 노동이다. 때로는 육체적으로 쇠잔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대부분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사회에서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되고 농민들이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집단 탈출하는 이농 현상을 가속화시키게 된다. 적절한 직업 훈련이나 마땅한 장비가 부족하고, 일종의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으며 또한 불의한 상황이 농업 노동의 어려움을 더해 주고 있다.

어떤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수백만의 농민들이 남의 땅을 소작하도록 강요받고 있으며, 한 치의 땅이나마 소유할 수 있다는 희망도 없이 지주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다.

농민들 자신과 그 가족들이 늙거나 병에 걸리거나해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도 없다. 지주들은 경작할 수 있는 땅도 방치해 두고 있다.

수년간 직접 경작해 온 작은 땅덩이에 대한 법적 소유권도 권력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의 '토지 소유욕'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농업을 기술적으로 발달시켜 놓은 선진국에서조차도, 농민들이 자신들에 관련된 결정에 참여할 가능성을 차단당하거나 자유롭게 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거부당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근본적이고도 긴급한 변혁이 요구되고 있다. 건전한 경제의 근간으로서 농업과 농촌 사람들의 진정한 가치를 회복시키기 위한 변혁이 필요하다.

22. 장애자와 노동

최근 들어 국가 단체와 국제 기구들은 장애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들 또한 육체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사람이며 존엄과 위대함을 드러낸다.

장애자들도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기능이 온전한 사람들에게만 노동을 허락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 약하고 병든 사람에게 가하는 차별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직접 고용주와 간접 고용주는 효율적이고도 적절한 조치로써 직업 교육과 노동에 있어 장애자들의 권리를 배려해야 한다.

이 점에 관련되어 많은 실제적인 문제들이 법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공동체는장애자들이 능력에 따라서 노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하여 모든 방안과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인격체요, 노동의 주체로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존엄성이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는 장애자들에게 정상적인 직업이나 혹은 그들에게 알맞게 특별히 고안한 직업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장애자들이 취업할 경우 그들이 지닌 육체적이고도 심리적인 제약 조건에 대하여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며,노동에 대한 올바른 관점으로 장애자들이 사회에 짐이 되거나 고용에 있어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하며, 그들 가족과 사회의 복지와 발전에 기여하도록 불리운 노동의 주체로서 그들 스스로가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다.

23. 노동과 이민 문제

마지막으로, 일자리를 찾는 이민의 문제를 간단하게나마 언급해야 하겠다.

이는 대단히 오래된 현상이면서도 오늘날에는 더욱 폭넓게 펼쳐지는 현상이다. 어려움 없는 이민은 없다. 고향과 조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민은 적지 않은 손실이다. 우선 역사와 전통과 문화로 결속되었던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떠나는 것이며 이질적 문화와 다른 언어를 쓰는 이질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조국은 '노동의 주체 하나'를 잃은 것이다.

그 주체는 조국의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신에 그 노력을 어떤 의미에서는 열등한 권리 밖에 없는 다른 사회에 바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이민이 하나의 악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환경에서는 말 그대로 필요악이 된다.

그래서 이 필요악이 더 큰 도덕적 손실까지 가져오지 않도록 모든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민자의 조국과 이민 대상국은 그의 개인 생활, 가정 생활 및 사회 생활에 혜택을 보장하는,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많은 노력은 노동자들의 권리에 관한 법률의 정당성에 달려 있다.가장 중요한 일은 이민 노동자가, 영구 이민자든 계절 이민자든간에 노동의 권리에 있어 그 사회에 있는 다른 노동자들과 비교해 볼 때 불리한 위치에 놓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민이 착취의 기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노동의 가치는 동일한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야지, 국적이나 인종이나 종교에 따라 달리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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